촌 닭 관청에 온 격이었다. 소신학생으로 입학한 나의 눈에 비친 대신학생(신학과)들은 모두가 구레나릇이 나고 까만 구두와 양단 두루마기를 입고 검은 베레모를 비껴 쓴 어른들이 었다. 또한 그 모습은 당시로서는 일류 신사들의 모습으로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내가 용산소신학교에 입학당시 소신학교 상급생(노기남 대주교반)은 68명이 었는데 프랑스 군대식 누런 양복에 모자를 쓰고 버선에 구두를 신어 한국 학생인지 프랑스 학생인지 어리둥절 하기 만했다.
1891년 건축 낙성된 나의 모교 용산 신학교는 이 나라 양옥 교사의 효시였다. 나의 선배들은 수업시간만 끝나면 굴곡진 언덕 배기를 갈고 닦고 산을 헐어 훤한 교정(현 성심여고교정)을 f닦아 놓았으며 강도영 학생(작고 · 미리내본당 초대 주임)이 느티나무를 심었는데 지금은 문화재감이 될만한 나무들이다.
최근 12월 9일 방문하였더니 소신학교와 대신학교 사이에 예수 성심성당이 의구하게 서있다. 이 자리 역시 선배 들이 등짐으로 산을 헐어 만든 성당터이다.
유 에밀리오 신부(후에 서울 부주교)가 라띤어 교사였는데 혀가 돌아가지 않는다.
서당에서 하늘천, 따지 하던혀가 놀란것인가. 도대체 이걸 배워야 신부가 된다고 생각하니 어머님 생각만 난다. 밤 중에 이불속에서 남몰래 울기를 몇 번이었던가. 겨우 만 열두살의 어린 나이였으니…
입학하여 일주일이 될까말까한데『앞으로는 일체 한국말을 사용하지 못하며 라띤어를 일상대화로 해야한다』는 것이다.
한국말을 하다가 발견되면 한국말 하는 다른 학생을 발견할때까지 큰 축구공만한 쇳덩어리를 안고 다녀야한다는 것이다.
쇳 덩어리를 안고 다니려면 팔은 아프고 겨울에는 손은 시럽고 한국말하는 학생은 발견할 수가 없고 밤에는 그 놈을 안고자야 하니 죽을 노릇이다. 일주일만에 열 두살짜리가 어떻게 라띤어를 할수가 있는가. 갑자기 벙어리가 되어 손 짓 발 짓으로의 사소봉은 되지만 그 고층은 여간이 아니었다.
쇳 덩어리를 안은 짓궂은 학생은 공연히 시비를 건다. 이왕 쇳덩어리는 안았겠다 실컷 떠들며(한국말로)남은 화를 돋군다.
성질 급한 친구는『이놈이 괜시리 시비를 거네』하고 대꾸하다보면『너, 한국말했지. 자, 요것 받아라. 내 선물이다』하면서 쇳 덩어리를 넘겨주는 촌극이 벌어지곤 했다. 우리의 선배들도 모두이 곤경을 치루어냈다는 것이다.
학교 규칙상 상 · 하급생 사이에는 한 교정에서 지내면서도 서로 대화를 하지 못하는 법인데도 상급생돌이 하급생 한두명씩을 데리고 라띤어 과외(?)를 시켜주는 것은 호랑이 같은 진베드로 교장 신부도 눈감아 주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기어이 이것을 배워 신부가 되겠다는 일편단심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3개월이 지나니 좀 통하는듯 했다. 웬만한 이야기는 눈치로 때려 잡으면서.
신학교 시설은 보잘것이 없었다. 시골 온돌방에서 뒹굴던 촌놈이 겨울에 냉방의 침실생활은 고욕이었다.
또한 난생처음 침대생활을 하다보니 온돌방 버릇대로 이리 저리 구르다보면 호박덩이 넝쿨 떨어지듯 여기저기서 쿵쿵 소리가 난다. 게다가 어름장같은 이불속 에서 웅크리고 자고나면 뱃속이 편치않아 화장실 드나들길 섣달 대목보듯했다. 이러한 생활을 졸업할 때까지 12년간 계속하다보니 위장병을 얻어 늘 배를 움켜쥐고 다녀야만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엄동설한에도 세수대야를 들고 운동장으로 세수하러 달려갔다. 서양나무 술통에다 전날밤 인부들이 우물 물을 길어다 부어놓으면 밤사이에 꽁꽁 얼어 얼음을 조각 내어 얼음 조각으로 세수를 하는둥 마는둥 하는 한 겨울을 지내는 동안 열 손가락에 동상 걸리지 않는 학생이 없다.
아무리 추워도 목도리나 장갑을 사용할 생각은 꿈에도 할수가 없었다. 만약 목도리나 장갑을 사용했다 가는 이튿날 보따리(?)쌀 각오를 해야하기 때문 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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