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 우리 시대의 현실 앞에서 이스라엘의 시편들로 기도하던 시인 예수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빌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기도의 길을 찾아가기를 바랄뿐이다』라고 밝힌 저자 서인석 신부의 「성서의 시인들」집필 의도는 이글의 앞부분(上)에 이미 밝혀졌습니다.
이제 필자는 저자가 이 책을 묘사해 간 기본 골격을 풀이 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서로 교차하는 두개의 줄기로 짜여져 있습니다. 그 하나의 줄기는 시편을 구조적으로 파악하는 분석과 재결합의 방법이고 다른 하나의 줄기는 말씀이 지닌 비의(秘議)를 생생하게 깨닫기 위한 의미론적 조화(調和)의 방법입니다.
그리하여 저자는 부단히 모순과 반대개념의 낱말,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엇갈리는 명제들을 우리들에게 제시해 줍니다.
즉 구약의 시대와 오늘의 시대ㆍ영혼과 육신ㆍ나와 남ㆍ혼자와 여럿ㆍ찬미와 탄원ㆍ삶과 죽음ㆍ말씀과 침묵ㆍ인간과 하느님ㆍ현존과 비 현존ㆍ순간과 영원 같은 것들이 어떻게 하나로 묶일 수 있는가를 밝혀 줍니다.
이 책 전편에 흐르고 있는 서술 방법이 이러한 모순의 역설적 합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데서나 쉽게 그 예를 지적해 볼 수 있습니다. 가령 다음과 같은 귀절을 눈여겨 읽어 보기로 합시다.
『하느님은 우리와는 절대로 다른 분(絶對他者)이시다. 그것이 더욱 뚜렷이 드러나는 것은 그분이 가장 범상한 인간의 길을 걸으셨을 때이다』(Pㆍ71)
『인간은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빨리 지나가는 한순간, 곧 자신의 현존(現存)이 비 현존(非現存)으로 대치되는 듯한 그 순간 속에서 자신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지나갈 때, 하느님의 영원 속에 도달하는 것이다.』(Pㆍ193)
이와 같은 설명이 부담 없이 우리의 가슴을 울리기 시작할 때에, 우리는 서서히 이 책에서 저가가 의도하고 있는 두 가지 목적을 확실하게 볼 수 있게 됩니다. 그 하나는 겉으로는 「시편」에 대한 명상인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현대의 성서신학(聖書神學)이 어떠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가를 부담 없이 밝혀 주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실의에 차 있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역사화 사회에 깊은 신뢰를 가짐으로써(Pㆍ110)우리는 궁극적으로 우리를 지켜서(Pㆍ88)구원에 도달 한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성서는 살아 있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서를 올바르게 읽을 수 있어야만 살아 있는 말씀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서는 옛날이야기이지만 그것이 예언이시기 때문에 세대를 초월하여 새로워지는 기다림의 말씀으로 바뀌어 들려야만 합니다.
그러한 능력은 아마도 성령 안에서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시편」을 해설하면서 성령의 역사(役事)를 표현적으로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시편」을 해설하면서 성령의 역사(役事)를 표면적으로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시편」을 작곡한 분 가운데에서 가장 탁월하신 분은 예수그리스도였다고 저자가 간명하게 주장할 때(Pㆍ207),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하느님의 성령 안에서 저자와 우리와 옛 그리스도가 하나의 마음으로 동화되는 뜨거운 감격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필자는 이 책이 결코 아무에게나 쉽게 읽힐 수 있는 책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 두고 싶습니다. 저자가 걸어가고 있는 명상의 흐름을 따라가지 위하여 우리 독자들은, 저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나 사실은 깊은 진통 끝에 내어놓은 금언(金言)과도 같은 한마디 말에 대해 충분한 묵상을 거친 연후에야 그 뒷 구절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끝부분에서 몇 구절을 찾아 음미해 보십니다.
『지구라는 작은 별 안에서 잠시 살다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인간에게 창조주의 이름이 알려져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Pㆍ223)
『처음부터 창조는 부드럽고 조용한 말씀의 업적이다.』(Pㆍ224)
『성서는 사랑이 가능성 안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보는 듯하다.』(Pㆍ225)
『인간은 신(神)이다. 그가 비록 사멸하지만「지존의 아들」이기 때문이다.』(Pㆍ227)
『하느님께서 인간의 살인 본능을 치유하시는 날이 오면 사자와 늑대는 초식을 할 것이며 서로 화해할 것이다.』(Pㆍ230)
이러한 글들은 문맥에서 떼어놓고서도 훌륭히 그 스스로 독자적인 세계를 구성하면서 우리에게 무한한 이야기를 건네줍니다. 아마도 이런 것이 살아 있는 글이 지니는 속성일 것입니다. 다라서 우리는 이 책을 천천히 읽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령 안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손을 잡고 함께 시편한 두 편을 읽고 난 뒤에 이 책의 한 장(章)을 음미해 본다든가 하는 방법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나는 이 책을 오래오래 걸려 독특한 뒤에 불란서 소설 마르셀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연상하였습니다.
이 소설은 그 마지막에 주인공 마르셀이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며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 비로소 자기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결심을 함으로써 소설의 끝이 소설의 첫머리에 연관되는 순환 구조를 이루고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성서의 시인들」역시 머리말에서는 어둡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 현대의 우리 자신들을 바로 보기 위하여 라고 그 집필 의도를 밝히면서 다시 끝머리에 가서 다음과 같은 말로 현대사회를 냉소적으로 비판함으로써 우리가 시편을 새롭게 묵상하도록 유도하는 순환 구조의 진술 태도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 이 얼마나 가슴을 치는 통곡의 소리입니까?
『그런데, 보라. 대 살륙의 날과 전쟁의 함성이 터지는 날, 인간은 이빨을 갈아 뾰족하게 만들고 피부를 굳히며 옷깃에는 「별」들을 달고 설친다.』(Pㆍ231)
여기에서 말하는「별」은 세속적 권위와 권세와 훈장과 폭력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핵의 공포와 굶주림과 억압에 떨고 있는 가련한 인류를 상상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최후의 승리를 거두시는 구원의 절대자이심을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구절에서 분명한 어조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하리니』(마태 5ㆍ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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