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침이 밝았다. 어둠을 가르고 솟아오른 새날의 햇살은 이땅 곳곳을 새로운 생명력으로 넘치게할 만큼 풍요의 이땅 곳곳을 새로운 생명력으로 넘치게할 만큼 풍요의 빛으로 빛나고 있다. 공동체의해. 그리스도를 머리로한 지체임을 확인하고 사랑과 친교로 맷어진 한 형제임을 증거하기위해 특별히 준비된 교구공동체의해. 그래서 이 아침은 금빛찬란한 보석보다, 기세당당한 권세보다 더 소중하고 더값지게 느껴져 두손을 모으게한다. 이기심과 불신, 교만과 탐욕으로 상처난 마음을 깨끗이 불사르고 무릎꿇어 맞이해야할 이 아침 그 길을 앞서가는 믿음의 공동체가 있다. 이세 상에 속해있으되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고 굳센 믿음을 가졌으되 결코 자랑하지 않는곳, 그곳에는 우리가 행하는 사랑의 의식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를 알게하는 신앙 의 공동체가 살고있다. 그곳은 질그릇처럼 투박하나 투명한 영혼들이 거듭되는 가난과 외로움을 헤쳐가며 소중한 하루를 살아가는 신앙의 공동체가 살고있어 이아침에 옷깃 을 여미게한다.
당사도(唐寺島). 전라남도 완도에서 뱃길로 4시간. 망망대해속에 떠있는 수많은 섬 가운데 믿음의 공동체 「당사도」는 있다.
44세대 2백17명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있는 당사도는 44세대 모두가 가톨릭 신자인「신자마을」이다. 신자마을인 만큼 이섬의 모든 의식 행사는 가톨릭전례로 시작되는 기가막힌 전통을 갖고있다. 학교에서 베풀어지는 3.1절행사ㆍ광복절행사ㆍ 그리고 길ㆍ흉사에 말씀의 전례는 빼놓을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토속신앙이 지배 적인 섬마을로서는 참으로 놀라운일이 아닐수 없다. 그뿐이 아니다. 어쩌다 베풀어지 는 야외미사나 성탄절행사 등에 필요한 비용도 마을에서 공동으로 관리되는 자체기금으로 사용될 정도다. 이 땅 그 어느곳에 이같은 곳이 또 있을까? 감사와 기쁨이 온 가슴 을 적시게 한다.
믿음의 공동체「당사도」를 찾은날은 하늘도 바다도 모두가 잿빛뿐이었다. 잿빛 이다못해 차라리 검기조차한 바다는 음울한 빛깔과는 어울리지않게 호수처럼 잔잔했 다. 「겨울바다는 사흘굶은 시어머니」라면서 바다의 위험성을 경고해주던 광주 북 동,완도의 형제들의 염려와는 달리 믿음의 공동체를 찾아나선 뱃길에는 부드러운 미풍조차 불지 않았다. 사실 겨울바다는 한치앞을 내다볼수가 없다. 미풍으로 살랑거 리던 바다가 한 순간에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인간을 조종하며 날뛰는 괴물로 변신한다. 겨울바다는 분명 야누스다. 미소를 머금은 어머니의 얼굴과 포효하는 맹수의 날카로운 이빨을 함께 가지고 있기때문이다. 조금은 무섭고 그래서 조바심치던 마음 도 기분좋게 달리는 뱃머리위에서 어느틈엔가 달아나버렸다.
완도를 떠난「수협정기선」은 잔잔하기만한 남해의 물살을 가르며 달려나갔다.
「당사도」行은 이번 취재를 위해 온마음으로 협조해준 완도본당, 그리고 북동본 당의 정규완ㆍ김종남 신부와 신자들의 사랑속에 너무나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특별히 주선해준「수협선」이 아니고는 이번 취재는 시작조차 될수가 없었다. 완도에서 당사 도까지 직행은 물론 없고「노화도」에서 갈아타야하는 정기선은 그나마 격일로 다니 는 데다가 변덕스런 겨울바다의 기상은 그누구도 예측할수없는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전날밤까지 불안케하던 풍랑도「당사도」로 향하던 아침녘에는 잠들어 버렸다. 보이 지않는 수많은 기도가 가슴에 와 닿는듯 작은 가슴은 뜨거움으로 가득찼다. 고마운 분들…
좌로는「所安島」우로는「甫吉島」를 사이에둔 조그만 해협에 들어서자 미풍조차 없던 바다가 약간출렁거렸다.
해협의 면모를 과시한다는것이었다. 누군가 옆에서 귀띔했다. 카메라를 준비 하라 고. 화들짝 놀라 배위로 뛰어올랐다. 희뿌연 바다 저편에 나의 목적지「당사도」가 떠올랐다. 떠날때부터 보일듯말듯 뿌려대는 겨울비로 시야는 온통 잿빛이었는데도 「당사도」의 모습만은 뚜렷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틈에 가까이 다가선 당사도 - 마치 사람이 가슴에 손을얹고 누운 형상같은 미지의 섬앞에 선 내마음은 선착장 어귀에서 손을 흔들며 반기는 주민들이 눈에들어오자 괜시리 울렁거렸다.
당사도의 복음화는 백대장부부의 이야기를 빼놓고선 결코 연결이 되지않는다. 우리영해상의 첫등대「당사도」등대지기인 백 대장. 그는 이 외로운섬에 복음의 씨앗 을 뿌린 복음의 사도다. 1969년 등대지기로 (현재 등대대장)당사도에왔던 백남찰(시몬 51세) 씨는 매일저녁 부인 오젬마씨와 함께 로사리오기도ㆍ저녁기도를 바치는 열 심한 신앙인이었다.
그무렵, 저녁이면「등대집」에 몰려와 공부를 하던 등대주변 어린이들에게 이들 의 행동은 희한하게 보였다. 이 소문은 곧 섬전체에 퍼져나갔고 복음의씨는 이렇게 심어졌다. 마침 목포에서 영세, 신자인 이춘기(스테파노)씨가 이에 합세, 외로운 당사도는 신앙의 불꽃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70년 7명의 섬주민이 영세하는 것으로 시작, 당사도는조금씩 조금씩 신앙공동체로 승화되어 갔다. 그리스도를 알리기 위한 백대장부부의 열심은 하늘을 찌를듯했다. 저녁상을 물리고 유난히 빨리 찾아든 어둠을 뚫고 험한 고갯길을 넘나들던 이들의 순례는 비가와도 눈이와도 그칠줄 몰랐 다. 이들 부부의 사심없는 헌신은 주민들 마음속 깊이 받아들여져 당사도의 복음화는 상당히 빠른속도로 진행,불과 10년이 채 못돼 섬전체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물들 었다. 유창한 말솜씨와 세련된 제스츄어가 필요치않는 소박한 마음과 진실한 실천이 굳게 합친 진정한 마음이었다.
지난봄까지만해도 당사도는 이 섬의 이름이 아니었다. 3백여년전 한씨라는 성을 가진 뭍사람이 처음 入島할때부터 최근까지 불려온 이름은「者只島」우리말로 발음 하자면 조금, 아니 많이 어색하다.
특히 이섬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한 여자아니가 어쩌다가 뭍으로 유학(?)을 갈라치면 한번씩 곤욕을 치루는 것이 바로 섬이름이다. 그래서 바꾼이름이지금의 「당사도」다.
그러나 이 이름에도 문제가 없는것은 아니다. 하필이면 천주교 신자섬(?)에 「절寺」를 사용했냐는 것이다. 이 배경 또한 이야기하자면 역시 복잡하다.그러나 한번 결정된 이상 번복할 수 없는 관의 일이고 보면 새 이름을 놓고 더이상의 논쟁은 할 필요가 없는일이라고 대부분의 주민은 수긍을 하고있다. 그러나 者只島의 이름에 얽힌 전설 을 들어보면 크게 공감을 하게된다. 『3백년전 이섬에 처음 사람이 발을 디뎠을때 까치두마리가 반겼다.
아직 이름이 없었던 이섬은 그때부터 「雀二島」로 불렸고 세월이 흐르면서 「자기도」「재구도」「재개도」로 변하면서「者只島」로 정착됐다』이것이 전설이다.
이 조그만 외딴섬에 가득 내려진 그리스도의 은총이 복음화라면 복음화 이외의 은혜는 자칫 소홀하다고 생각할만큼 이들은 어렵게 살고 있다. 대개의 섬마을이 아직 은 풍요한 삶을 누린다고 말할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씩 형편이 풀리는 여타섬에 비 해「당사도」는 그 형편이 조금도풀리지를 않아 가슴을 졸인다. 섬이면서도 전혀 바다를 이용할 수 없는 험한 섬지형에 그 첫째 원인이있다.
무수한 생산의 원천ㆍ수산자원의 보고인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 흔한 김미역 양식조차 엄두를 낼수가 없다. 거센 물살과 가파른 바다지형이 이 모든것을 막고있기 때문이다.
소형배로 고기를 잡는 몇몇 가구를 제외하고 6만여 평의 논과밭을 일구는 당사도가 고구마를 주식으로 하는 가난석에 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면 지나친 것일까? 조금 도 개선되지않은 자연의 조건으로 5년전3백50명으로 불어났던 섬주민은 계속줄어 불과 2년사이 20세대가 이섬을 뒤로했다. 보다 좋은 터전을 찾아나가는 이별의 현장은 웃사촌의 정을 넘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묶여진 형제와의 이별로 하늘밖에 그누 구도 짐작할수 없는 슬픈바다를 이루고야만다.
이같은 환경때문에 하나있는 국민학교도 분교에서 본교로,본교에서 다시 분교로 성장과 퇴보를 거듭하는 혼동을 겪고있다. 그러나 완도본당 공소로 소속돼있는 섬공 소는 현실로 파고드는 온갖 역경속에서도 10여년 동안 이 섬을 지켜왔다. 고난을 기쁨 으로, 환난을 승리로 받아들이는 정신적 지주로 이섬을 지켜온것이다.
당사도는 분명 멀리있다. 그러나 우리가 당사도를 우리의 공동체로 받아들인다 면「당사도」는 분명 우리 가까이 있을수도있다. 바로 우리의 형제로서.
특집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