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필시 서인석 신부의 최근 저서「성서의 시인들」에 대해 서평을 쓸 자격은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단지 성실한 크리스찬이고자 애쓰는 문학도로서 세속이 문학작품만을 연구의 대상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서를 감히 일반 문학의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도대체 성서가 문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금껏 살아왔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감히 이 책에 대해 언급하고자 하는 용기를 갖게 된 데에는 다음 두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성서가 이 세상의 그 어떤 문학작품들보다도 가장 훌륭한 문학작품이라는 것을, 이 책「성서의 시인들」을 읽어 나가면서 새삼스러이 내가 깨달았기 때문이며, 그 둘째는 이 책을 통해 얻은 기도 생활의 변화와 내적 쇄신, 그리고 부단한 재생의 반복 등등에 대하여 어떻게 해서라고 고통 받는 이웃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애정과 기쁨과 결의를 비로소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은혜입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시종 내 영혼을 떠나지 않은 세 개의 낱말이 있었습니다. 그 첫째 낱말은 20세기의 현대를 살고 있는 공동 단일 운명의 생명체인 「우리」라는 것이었고 둘째 낱말은 이 책의 소재요 동시에 연구 대상인「시편」이었으며 셋째 낱말은 우리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원천이신「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늘상 약간의 감기 운을, 달고 한 여름에도 회색빛 스웨타를 걸치고야 사는 사람. 아픈 이들을 이해하는 친구. 몇 차례 이유 없이 뺨을 맞아도 십자가 한번 우러르고 미간 한번 찌푸리지 않을 사람. 참는 이들을 이해하는 친구. 보는 이의 마음을 슬프게 하리만큼의 수려한 얼굴에 지혜의 빛이 가득찬 선한 눈을 지닌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애오라지 따라가는 하느님 아들. 이러한 인품과 용모의 저자 서인석 신부는 이 책에서, 겉으로는 온화하고 가라앉은 음조로 속삭이듯이 말하지만 그의 가슴이 격정으로 끓고 있음을 나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우리들」자신에 대해 그가 너무도 깊은 통증(痛症)을 느끼고 잇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조용조용히 인간의 본성을 파헤칩니다.
『오늘날 우리는 불의의 희생자가 되어 굶주리며 공포에 떨고 있다』(P31)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인류가 참으로 가없고 측은한 존재로 인식된다는 저자의 심정을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구절입니다. 그러나 한편
『비극과 죽음은 영화의 관객들처럼 인간이 실제로 열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P32)라는 표현을 통해 저자는 인간의 악마적 속성을 고발하고, 오늘날 인류가 비참한 지경에 빠져 있는 것이 사실은 인간 스스로가 자초한 결과가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반문으로부터, 인류의 아픔이, 진실로 우리 모두를, 아니 바로 나 자신 개개인의 아픔임을 깨달으면서, 적자는 스스로 인류 고통의 핵심 깊은 속에 자신의 거처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오대양 육대주에 흩어져 살고 있는 고통당하는 수많은 사람들, 이들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바치는 기도란 매우 기계적이고도 느낌 없는 기도문일 뿐이다.
미사 중에 신자들이 기도를 들어보면 기도하는 어조는 강 건너 불 보듯 아주 냉담하고도 천연덕스럽게 울리는 것 같다. 하지만 시편의 시인들은『전쟁과 기아에 허덕이는「그들을」위해 기도합시다.』라고 말하지 말고『전쟁과 기아에 허덕이는「나」를 위해서 기도합시다』라는 기도를 요구하고 있다. 「그들」이라는 3인칭 대신에「나」라는 일인칭을 요구한다. 내가 성서의 이 시집을 열 때마다, 나는 거기서 불의에 쫓기며 굶주리고 병고에 시달리며 공포에 떨고 있는「나」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P32)
이처럼 인류의 고통을「나」의 고통으로 수렴(收斂)을 펼쳐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가슴과 마음으로 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우리」는, 「시편」이 원해 하나의 기도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의 생활 체험에서 얻은 의미 깊은 사건을 인류 구세 사적 차원의 하느님 개입으로 받아들인 탄원과 찬미의 기도였음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결국「시편」이 이 시대의「우리」들에게 의미가 있기 위하여는 그 노래가 우리들 각자의「내 노래」「내 기도」가 될 때에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저자는「시편」을 우리의 기조로 바꾸기 위한 가능성과 합법성을 세 가지 단계로 시편들이 창작되던 당시의 상황으로 몰입해 들어가는 일이며 두 번째 단계는 시편에서 말해지는 이야기로 현대 교회의 목소리로 바꾸어 이해하는 작업이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내 것, 즉 내 노래, 내 기도로 삼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시편」의 주제(主題)가 무엇 보다고 가장 강하게 표출된 것은 생명에 대한 열절한 갈구라고 저자는 말합니다(제4장). 다시 말하면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영육(靈肉)의 갈등을 지양(止揚)하면서 삶의 의지를 순진하게 불태우는 사람들이 곧 시편이 작가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하여는 인습의 껍질에서, 탈피하며 항상 새로움을 추구할 줄 알아야 하고 (P55)영혼이 내재(內在)할수록 그 육체가 곧 영혼임을 깨닫는 사람에게만 구원(球援)의 문이 열려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시편」을 자신의 기도로 삼으셨던「예수그리스도」와 개별적으로만 남으로써 드디어「시편」이나 자신의 기도가 된다는 확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상으로 필자는「우리들」-「시편」-「예수 그리스도」라는 삼각관계의 윤곽을 밝힌 셈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설명의 편의상 필자가 이 책을 읽고 이해하여 간 과정을 뿐이요, 실제에 있어서 저저 서인석 신부는 이 책의 어느 페이지에서도 예의 없이 이 같은 삼각 구조적 해석 태도로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구원의 신비를 성실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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