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찌」의 까타리나 성녀는 1522년 이태리의「플로렌스」에서 태어났다.
유명한 가문에서 태어난 까타리나 성녀는 4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잠시 대모의 손에서 장성한 후 교육을 받기 위해 도미니꼬회 수도원에 갔다.
까타리나 성녀는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신심상으로도 크게 진보, 아버지가 집안을 맡겼을 때 도사와 신앙생활을 잘 이끌어 갔다.
그가 12세가 됐을 때 아버지는 그녀를 좋은 곳에 결혼 시키려 했으나 그녀는 주님을 향한 뜨거운 신앙심으로 수녀원에 들어가고 싶다고 뜻을 밝혔다.
그의 결심이 확고하자 아버지는 그가「프라토」에 있는 도미니꼬회 수녀원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했다.
수녀원에 들어간 그는 영세 때 받은 알렉산드리아라는 이름 대신 까타리나로 개명하고 귀족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천한 일도 기꺼이 해냈다.
까타리나 성녀는 깊은 신앙심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운 행실로 모범을 보여 젊은 나이에 수련 수녀장이 됐던 그녀는 30세 때 수도장이 되어 죽을 때까지 원장직을 맡았다.
늘 그리스도와 같은 십자가의 길을 걷고자 했던 까타리나 성녀는 20세 때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모습을 매우 또렷이 보는 비범한 경험을 했다. 이러한 놀라운 일은 12년 동안이나 계속됐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그는 깊은 묵상을 통해「네리」의 필립 보성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개인적으로 필립 보성인을 만난 적이 없었다. 또한 까타리나 성녀는 성혼을 받았으며 1542년 부활절에는 그리스도로부터 반지를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리찌」의 까타리나 성녀는 기도에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그녀에게 조언을 구하러 오는 사람에게도 많은 시간을 바쳤다. 아울러「프라토」지방의 가난한 사람과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1590년 2월 오랜 병고 끝에 세상을 떠난 그녀는 1747년 시성돼 성녀의 품에 올랐다.
「리찌」의 까타리나 성녀의 축일은 2월 1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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