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을 맞아 교회의 내적 쇄신과 발전을 향해 부단한 노력이 집약되고 있는 가운데 2백주년을 이끌어 온 선두 주자 사목 회의는 최근 각 분야별로 의안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다. 본보는 사목 회의 평시도 분과에서 한국 가톨릭 교회의 토착화를 위한 사목적 방향을 제시한 김승혜 수녀(씨튼까리따스 수녀회ㆍ평신도 분과 저문 위원)의 논문을 세 차례에 거쳐 연재한다.
교회의 주체를 이루는 평신도의 미래상 확립을 중심으로 한국 가톨릭교회의 토착화를 논한다는 것은 그리스도 신앙이 싹튼 지 2백년을 맞는 한국 교회로서는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토착화란 복음의 씨가 뿌려진 토양인 그 문화의 전통 속에 뿌리를 내리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모든 양분을 흡수함으로써 그 문화에 적응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결실을 낼 수 있게 되는 보조적 과정을 말한다.
토착화의 과정은 이미 중국을 통해 유학자들의 손에 의하여 시작된 한국교회의 초기부터 시작된 것이고 그 과정이 박해로 인해 순조롭게 발전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토착화의 문제를 오늘 새삼스럽게 다시 주제로 삼는 이유는 가톨릭교회 선교 방침의 변화로 부분 교회의 특수성이 존중되기 시작한 교회 전체의 분위기 변화와 함께 우리 한국 그리스도교인들 자신의 자각이 새로워 진 때문이다.
이런 변동의 시기일수록 예언자적 역할을 담당한 교회의 임무 중의 하나는 토착화의 과정이 바람직하지 않은 용합에 의한 변질로서가 아니라 우리 전통 속의 가장 고귀하고 순수한 가치와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인간 마음 안에서 만나 최선의 창조설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하고, 교육하고, 분별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교회의 교유성을 찾는다는 것은 가톨릭 교회의 보편성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민족의 빛이요 구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참으로 모든 문화와 인간적 가치를 포용하여 더욱 승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망으로 우리는 첫째, 복음이 선포되고 있는 한국인의 심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그 안에서 깊이 새겨져 있는 사마니즘(무속신앙)인 기초적 종교성을 파악하여 그것을 그리스도 신앙으로 도전하고 재구성으로써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둘째로 고등 종교로서 천여 년 동안 한국인의 정신생활에 영향을 주어 온 불교와 도교의 구원론의 핵심이 되는 명상법을 이 해하여 그것의 그리스도화를 통해 그리스도교적 기도 생활을 깊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겠다.
셋째로, 근세 5백 년 동안 우리 생활의 지도 이념을 이루어 오던 유가(儒家)전통을 새롭게 연구하여 그 안에서도 대중 생활 속에 깊게 남아 있는 제사 의식을 그리스도화함과 동시에 남을 키우고 사회의 지도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인격자로서의 평신도의 모습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다시 말해 동아시아에 자리 잡은 한국이라는 문화 전통의 유산을 우리의 신학ㆍ전례ㆍ영성 속에 흡수하여 그리스도교의 보편성을 구체화 시켜야 할 우리 교유의 사명을 받아들이려는 자세와 희망을 표시하고자 함이다.
최근 3백주년 사목 회의 평신도 분과가 실시한 설문지 초사를 보면 한국 가톨릭 평신도의 다수는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그것을 그리스도 신앙에 비추어 변형ㆍ조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으나 그 절박성 내지 심각성을 인식하는 수는 소수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급하게, 보다는 점진적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가톨릭 교회의 토착화의 미래를 위한 방향을 제시함에 있어서 그 원칙은 제2차「바티깐」공의회가 선포한「비그리스도교에 대한 선언」「종교자유에 대한 선언」및「교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에서 찾아야 한다.
「종교 자유에 대한 선언」은 종교의 자유란 인간이 자기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된다는 대전제를 명시하여 아무도 강요나 박해에 의해 종교적 자유를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 「비 그리스도교에 대한 선언」은 인격의 존엄성이라는 같은 전제 아래 타종교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으며「선교 교령」에서는 한 교회의 성장 과정을 초기의 부식 단계ㆍ중기의 팽창되는 젊음의 단계ㆍ후기의 성숙 단계로 설명하면서 어떤 경우에는 이 세 단계가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바로 이 세 과정을 동시적으로 살고 있는 예로서 한국 교회를 둘 수 있겠는데 한편으로는 성인 개종자들이 들어와 숫자적으로 증가 팽창되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증가 되어 가는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계속 성숙될 수 있기 위한 신학적 영성적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곧 선교라는 대전제를 목표로 하고 있는 2백주년의 한국 교회는 토착화의 필요성을 이러한 선교의 양면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은 오늘날 특별히 종교적 다양성을 지니고 있는 사회로 전통 종교 문화와 그리스도교와의 대회와 교설, 그리고 그를 통한 재창조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한국 가톨릭의 고유한 사명은 우리의 신학과 전례와 영성 생활을 한국의 전통적 범주로 재해석하여 그리스도 신앙이 한국인의 마음 안에 깊이 뿌리내리고 소화됨으로써 새로운 꽃과 열매의 결실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1784년 그리스도 신앙이 한국 땅에 타오르기 시작하기까지 한국인의 종교 전통을 이루어 온 것은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가 중국적인 모습을 띠고 삼국시대로부터 한국인들에게 전래되고 유가와 도가 사상 역시 중국에서 들어와 한국인의 상충 심성을 형성하였다면 무속 신앙은 민간신앙으로 천대받으면서도 계속 한국인의 심성의 기층을 이루어 왔다고 하겠다.
지난 2백년 동안 이런 전통 종교 문화 속에 살면서 계속 발전ㆍ성장해 온 그리스도 신앙은 전통 신앙에서 도움을 받기도 하고 전통 사상을 도전하는 세력으로 갈등을 체험하기도 했다. 따라서 2백년을 맞는 교회로서 현대화의 물결 속에 변동되고 있는 전통 종교에서 발전되어지는 가치들을 그리스도 신앙의 빛으로 조명하면서 그리스도 신자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를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이다.
전통 종교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살아 있는 타종교 공동체에 대하여는 인간적 존엄성에 기초를 두는 대화적 관계의 성립이며 전통 종교에서 흘러나와 우리 문화의 일부분이 되어 버린 인간적 가치들을 인정하고 그것을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받아 들일 수 있는 것을 받아들이며 변형하여 그리스도 신앙이 참으로 우리의 것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표현될 수 있도록 개방된 자세를 갖는 것,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사목적 방침을 제시하여 이런 토착화가 일어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적 토착화의 창조적 과정은 믿는 자들의 마음 안에서 일어날 것이며 교회 공동체는 그 결과를 식별하여 권장ㆍ지도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구두 전승을 통해 전래 되어 온 복합적이고 융합적인 한국인의 심성 이해와 기복 신앙의 그리스도화의 가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인간의 삶이 인간 노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인 힘에 의해 생사화복이 결정된다는 종교적 신앙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무속 신앙에서는 이 초월적인 힘을 그리스도에서와 같이 인격적 유일신으로 표현하지 않았고 수많은 신령들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는데, 단군 신화 등 개국 신화에서 보이는 하늘이라는 최고신의 개념을 막연하게나마 뒷 배경으로 지니고 있었다. 한국인의 무속 신앙이 지극히 현세적인 종교성으로서 그리스도 신앙과 배치 되는 면이 상당히 많음에도 불구, 그리스도교가 한국인들의 심성에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은 초월적인 힘에 대한 신앙 내지는 막연하게나마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어진「하느님」이라는 최고신이 개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곧 한국 민간 신앙 속의 최고신 신앙은 그리스도교적 유일신 개념으로 변형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다분히 지니고 있었다.
둘째로 무속 신앙에 바탕을 둔 한국인의 사회관, 곧 이웃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은 원한 사상이라 하겠다. 그러나 무교에서 중시되는 원한에 차서 죽은 무교의 인신(人神)들이나, 역시 원한에 차서 이 원혼들의 매개체가 된 무당들은 살아 있는 인간들을 위해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 오게 하는 현세적 수단으로 이용될 뿐 온전한 의미에서 그들 스스로의 원한을 품고 인간에 화해와 구원을 가져올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교의 복음은 한국인의 심성의 바탕을 이루는 무속 신앙의 가장 기초적인 종교성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풀 수 없는 한의 맺힘을 진정으로 풀어줄 수 있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한다. 우선 그리스도교는 분명한 내세관을 제시하여 창조주이신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며 그분의 정의로운 심판에 따라 모든 원통함이 온전히 풀린다는 것을 선포한다.
동시에 예수께서 가져오신 복음은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오심을 알리는 것으로 먼저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체험케 함으로써 우리 인간의 마음을 은총으로 넓혀 주고 우리 스스로 남을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이다. 무속에서 무당들이 불구적 도구로 한을 풀어 주던 무당의 역할은 복음의 완전한 빛 속에서 온전히 실현되고 따라서 교회 안에 이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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