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준비도 끝날 시간인데 전화다.
『…○○년도에 졸업한영옥이예요. 기억하시겠어요』
기억속에서 영옥이란 이름의 얼굴을 떠올린다.
영옥이란 이름은 귀에설지않다. 이영옥도 투어명, 김영욱도 몇 명인가 있었고….
내가 담임을 했다면 어느 얼굴인가. 제자들의 전화는 무슨 증명서가 필요했을 때가 많은데, 그런 용무인가 하는데 계속 이어지는 전화 내용은 좀 엉뚱했다.
작년에 결혼을했고 며칠전에 첫아들 백일이 지냈다고 하며,
『꼭 가 뵙고 용서를빌려고 미리 전화부터 드리는 겁니다』
(용서를 빌다니…)
얼떨떨한데,
『혜영이도 결혼을 하게 됐고, 또X도 같이 가려고…』
생각이 났다. 바로 그 영옥이구나. 자퇴서를 내려고 영옥의 올케가 왔던날이 눈앞에 스친다.
『자퇴를 해야 합니까』
강한 이 한마디에 영옥이의 자퇴서는 찢게 되었고 서울교육대학에 진학도 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 라고 그후 다 잘되어가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내게 문안 한번 못한 것이 죄스럽다는 뜻일게다.
용서라니, 스승과 제자사인데, 어떤 사람과 결혼했을까?
『아들이예요』
묻고싶은 말은 많은데, 줄인채 전화기를 놓았다.
영옥이는 졸업반일 때 어쩌다 가출이란걸 했던것이다.
정말 어쩌다 가출이 된것이다.
국민학교 동창인 남학생과 남쪽행 기차를탄 것이다.
그들은 한열흘만에 무사히(?)귀가를 했는데 장기결석의 원인이 그런거였으니 학부모가 들락거릴수밖에 없었다.
시골 국민학교 동창과의 우연한 만남은 반가왔고 둘은 자주 만나게되어 영옥이네 집에도 오게되었다.
영옥이는 어머니와 함께 오빠집에서 살고 있었다. 이일로 꾸중을 자꾸 듣게 되었다. 그 둘은 그럴만한 사연도 없이 어느날 우발적인 도피를 감행했다.
아직 젊은데, 상냥한 올케온다.
철없는 시누이를 감싸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그후 서글서글한 영옥이가 주눅이 들어서 고개가 쳐진채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애당초 모범생이던 영옥이는 고등학교를탈없이 끝냈다.
무난히 교육대학에 합격했다.
이런 가출은 그들에게 약이 되는 수가 있다. 영옥이가 바로 그랬다.
대개의 경우 아이들은자신이 저지른 일이 어느정도의 큰 일인지를 모르고 있다.
별일이 아닌데도 겁내고 숨어 버려서 일을 확대시키는가 하면, 진흙탕 속으로 한걸음씩 빠져 들어가면서도 스스로는 전혀 자각을 못하기도 한다.
두 경우가 다 안타까운 일이다.
울면서 전화속에서 호소하는 소녀에게,
『아빠가 무서워서요.』
자녀들의 잘못을 꾸중할때는 명재판관처럼 뚜렸한 명분을 세워야 한다.
크게 소리만 치거나, 자기의 기분여하에 좌우되어 체벌을 하는건 너무나 위험하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이일은 이렇다라고 엄격하되, 자상하게 얘기해야한다.
잔소리가 심하고, 소리 지르고 술주정하는 어른을 싫어하지만, 청소년을 깊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걱정해서 의논의 상대가 되어주는 어른을 존경하는 청소년들은 솔직하기 때문이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때 울먹이며 말한 영옥이의 목소리가 지금은 전화속이고 세월이 갔지만, 그때의 감동이 오늘도 되살아서 울리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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