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학교에서나 대신학교에서나 어른이나 젊은이나 이토록 어려운 학교생활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해방되려는 심정이 지어낸 조작이 될 것이다.
오월만 되면 달력을 만들어 여닫는 책상 안 뚜껑에 달아 놓고 매일같이 들여다보는 재미! 어떤 때는 매일 뜯는 달력을 몇 장씩 떼어내면서『방학이 며칠 남았다』고 좋아하는 그 심정을 독자는 동정해 주기 바란다.
나도 그 짓을 하다가 들켜서 혼난 적이 몇 번인지 헤아릴 수 없다.
언젠가는 목요일 아침부터 동작리(지금의 국립 묘지 자리) 별장에 갔다. 저녁에 되돌아오니 모든 달력들이 도둑 맞은 양 깡그리 압수되었다. 그날 신학교에서 당직하시던 신부님, 특히 황 루도비꼬(투블레) 신부님이 곧잘 그러하셨다.
또 언젠가는 동작리에서 학생 전원이 산보하고 돌아왔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전원 집합이다. 교실로ㆍㆍㆍ
황 신부님이 들어오시더니『아이고! 야, 너희들이 신학생인가? 뭔가? 세속에 그렇게 빨리 가고 싶어 해여! 신학교보다 집이 더 가고 싶은 학생은 체로 쳐서 다 빼 버릴 거다.(얼거미로 쌀을 쳐서 자디잔 것을 구멍으로 다 빠져나가게 하는 식으로) 이게 뭐냐! 신학생이 달력 만들고, 숨겨 놓고 한 장 한 장 떼다 세속이 그렇게 좋으냐? 그게 신학생이냐?』
하시며 카이젤 수염에 이마에는 세파에 시달릴 대로 시달리신 주름살이 밭고랑을 이뤘는데 언제나 들고 다니시는 긴 장죽을 뻐끔뻐끔 빠시면서 호령호령이시다.
이렇게 혼구멍이 나고도 그 이튿날이면 또 다른 비밀 장소에 달력이 매달린다. 동지들은 쉬쉬하고 자기들끼리만 통했다. 또 불호령이 내릴까 봐서 말이다.
방학해 봐야 일주일 지나면 집도 절도 별 것 아니건만 방학을 기다리는 마음, 우리 당사자 신학생이 아니 로서는 못 느끼리라. 그 그리움, 그 기다림! 어머님 그리는 그 심정을ㆍㆍㆍ
여름방학이 되면 얼거미체로 마구 쳐내듯 학생들을 가려냈다. 지지리 못난 것, 공부에 빵떡만 맞는 자, 평소에 점찍어 체크 당했던 학생은 추풍낙엽으로 우수수 떨어진다. 좋다고 걸머지고 간괴나리 보따리는 신학교와의 영영 이별의 김삿갓 보따리가 되고 마는 비극이 방학때 면 극비에 연출됐다.
『방학 잘 지내고 기쁜 마음으로 등교해야 해!』해 놓고는 방학 동안에 본당신부님께로 비밀 영장이 날아왔다. 『○○○ ○○학생은 개학 때 보내지 마십시요. 그 학생은 이러저러해서 신학생으로는 부당합니다.』해 놓은 것이다.
개학이 경향 잡지에 발표돼서 또 괴나리 붓짐을 둘러메고 본당신부님께『신학교 가겠습니다.』하고 인사를 드리면『응? 그것 참 안됐다, 안됐어! 저걸 어쩌지? 교장 신부님 편지에 넌 보내지 말란다.』하신다.
주저앉아 대성통곡하는 학생에 이참 저참 잘됐다는식으로 돼지꼬리 꼬듯 비비꼬는 학생, 실망낙담하는 학생들이 여기저기 튀어나온다.
개학하고 교실에 와 앉아보면 자리가 듬성듬성 배추솎아낸듯한 형편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랑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ㆍ3)
내가 난 것이 1907년이니 1887년 5월 30일 한 불 통상 조약이 비준된 지 겨우 20년 만에 이 세상에 태어난 셈이 아닌가. 당시 대ㆍ소신 학생이 거의 다 순교자들의 뿌리에서 돋아난 어린 싹들인 셈이다.
1백3년 간을 산골짜기로, 토굴 속으로, 허허벌판으로 남부여대하고 쫓기고 물리고 숨고, 그날 하루 칼을ㆍ곤장을 맞지 않으면『천주님 감사합니다.』소리로 크게 못 내고 이리 물리고 저리 무리는 판국에 겨우 종교 자유를 얻었으니 언제 재산을 모으고 고대광실에서 떵떵거리고 거드름 피울 시간이 있었으랴.
가난뱅이들 틈에서 난 자식들이 혹한과 굶주림과 경멸과 무시 속에서「천주 학쟁이 자식」이라는 자격지심에 숨도 크게 못 쉬던 판국에 쪼달 리고 시달려 고통과 가난과 병고와 아쉬움과 만 가지 어려움에 잘 단련된 자식들이라 대ㆍ소신학교에서 만고 만난이 있더라도 잘 견디는 정신으로 이겨 나가 재교시나 방학 때나 신품 성소 이를 때나 눈 한 번 이리저리 두리번거리지 못하고 지냈다. 성 바오로 사도의『깨어질 질그릇에 보화를 지닌다.』는 그 말로 성소를 잘 간직하고 닦고 빛내고 확고부동한 자세를 굳혀 갔던 것이다.
그런데 중간에 입교 하고 부자도 행세깨나 하고 밥숟갈이 두둑하던 집안에서 온 부자 집 자제들은 방학 때 가서 주저앉고 개학 때 다시 신학교로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속했던 반 68명중에 에서나 노 대주교님 반 68명중에서 잘 사는 집 자손은 거의 다 빠져나갔으니 말이다. 박해 끝난 지 20년, 아니 십 수년 사이 무슨 재산을 모았을까. 예수님이 가난한 자가 천국 간다고 하신 진리가 성소 문제에서 더욱 명확히 밝혀졌다.
『밭 갈려고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교가! 『사막에서 우는 타조의 울음소리』(애가4ㆍ3)같이 처량하게 우리에게 애원하시는 예수성심이 목메어 우시는 듯 방학 전 9일 기구 중에 부를 적마다 목이 메어 반 울음 반 중얼거림으로 이불속에서 목 놓아 불러 보곤 한다.
큰 근심 걱정ㆍ큰일ㆍ난삽한 일이 내속에, 내 교회 내에 생길 적마다 불러 보곤 하는 교가를 목자에게 소개해 본다. 골동품 상점에서 아름다운 고려청자라도 만난 듯 하실 것이다.
당시 교가는 용산 신학교 수호자로 예수성심을 모시고 수호자가 애원하는 기도형식의 라띤어성가였다. 우리말로 옮겨 소개하면 다음과같다.
<후렴>
오!예수 사랑하올신 오! 예수!
너만을 완전히 사랑하오리니 당신도 이 신학교도 떠나지 않으리다
오! 예수 사랑하옵신 오!예수!
우리를 늘 보호하여 주옵소서.
<1절>
신학교 저 밖에서는 세속ㆍ악마ㆍ육정ㆍ흉악한 괴물 우리를 엄습을 하면서 우리를 성소에서 늘 유혹해내오니
<2절>
오!예수 부모친척을 더 사랑하며는 나에게 부당한 자가 되고 말 것이고 내 제자 되는 것마저 부당할 것이니
<3절>
쟁기에 손을 잡고서 되돌아보는 자 진실이 이르는 바니 천국에 들기에 부당한 자라고 나는 훈계하였거늘
<4절>
확실한 너희 성소를 간택받음같이 확정을 짓도록 항상 노력을 하면서 저 모든 죄악들에게 늘 멀리 하여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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