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흔들리며 바위가 갈라지고 무덤이 열리면서 잠들었던 많은 옛 성인들이 다시 살아났다.』(마태오 27ㆍ51) 내가 입학한 지 1년 되는 1921년 봄 사순절 때의 일이다.
사순절을 마감하는 성주간 끝 3일, 즉 성목요일 성금요일 성토요일 저녁 여섯시 경부터 대ㆍ소신 학생 전원과 교수 신부님들이 성당에 모여 독서경(옛날 말로는 야과경-MATUTINUM)과 찬미의 기도(옛날 말로는 라우데스-LAUDES) 그 기나긴 두 가지를 순 라띤어 노래로 엮어 나갔다.
전원이 성당 좌우로 갈라 앉고, 교수 신부님들은 뒷자리에 자리 잡고 환히 켜진 전등불 아래서 이 기도를 바쳤다.
제대 앞 계단에서 우리 윗반 노 바오로 기남ㆍ최 마티아 학생이 모든 성기와 시편을 먹이면 전원이 應을 하는 특별 기도였다. 나는 일학년 지 1년도 못되니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임하소서 성신이여」같은 우리말 기구를 하면 좋을 텐데…』하고 머리를 갸우뚱갸우뚱했다.
「에라. 방울 소리 듣고 원앙새나 따라가자」는 심정으로 따라가는데, 어떻게나 줄행랑을 치는지 따라갈 수가 없었다. 뒤범벅을 하고 깔아뭉개다가 끝부분에 가서만 큰소리를 냈으니 그 기도가 제대로 됐나 지금도 궁금하다.
성가대 앞에는 삼각형의 큰 촛대가 준비되는데, 시편 하나를 끝내면 아래서 위로 좌우로 올라가며 촛불 하나씩을 성가 인도자가 끈다. 어린 마음에 「저 열 네 개의 촛불이 언제나 다 꺼지나. 그래야 얼른 나갈 텐데」하고 조바심을 쳤다. 솔직히 고백해서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할 영가는 곡조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어떤 때는 구슬프게 이어졌다.
곡에 맞추어 내 마음의 칠현금(七絃琴)이 영가의 리듬을 타고 울려 구슬픈 대목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게 아마 예수님이 고통을 당하실 것을 다윗이 예언한 구절이겠지」지레짐작으로 넘겨짚으면서 억지로 그 리듬과 억양에 내 심금을 맞추어 나갔던 것이다. 순전히 방울 소리만 듣고 원앙새 따라가는 셈이었다.
드디어 마지막 촛불이 꺼졌다. 은성당 내의 불이 다 꺼지고 쥐죽은 듯 무거운 적막이 잠깐. 곧 예수님 심장이 뛰는 듯 함께 일제히 성가 책을 들고 장궤들을 쾅쾅쾅 두드리고 나서는 얼마 동안 고요함이 은 성당을 꽉 채운다. 슬픈 표정들이다.
「아, 저건 예수님이 운명하실 제 성모님과 요한 사도도 말없는 가운데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대화가 이뤄지는 긴박감을 주는 시간 인가 보다」하고 짐작하니 내 가슴도 뛰고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처참한 죄수로 세상 만민의 구속에 제물로 바쳐질 때 천둥 번개가 치고 지진이 나서 천지가 진동하고 일월이 빛을 잃고 바위가 터지고 예루살렘 성전에 지성소를 가리웠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쫙 찢어졌다. 예수님의 운명을 무념무각한 하늘과 땅도 저렇게 벌컥 뒤집어 천지의 창조주가 인간으로서 죽으심을 슬퍼했다.
이를 추억하는 뜻으로 캄캄한 성당 속에서 성가 책을 쾅쾅 두드리며 성당도 성가 책도 슬퍼하자는 뜻이었다.
후에 동작리 산보 갈 때 박 마르꼬동헌 부제님께 여쭈어 보니 내 짐작이 꼭 들어맞았다.
지난해 11월 5일 내 77세가 시작되는 생일 미사를 예수님이 3일간 계셨던 골고타의 돌무덤에서 드리면서 나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생각했고, 언제나 그리운 떼네 브래(악흑신공-Tene brae)를 생각했다.
「나면서 죽음 자리로 줄달음치는 내 인생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던 예수님의 무덤은 당시 부자였던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자기를 위해 골고타 산을 사고 순묘를 파서 만든 돌무덤이었다.
골고타 산에 있는 예수님聖墓 성전은 326년 콘스탄틴 황제의 모후 헬레나 성녀가 예루살렘에 순례와 그곳에 있던 우상들을 없애고 예수님이 지셨던 십자가와 혐구들을 발견한 뒤 산을 정리해 대성전을 건축한 것이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지진이 나고 바위가 터진 것을 유리로 덮어 지금도 누구나 볼 수 있게 했는데 갈라진 바위를 보면 바위 결을 따라 갈라진 것이 아니라 세로로 다 터져 있었다.
신학생 시절 어둠속에서 그 슬픈 광경을 영가로 읊었던 것은 신학교 생활 중 성주간 끝 3일간의 커다란 영성 사업이었다.
야과경(지금이 독서의 기도)과 찬미경(지금의 아침기도)이 사목 생활 50년간 내게는 언제나 목마른 사슴의 목을 축이는 시냇물 같은 것이었다. (계속)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