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봉독한 마태오복음 26장69절부터 75절까지의 사도 베드로의 배반 기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주님을 배반하며 생활 하는 우리들에게 자신의 연야간 모습을 재발견하고 재출발할 수 있는 묵상 자료가 된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가 3번씩이나 부인한 주님은 누구이신가?
복음에는 주님이 누구 이신지를 알리는 기사가 많이 등장하지만 이 시간에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요한복음 14장6절을 주제로 우리들의 일상생활을 통해 하느님을 배반하는 점들을 살펴보겠다.
첫째로 길이신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것은 인생이 십자가의 길이며 고행의 길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인생은 함께 사는데 뜻이 있지만 그 자체가 십자가의 길이며 고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베드로와 같이 함께 사는 데에서 오는 기쁨은 함께할 줄 알지만 자신을 죽여야 하는 고통과 인내, 절제를 거부하여 고통당하는 주님을 외면하기 쉽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부부ㆍ부모와 자녀, 이웃,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이와 같은 배반을 주고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키운 자녀가 홀어머니를 외면하고 자신을 희생하며 교육시킨 동생이 언니를 배반하는 사례들은 주님을 배반한 베드로의 모습이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을 알려준다.
현대인들이 범하는 잘못 중의 하나가 함께 사는 데에서 오는 고통과 십자가를 멀리하는 점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향락이나 편리함을 쫓다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고통은 함께 사는 데에서 주어지지만 주님 안에서 이해하고 소화시켰을 때 자신을 성장시키는 영양분이며 주님을 닮게 하는 은총이 된다.
둘째로 진리이신 주님을 부인하는 태도는 진실성을 상실해 가는 자신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요즈음 학생 피정을 지도하면서 학생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내용에서 진실성이 결여된 것을 보면 진실을 외면하는 모습이 발견된다.
오늘날 사회에는 아는 사람은 많지만 사는 사람은 적다. 지식인은 많지만 지성인은 적고 교리와 신학을 잘 아는 종교인은 많지만 알고 있는 것을 생활하는 신앙인은 적은 것이 현실이다. 현대인의 병은 너무 아는 것이 많아 비울 줄 모르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진리의 삶은 자신을 만나고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함으로써 마음을 비운 다음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채울 때 가능하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요한8ㆍ32)는 복음 말씀에 따라 우리는 거짓과 위선, 체면과 긴장 불안과 갈등 분노 속에 사는 「사람 앞의 사람」이 되지 말고 「하느님 앞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보기 두려워하며 진정으로 고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점차 텅 비어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머리로 만 따르고 마음으로 따르지 않는 신앙은 기쁨을 주기보다 무거운 짐과 갈등만 안겨 주기 때문이다. 서 있는 사람보다 앉아 있는 사람이 더 편안한 것은 몸을 맡기는 면적이 보다 넓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는 모두 내게로 오라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의 영성 생활도 하느님께 맡기는 시간이 많을수록 편안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반대로 자신을 하느님께 내어 맡기지 못하고 자신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갈등과 불안한 삶속에서 진실 된 인간의 모습을 상실하며 진실 자체이신 주님을 계속 모른다고 부인하게 된다.
세 번째로 생명이신 주님을 부인하는 것은 창조주이신 주님, 곧 사랑이신 주님을 거부하는 것이다.
한 사회학자는 3일 동안 굶은 쥐를 가지고 식욕ㆍ애욕ㆍ모성애에 대한 실험을 하여 동물이 가지고 있는 욕구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모성애라고 했다. 그런데 받으려고만 하는 개인 중심적 생활 방식은 생명까지 주신 주님을 생활 속에서 알게 모르게 거부해 왔다.
가정에서의 따뜻한 위로나 칭찬을 주고받지 않는 것도 자신까지 송두리째 내어 주신 주님의 사랑을 배반하는 것이다.
생명은 흙속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온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길을 찾고 있지만 길을 찾는 고통, 진리를 찾는 고뇌를 외면한 채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시한다. 눈에 보이는 열매를 좋아하면서 흙속에 묻힌, 눈에 보이지 않는 씨앗을 찾아보지 않는 현대인들은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어 자기를 상실해 가고 있다. 자신감을 상실하고 생의 의미마저 상실한 채 권태와 무력함에 빠진 현대인들은 이를 탈피하려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진실한 생명은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주님을 만날 수 있을 때, 곧 고독을 만날 때 얻을 수 있다. 인간의 내면에서 보이지 않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고독을 멀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3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한 사도 베드로가 땅을 치면서 뉘우칠 수 있었던 것은 닭의 우는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침묵을 싫어하고 고독을 멀리하는 현대인들은 조화는 만들어도 생명력 있는 풀 한포기 만들 줄 모른다. 생명력 없는 삶에는 사랑이 없고 밝음과 따뜻함이 없는 삶은 메말라 가는 마음을 채우지 못하여 주님 안에 새롭게 태어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흙은 더러운 것을 많이 받을수록 기름진 흙이 된다. 시골을 여행한 사람은 농부가 씨앗을 뿌리기 전에 흙을 갈아 엎는 것을 본다. 우리의 마음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에 말씀을 뿌리기 위해서는 더러운 것을 많이 받을수록 기름진 땅이 되는 점을 생각하며 마음의 흙을 갈아야 하겠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사순절이 시작될 때 들은『사랑아,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을 되새겨야 한다. 또한 우리는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땅을 치며 운 베드로와 같이 우리의 마음에서 울려오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땅을 치며 통곡하는 사순절이 되도록 해야겠다. 특별히 1주일 동안 주님의 사랑과 자신을 기만했던 언행을 반성하는 묵상 자료로서 초대교회 신자들의 모습이 나타난 사도행전2장 42절을 제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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