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노라』(Ⅰ꼬린토 9ㆍ22)고 한 사도 바오로는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Ⅰ꼬린토 9ㆍ19). 우리들、특히 신학생들에게 12년 동안 그의 이러한 인생철학은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나는 바오로 사도의 인생관을 따라 배움의 전당에서、그리스도의 사제가 되려는 성전에서 몸담고 있는 동안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은 것에 부끄러움이 없다.
나는 신학교 시절 3ㆍ4년 동안 노 대주교님 방인 내 윗반과 우리 반 학생들의 구두 수선을 책임졌다.
걸상에 쭈그리고 앉아 앞치마를 두르고 가죽 자르는 칼을 들고 이 구두 저 구두 들어오는 대로 꿰매고 깎고 자르고 붙이고 징을 박고 못을 쳐서 고치고、파리가 미끄러질 만큼 반질반질하게 닦아 놓으면 쓰레기통에 들어갈 수밖에 없던 구두가 멀쩡하게 변해 있었다.
그 구두를 신고 구두방을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었다. 『이 다음에 못쓰게 된 영혼도 내 갖은 정성을 들여 꿰매고 자르고 닦으면 주님에게 쓸만한 영혼이 되겠지』혼자 중얼거린 것이 몇 번이었던가.
운동장에 나가나 산보를 가나 성당에 들어가나 내 눈은 근 백 명의 구두창으로 간다. 직책 의식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러나 못쓰게 된 구두가 보이면 『여보세요. 그 구두 내일 내 구두방으로 가져오세요. 그냥 두면 아주 못쓰게 돼요. 꼭 가져 오세요、네?』하고 성당 문간에서 귓속말로 당부하기도 했다.
노기남 대주교님 신발도 형편없는 것을 있는 정성을 다해 신을 만한 구두로 만들어 드린 적이 있다.
학생들ㆍ신부님들 구두가 다 내 손을 거쳐 갔다고 생각할수록 흐뭇하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이사야52ㆍ7、로마 10ㆍ15) 하는 성경 말씀이 진땀이 날 때 나를 위로해 주고 용기를 주었다 포교 전선 제일선에서 복음을 선포할 내일의 역꾼들 구두를 수선해 주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하고 스스로 위안과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는 바오로 사도의 교훈을 가슴에 새긴 나는 방학 때 집에 가도 가족과 이웃 돕는 일을 마다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자식 사랑하는 마음에서 말리셨다.
『요셉아.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목주의 기도나 신공을 드리고 공부나 해야지. 힘든 일하나 병나서 개학 때 못가면 큰일이다. 응!』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 나는 늘 『저는 신부가 되면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겠다고 결심했어요.』라고 대답했다.
논에 가서 벼모를 찌기도 하고 모를 나르고 심기도 하면 열 손가락에 온통 피가 맺히고 두 다리에 알이 배고 얼굴이 퉁퉁 부어올랐다. 어머니는 걱정이 되셔서 말리셨지만、농사일 돕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보리를 거둘 때가 됐는데 일손을 구할 수가 없었다.
혼자서 넓디넓은 보리밭을 깡그리 베어 내고 한단 한단으로 묶었다. 눈에 찔리는 등 고생 끝에다 묶고 지게에 져다 날랐다. 지게를 지고 일어서다가는 고꾸라지고 엎어지고…지게질 한번 못해 본 책상 도령이 지게를 지니 지게가 놀라 자빠진 모양이지. 지게가 자빠지기 전에 글방 도령이 먼저 고꾸라졌으니 지게도 코웃음을 쳤을 거다. 7전8기의 용기를 내어 하고 또 하고 거듭하기 얼마 만에 보리를 반타작이 되다시피 거뒀다.
그다음은 콩심기였다. 며칠 후 파릇파릇한 삶의 생명을 자랑할 때 노동의 즐거움ㆍ농군의 피나는 고통을 체험하기도 했다.
먼 곳 우물로부터 물지게를 져다 물 항아리를 채우자 어머니는 대견해 하시면서도 『몸조심해요』라고 걱정의 말씀을 잊지 않았다.
여름 방학때는 피사리도 했다. 몇 고랑 안가서 양쪽 종다리가 따갑고 근질근질해 온다. 웬일 인가하고 보니 시커먼 거머리 떼가 내 종다리를 쳐들어오는 게 아닌가. 뜯어 가며 해질 때까지 피사리를 하고 오니 어머니는 깜짝 놀라셨다. 비름나물 잎새를 붙인다. 된장을 바른다 하며 『이게 거머리 물린 데는 그만이다』하셨다.
지금 이런걸 해봐야 신부된다음에 농군들 고충을 알아줄 거 아니냐는 내말에도 어머니는 언제나 안스러워하셨다.
철학 신학과로 올라가서는 2층 올라가는 계단을 매일 밑 초로 문지르고 걸레로 30ㆍ40분을 닦아 반짝반짝하게 해 놓기도 했다. 동기생들은 스케이트장인 줄 알고 주르르 미끄럼을 타기도 했다.
농번기에 거리를 다니면 길가에 묘판을 놓고 혼자 일하는 할머니를 보기도 한다.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 모판을 깡그리 비우고 모를 내주면 주름 살고랑으로 빙그레 웃음 물결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 어쩐지 마음이 가뿐하다.
나는 이렇게 50년을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라』는 바오로 사도의 교훈을 지키느라 했건만 어찌 그리스도의 사랑에 맞갖는 그분의 아들 노릇을 제대로 했을까. 가끔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하면 가슴이 울렁거림을 다독거릴 길이 없는 것은 내 한탄의 삭풍이 아닌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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