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남에게 은혜를 베풀었거든 그것을 되새기지 말고(공치사 하지말고) 남에게서 은혜를 입었거든 영원히 그은혜를 잊지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내가 신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나의 본당주임 김원영(金元永) 신부를 영원히 잊을수가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반백년동안 매일 제대위에서 드린 그 많은 미사의 은혜가 이세상에서 수천ㆍ수만의 영혼들에게 위로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이러한 은혜를 입을수 있었던 것이 김 신부의 음덕이라 여기고 있기때문이다.
김 신부가 어느 공소방문을 했을때의 유명한 일화는 나의 사제생활을 반백년동안 크나큰 귀감이 되어왔다.
당시 본당신부들이 공소방문을 하면서 판공교리 찰고를할 때 시간에 쫓기니까 저녁식사를 하면서 찰고를 듣는일이 자주 있었다.
그런데 김 신부가 어느 공소를 방문, 식사하면서 찰고를 듣고 있는데 점잖은 어느 노인이『신부님, 신부님은 천당 하나는 따놓은 당상입니다』하니 김 신부는『뭐라구요? 자기가 심판자 천주님인가』하고 응답하니까『아닙니다. 꼭 신부님은 천당 재목입니다』하는 그 노인에게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으셨던 모양으로 빙그레 미소를 보내시는 것이다.
그러자 공소방(흔히 공소회장님댁)에 빽빽히 들어차 앉고 서고한 좌중이 신나게 손벽을 쳐댔다.
『내가 죽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천당감이니 천당재목이니 합니까?』하는 신부님 말씀에 그 노인이『원, 저런. 신부님 당신 자신도 그걸 모르십니까? 덕이 높으십니다. 덕이 말이예요』하니까 신부님은『덕이 많다? 내가 무슨 덕이 그렇게 많아서 그러는거요?』하고 되묻는다.
그러자 영감님의 대답이 걸작이다.
『신부님은 모든 덕을 고루 갖추셨는데 그 중에서도 벽덕이 변덕스럽게 많기 때문입니다』하니 좌중은 박장대소하고 신부님은 진퇴양난을 겪었다.
그러면 점잖은 영감님이 왜 좌중 앞에서 변덕장이라는 토를 박아 그런 말을 해서 본당신부에게 무안을 주었을까?
내가 신학교에 다닐때이다. 방학을 해서 집엘 갔더니『요셉아, 년 신부가 돼도 덕이 많은 신부가 돼야한다. 우리본당 김 신부님처럼 덕이 있어야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가지않아 되물으니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들려준 사연은 대충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김원영 본당신부는 항상 노새를 타고 다니셨는데 어느 겨울 매섭게 추운날 김 신부는 공소방문을 가는 도중 산모퉁이에서 얼어죽게된 걸인을 만났는데 주인을 닮아 덕(?)이 높은 그 노새가 걸인을 보자 소리를 지르며 땅을 두발로 파면서 가지를 않고 울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김 신부는 노새의 등에서 얼른 내려 수단속에 입은 솜바지 저고리를 벗어 손수 거지에게 입혀주고 거지의 누더기와 바꿔입고서 거지를 노새에 태워 인근 주막으로 데려가 주막집 주인에게 돈을 주고 거지를 먹여주고 간호해달라고 부탁했다.
김 신부는 주막집 주인이 안된다고 할까봐 주막에서 도마이듯 빠져나와 노새를 채찍질하여 공소로 향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후 우리본당 신부님은「변덕이 높으신분」이라고 공소까지 쫙 퍼졌다는것이다.
음덕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인가. 거지의 누더기를 입고 겨울에 20여 개 공소를 치르는 동안 김 신부는 누더기의 이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이 소문은 공소방문후 누더기를 받아든 식관아주머니의 발설(?)로 동료신부들에게까지 알려진 것이다. 식관 아주머니가 입을 다물었으면 이 숨은 미덕의 향기를 맡을수 없었을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도 부활하신 사건을 여자인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첫번째 일러주어 그날로 예루살렘성 안팎에 쫙 퍼진 것이 아닌가.
만약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부활사건을 먼저 알려주셨다면 그렇게 신속히 알려지지는 못했을것이라고 생각해보곤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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