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말한 모든 점에 의하여 이번 행사에는 뚜렷이 사목적인 성격이 부여되고 있다. 하느님의 은총이 그리스도 안에서 개인들과 공동체들에게 이르게 되는 통로인 교회의 성사적 경륜을 재발견하여 체험하고 실천하는 거기서 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경축할 수 있게 해주시는 이 성년의 깊은 뜻과 숨은 아름다움이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꼭 밝혀 주어야겠거니와 이 특별한 때에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자 안에서 성부와 화해할 소명을 더욱 깊이 인식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그 성과가 풍성히 달성되려면 모름지기 각자가 누구나 비단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서 만이 아니라 모든 남녀 인간들 가운데서도 화해에 기여하기 위하여 또한 만민의 평화에 기여하기 위해서도 새삼 투신하게 되어야겠다.
진정으로 그리스도인다운 믿음과 삶이라면 그것이 사랑으로 꽃피어 진리를 구성하고 정의를 촉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구원 성업의 특별 성년을 경축하는 취지는 무엇보다도 먼저 가톨릭교회의 아들딸들 가운데 자신의 뛰어난 처지가 자신의 공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특별한 은총에서 왔다는 의식이 새삼 아로새겨지게 하자는 데에 있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이 은총에 보답하지 못한다면 구원되지 못할 뿐더러 더욱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세례 받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회개와 쇄신에 특별히 진력하도록 부름 받고 있음을 각별히 명심해야겠다.
사실 교회는 그 품에 죄인들을 안고 있으므로 거룩하면서도 또 항상 정화되어 나가야 하겠기에 끊임없이 회개와 쇄신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언제나 교회의 처지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군중에게『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오』하고 말씀하신 그 권유를 교회는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 특별한 수행에 있어서 우리가 경축할 성년이 따를 노선은 1975년 성년의 그것과 다름이 없다. 그해에 나의 경애 하올 선임자이신 바오로6세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쇄신과 하느님과의 화해를 호소하셨던 것이다.
확실히 참회와 회두를 거치지 않는 영적 쇄신이란 없다. 그것은 신앙인의 항구한 내적 자세로서도 그러하고『하느님과 하회하자.』는 사도 바오로의 권고에 호응하는 덕행의 실천으로서도 그러하며 또한 참회의 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용서를 얻는 수단으로서도 그러하다.
가톨릭 신자 누구나가 은총 생활에 있어서 아무것도 미진한 채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 어떻게 해서든지 죄에 떨어지는 일을 피하여 언제나 주님의 몸과 피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을 성화함에 있어서나 주님을 섬기는 일에 더욱 성실히 정진함에 있어서나 온 교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은 실로 한 인간이 교회 안 에서 생활하는 조건 자체의 필수 요건인 것이다.
죄로 부터의 자유는 그러므로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교회에 대한 신앙의 열매이며 첫째 요건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어제나 자유롭게 하시려고 또 당신의 몸인 성사에 참여시켜 당신의 몸인 성사에 참여시켜 당신의 몸인 교회를 건설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것이다.
이 자유를 위하여 예수께서는 교회 안에 참회 성사를 제정하시어 세례 후에 죄를 지은 사람들이 자기가 범접한 하느님과 하해하고 자기가 손상한 교회와 화해할 수 있게 하셨다. 바로 이 맥락 속에야 말로 보편적 회개의 요청이 꼭 맞아 들어 간다. 모두가 죄인이기에 모두가 성서에서「메타노이아」(회개)라고 부르는 저 철저한 마음과 생각과 삶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자세는 하느님의 말씀-주님의 자비의 계시-에 의하여 창조 육성되고 특별히 성사들을 수단으로 하여 활성화되며 수단으로 하여 활성화되며 수많은 형태의 자선과 형제적 봉사로 표명된다.
은총 상태로 되돌아가자면 보통의 환경에서 내적으로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외적으로 그것을 보상하는 것만으로는 넉넉지 못하다. 구세주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세우시어 보편적 구원의 성사로 삼으심으로써 각 개인들의 구원이 교회 내에서 교회의 직무 수행을 통하여 이루어지도록 제정하신 것이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구원의 시작인 신앙의 전달을 위해서도 같은 교회를 이용하신다.
과연 주님의 길은 불가사의하며 각자의 양심 속에서 하느님을 만난다는 것은 헤아릴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길」은 교회를 통하여 나타난다. 교회가 성사들을 수단으로 하여 아니면 적어도 성사들을 받고자 하니「갈망」에 의하여 죄인과 구원자 사이에 새로운 최밀한 관계를 재건하는 것이다.
이 생명 부여의 접촉은 성사의 사죄라는 표지로도 나타난다. 용서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고해성사의 사죄경을 통하여 고해신부의 인격 속에서 한 개인으로서 용서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친히 접촉하시어 그 사람 속에 신앙의 확신을 살려주시는 것이며 이 신앙의 확신 곧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에 다른 모든 확신도 달려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에 대한 확신을 돼 찾는 것도 인간 각자가 통회하는 사랑으로 이에 응답하는 것도 모두가 언제나 교회적 사건이다. 사실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의 피가 지닌 공로와 무한한 보속의 가치에 참여하는 일로서의 성사에 고유한 능력에 모든 사람들의 공로와 보속이 더해지고 있는 것이다.
즉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화의 소명에 충실히 따르고 성화되면서 그들의 기쁨과 기도ㆍ곤경과 고통을 가장용서가 필요한 신앙의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따라서 사실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전체를 위하여 바치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가까이 다가가게 해주는「성인들의 통공」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 고해성사의 실찬은 필경 구원 성업의 신비와 교회 안에서의 그 실현을 믿는 신앙 행위이다.
참회 성사의 거행은 사실 언제나 교회의 행위이다. 이로써 교회는 교회의 신앙을 선포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그 자유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기 위하여 교회의 삶을 영적 제물로서 바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교회의 목자들에게 맡겨 주신 화해의 직무가 참회 성사에서 자연스럽게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구원의 신비 자체의 요청이다. 주교들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서 유래하는 은총의 관리자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당신 사제직을 당신 봉직자들과 나누어 가지 신다는 것은 참회 규범의 수호자로서의 구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사제들도 이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있다.
특히 참회 성사들 집전함으로써야말로 사제들은 그리스도의 의도와 사랑에 결합될 수가 있는 것이다.
<계속>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