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그리스도의 고통과 십자가의 죽음을 묵상하며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깨닫는 사순절이 시작됐다 한국 교회 2백주년을 1년 앞두고 맞는 이번 사순절은 이 땅에 복음의 씨앗으로 썩어 간 순교 선열들의 발자취를 통해 우리의 신앙생활을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참회와 쇄신의 자세가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따라서 본보는 2백주년 정신 운동 위원회가 84년도를 겨냥하여 2년 계획으로 실시하고 있는 사순절 특별 강론을 간추려 연재한다. 다음은 지난 19일 명동 대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광야의 유혹」이란 주제로 강의한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마태오ㆍ마르꼬ㆍ루까 복음은 한결같이 예수께서 광야에서 유혹받으신 것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봉독한 마태오 복음은 보통으로 처음에는 본색을 드러내지 않다가 끝에 가서 그 본색을 드러내는 유혹의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 서술하고 있다.
마태오복음에 따르면 유혹은 예수께서 40일간 광야에서 단식하시고 몹시 시장기를 느끼셨을 때 돌을 빵으로 변하게 하라는 것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것, 높은 산에서 온 세상의 부귀영화를 보여주고 악마에게 엎드려 절하라는 것의 세 가지이다.
이 세 가지의 유혹은 빵과 영광ㆍ권세에 대한 것으로, 인간이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이른바생리적 욕구, 사회적 인정의 욕구, 지배의 욕구를 이용했다. 보통 이러한 욕구들이 충족되면 인간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 모든 것을 얻고 나면 오히려 자기 상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허탈감에 빠진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빵과 영광 등 썩어 없어질 것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고 그 이상의 것인 영원한 가치ㆍ불멸의 생명을 위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마음 속 깊이 원하는 영원한 가치관은 바로 하느님이시다. 그러므로 유혹의 내용은 빵과 영광, 권세이지만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등지게 하는데 있다. 예수께서 겪으신 유혹도 이와 같이 하느님께 대한 찬반을 묻고 있다. 마태오복음에 서술된 세 번째 유혹은 세상의 모든 것을 얻는 대신 악마의 종이 됨으로써 자기의 생명을 잃는 본색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이런 측면에서 첫 번째 유혹 역시 하느님께 대한 선택, 믿음의 여부를 노리는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유혹은 얼핏 하느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라는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인간 예수로 하여금 하느님께 의심을 두게 하여 궁극적으로 어떤 처지에서도 하느님께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하려는 흉악한 속셈이 숨겨져 있다.
첫 번째 두 번째 유혹을 좀 더 분석해 보면 돌을 빵으로 변하게 하라는 첫째 유혹은 예수께서 40일 동안 단식하시고 몹시 허기지셨을 때의 일이다.
이 유혹은 단지「하느님의 아들」임을 증명해 보라는 것으로 보이지만 예수께서 몹시 허기지고 굶주리신 것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악마는 극도의 굶주림 속에 있는 예수께 하느님의 능력을 가진 자로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주어진 능력을 우선 자신의 배고픔을 달래는데 사용하라고 유혹한다. 남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주의로 몰아넣으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인간 세상의 죄와 그 죄가 낳는 불행은 근원적으로 우리가 하나하나가 지니고 있는 개인주의에서 온다.
그러나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에서 벗어나고 자신과 타인에 대한 파단이 똑같고 더 나아가 자기보다 남에게 더 관대하여 타인을 자기처럼 사랑할 때 구원이 시작된다. 자신도 상처를 입고 위로와 사랑을 받고 싶지만 동시에 남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진 자가 있다면, 진정 이해받기보다 이해하고 사랑받기보다 사랑하려는 이가 있다면 우리 안에 구원이 시작되고 우리 하나하나가 메시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이 남을 위해 온전히 자신을 바친 존재임을 악마가 배고픔을 이용하여 이기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자신을 먼저 생각하도록 공략했음을 아시고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셨다.
그러나 첫째 유혹에서 생각해야 할 문제는 인간의 구원과 빵이 문제이다. 현대 세계에서도 빵문제는 세계 평화와 관련되어 있을 정도이다. 도한 예수께서도 빵의 기적을 통해 굶주린 이들을 돌보셨음은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구원이 일시적 굶주림이나 의식주 해결에 있지 않고 죄와 죽음으로부터 참된 자유를 주시려는데 있음을 알려주시려고 하셨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남을 위해서도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유혹과 빵을 주신다면 왕으로 섬기겠다는 군중들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으셨다.
40년간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면서 하느님을 굳게 신뢰했던 모세와 같이 온 인류를 죄와 죽음의 노예 상태에서 이끌고 나오시는 신약의 모세 예수께서는 모세처럼 신명기8장3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유혹을 물리치셨다.
두 번째 유혹은 어떤 의미로 더욱 심각하게 보인다. 악마는 성서의 말씀으로 예수를 시험하며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유혹한다. 그런데 이유 혹에 대한 예수의 태도는 소극적으로 보인다.
우리는 세속 권력으로부터 시련을 겪을 때 물의와 부정이 진실처럼 판을 칠 때 그 진상을 밝혀 주고 싶고 하느님의 힘, 교회의 단결된 힘이 이를 물리쳐 주기를 기대한다.
두 번째 유혹은 바로 인간 예수가 하느님을 떠보는 인간 편에서 하느님을 시험해 보려는 흉계가 감추어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온 것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부순 종에서였다. 그 때문에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셨고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셨다.
그래서 악마는 결코 예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로 유혹했다. 이 유혹은 십자가의 죽음을 예고하신 다음 베드로를 통해 십자가에서 유대 지도자들의 입을 통해 또한 같이 십자가에 달린 죄수, 지나가는 사람들을 통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
십자가만큼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것이 없다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시는 성자 그리스도의 모습과 우리를 위해서는 당신 외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신 하느님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이 드러나는 십자가는 이 세상 밑바닥까지 가고 모든 죄인들의 마음속까지 비추기 때문이다.
세 번째 유혹은 악마의 본색이 너무나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하느님보다는 세상의 재물과 부괴 영화를 섬기기 쉽고 현대인 특히 가진 자들이 빠지기 쉬운 유혹에 싸여 있다.
그러나 2백주년을 앞두고 마음이 준비를 하는 이 시기에 우리는 순교 선열들의 믿음을 살펴보아야 하겠다. 배교한다는 말 한마디를 거부한 채 만물의 주인이시며 생명이신 하느님을 저버리지 않은 순교자들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얻어도 그분을 잃으면 헛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처럼 하느님께 버림받은 자와 같은 절망과 고독 속에서도 이른바 신의 침묵 앞에서도 진실하신 하느님께서 반드시 구원해 주시리라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었기에 순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순절 동안 예수의 믿음을 마음으로부터 따르고 본받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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