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흐르고 또 흘러 62년전 용산의 지형을 되돌아 보게한다.
용산신학교에서 내다보면 바로 앞에 작은 산이 있고 그 넘어로 샛강(지금의 旭川)이 한강지류로 당고개옆을 지나고 청계천에서 흘러내리는 개천(염천교)과 합류된다. 동작리 별장에 목요일마다 가려면 이 개천 징검다리를 펄쩍펄쩍 뛰어 용산역 옆에 설치된 가스 발전소를 왼편에 끼고 뚝을 돌아 이촌동을 오른편으로 하고 지나갔다. 여기서 조금 가면「새남터」성지가 있다.
하얀 모래펄에 여기저기 쇠뜨기풀이 난 이곳은 1801년 신유박해ㆍ1839년 기해박해ㆍ1846년 병오박해ㆍ1866년 병인박해때 주교 2인ㆍ신부 9인이 목숨을 내걸고 신앙의 자유를 우리에게 얻어 주기 위해 귀한 생명을 내걸고 숨져간 곳이다.
이곳을 지날 때 진베드로 교장 신부님은 단장으로 『저기 버드나무가 보이는 바로 그 자리』라고 일러주셨다.
지금가 보면 용산역 가관고 바로 앞에 화단을 셋 만들어 놓은 곳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순교 성지가 일목요연하게 전망되는가 하면, 신학교 발치에는 큰 은행나무가 언덕 위에 서 있고, 그 나무 아래 커다란 기생지이 두 채가 약간 떨어져서 자리 잡고 있었다.
그 하나는 八景團, 또 하나는 志忠團으로, 신학교에서 만과(저녁기도)를 드리는 바로 그 시각에 사미센(三味線)을 치며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불러 댔다.
2층에 자리한 소신학교 학생들과 3층의 대신학교 침실에서는 잠이 들만 하면 이 악마의 장난이 어지러웠다. 지옥의 환상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신학생들은 소신학교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다 사춘기에 다다른 나이가 아닌가. 이것이 큰 유감이고 12년 동안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지옥으로 당장이라도 끌어내릴듯한 악마의 환상에 시달리는 것도 유감이었다.
어떤 학생은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마사비엘 성모님 동굴로 달려가『성모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견딜 수가 없습니다.』하고 밤이 지새도록 애걸하기도 했다. 눈물 콧물 뒤범벅이 되어서…『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루까6ㆍ21)
세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가슴의 불꽃에 기름을 붓듯 춤추고 노래하고 웃으며 술 마시는 모스들이 환한 불빛 아래 아롱거릴 때 신학생들은 이 말씀을 되새겼다. 『지금 웃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날이 올 것이다.』(루까 6ㆍ26)
12년을 들볶여야 하는 젊은이들은 신학생이라는 입장에서 이말 또한 교훈으로 받아 들여지만 어쩌자고 신학교 턱밑에 악마의 전당이 버티고 있을까? 헤아려 보면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려는 주의 섭리인지도 모를 일이다.
내 어린 가슴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전에는 삭발례ㆍ1품ㆍ2품ㆍ3품ㆍ4품ㆍ5품(次副祭品)6품(副祭品)7품(司祭品)을 거쳐야 했는데, 4품에서 5품까지는 만1년의 기간을 두어 일생을 동정을 지킬 자신이 서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자진 탈락한 사람이 있었다.
이웃집 담 너머로 한 송이 장미꽃이 피어 있으니 얼마나 아름다왔겠는가. 하지만 꽃송이 밑에 날카로운 가시가 있음을 몰랐으리라.
근 1년반을 두고 교장 신부님ㆍ고해신부님ㆍ동료들이 달래고 말리고 빌어도 다 소용이 없었다.
급기야 그 학생이 붓짐을 싸고 작별 인사를 드릴 때 그렇게 엄격하던 교장 신부님도 눈물을 흘리셨다. 울음 섞여 떨리는 목소리로『그래, 잘 가거라.』마지막 그 말 한마디로 그의 마음을 뚫지는 못했다.
그는 기차를 타고 쿵더쿵 쿵더쿵 한강철교를 건넜다. 차창으로 빤히 건너다 뵈는 신학교 유리창은 햇빛을 받아 아름다웠다. 한강 다리로 미처 다 건너기 전에 그는『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후회를 했다. 즉시 지필묵을 꺼내 만리장성의 하소연 편지를 교장 신부님께 써서 그 다음 역에서 잠깐 내려 우체통에 넣었다.
그러나 이미 참아 주는 시간은 다 지났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나는 그를 지켜보았다. 눈물겨운 세상살이…그럴줄 몰랐다고 했다.
모든 신학생들은 12년 동안 이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시련을 견디었으며 세속적 욕심을 짓밟는 공부를 했다.
옛날 이집트 사막에서 한 평생 은둔 생활을 한 성 안또니오의 이야기를 12년 동안 몇 만번을 되새겼다.
안또니오 성인은 매일 기구하는 동안 악마가 앞치마를 두르고 잔칫상을 차려 들고 날라리 춤을 추며 유혹했지만 눈도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도 성모마리아께 애원했다.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선 이 꼬마를 살려주소서. 신부되는 영광을 성모님은 보시옵소서.』하고.
다행히 임 마티아 신부님이 60년 전 그 광경의 삽화를 만드셨기에 여기에 제공해 보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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