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은 주께서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1, 밤의 어두움을 뚫고 새날이 밝아 오듯 우리를 위해 수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의 암흑에서 생명의 빛으로 부활하셨습니다.『성서에 기록된 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는 삼일 만에 부활하였다.』이것은 사도들이 목숨을 내걸고 선포한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리스도는 실로 이 믿음 위에서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히 자연 생명에로의 복귀가 아닙니다. 죽음을 이긴 참 생명으로 다시 사신 것입니다. 자연 생명 속에는 언제나 죽음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인간 생명을 비롯하여 모든 자연 생명은 언젠가는 죽음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죽음을 쳐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생명은 참된 의미의 생명이랄 수 없고 그리스도의 새 명만이 참 생명이십니다.
그런데 우리 모든 이를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그리스도는 우리 모드를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당신의 그 부활 생명으로 우리 모두를 구하시고 영원히 살리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이 부활은 믿는 이들에게 말할 수 없이 큰 희망을 안겨 줍니다. 부활은 실로 죄와 죽음으로 끝나고 마는 현세 세상, 그 어두움 위에 떠오른 구원의 태양입니다. 부활의 은혜는 인간뿐 아니라 우주 만물이 입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세상과 우주 만상의 종말이 죽음이나 파멸이 아니라 새 하늘과 영광임을 말해 줍니다. (묵시록 21장1절~4절)
새 하늘과 새 땅! 생명과 빛으로 충만한 세계! 우리는 이것을 상상할 수도 표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느님께서 천지창조 이전부터 우리를 위하여 마련하신 구원의 은혜입니다. 때문에 사도 바오로는『눈으로 본적이 없고 귀로 들은 적이 없으며 아무도 상상조차 못한 일을 하느님께 사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마연해 주셨다』라고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64ㆍ3,52ㆍ15)을 인용하여 경탄해 마지않습니다. (I 꼬린토 2ㆍ9)
부활은 실로 하느님의 구원의 신비입니다. 그 신비는 너무나 크고 깊기 때문에 우리는 파악하기도 힘들고, 믿기도 힘듭니다. 그러나ㆍ성경이 말씀하시는 구원의 기쁜 소식이란 바로 여기에 집중됩니다. 설결레서 말씀하시는 구원과 생명은 곧 이 부활을 뜻합니다. 그러기에 부활은 그리스도교 믿음의 바탕이요, 중심이며 도한 목표입니다. 이 부활을 배면 우리의 믿음은 헛되고, 성경의 모든 말씀은 생명력을 잃고 맙니다. 그것은 하나의 부질없는 이야기책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부활은 성경의 모든 말씀을 진정 생명의 말씀이 되게 하고 또한 우리의 믿음도 결코 헛되지 않을 뿐 아니라 인생과 세상 모든 것에 존재와 삶의 의미를 줍니다.
그 부활을 믿으면서 우리가 다시금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한량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은 가없이 크다는 것을 우리는 깊이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요한3ㆍ16) 이 영원한 생명은 곧 부활 생명이요. 하느님은 우리에게 이 생명을 주시고자 하신 외아들까지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이 외아들, 곧 예수님은 온 세상의 죄를 지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분은 특히 죄인인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9ㆍ13)라고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당신 스스로 우리와 똑같이 약한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평생을 통해서 가난하게 사셨고 언제나 억눌리고 버림받는 자와 고통을 나누고, 그들의 상처를 낫게 하셨습니다. 또한 약한 이들과 어린이들을 감싸시고 겸손한 마음으로 봉사하셨습니다. 그리고 끝내는 모든 이간의 죄를 대신 지시고 가장 비천하고 버림받은 자, 죄인 중에서도 가장 큰 죄인, 아니 바로 죄가 되시어(Ⅱ 꼬린토 5ㆍ21)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사랑에서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은 이 예수를 죽음에서 부활시키시고, 모든 이의 구원과 생명의 원천이 되게 하셨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머릿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정녕『집 짓는 자들이 내렸던 돌을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셨습니다.』(시편118ㆍ22)
하느님의 성자께서 이렇게 세상의 죄를 지고 죽기까지 하셨다는 것과 또한 그 때문에 하느님은 그를 죽음에서 부활시키시어 모든 이의 부활 생명의 원천이 되게 하셨다는 것은 진정 우리 모두에게 큰 위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죄에 우는 사람, 병고에 신음하는 사람, 죽음을 눈앞에 든 사람, 버림받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재기(再起)와 부활의 빛을 줍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그리스도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 부활 속에서 자신의 부활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과의 연대 속에 특히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과의 일치 속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사도 바오로는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모두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I꼬린토 15ㆍ22)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모두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느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시고 우리의 죄를 묻지 않으십니다.『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무죄 선언을 받게 되었습니다.』(Ⅱ꼬린토5ㆍ21)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다 지고 가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당신과 원수가 된 우리를 당신 편에서 외아들 그리스도를 통하여 화해의 손길을 펴시었습니다. 다시는 그 손길을 거두시지 않으십니다.
이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겠습니까?
때마침 올해는 구원의 성년(聖年)입니다. 또한 우리 한국 교회로서는 2백주년을 기리기 위한「교구 공동체의 해」입니다. 다 같이 회개와 화해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정 우리를 위해 당신의 외아들까지 주신 그 하느님께 우리의 마음을 돌려야 합니다.
아버지의 집을 찾아. 다시 발길을 돌린 탕자와 같이 우리도 발길을 우리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집으로 돌려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화해의 손길을 먼저 내미신 그 아버지의 손을 잡고 그 품에 안겨야 합니다. 우리의 조를 묻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무죄 선언을 내리신 그 하느님을 어떻게 우리는 등질 수 있습니까?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Ⅱ 꼬린토 5ㆍ21) 사도 바오로의 이 말씀은 바로 오늘날 우리를 향해 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세계는 핵전쟁의 위험 앞에 실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도 불안ㆍ체념ㆍ의욕 상실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인간다움을 포기한 채 자신을 그냥 세파(世波)에 내맡기고 있습니다.『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하느님과의 이 화해만이 오늘에 사는 우리 자신을 다시금 인간으로 각성시켜 주고, 우리의 잃은 인간성을 회복시켜 줄 것입니다.
이와 아울러 우리가 해야 할일은 모든 이와 화해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죄를 묻지 않으시는데 우리가 무엇이기에 단 한 사람이라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실 이것이 계명 중에 가장 큰 계명이요. 우리 생명의 길입니다. 또한 여기에 크리스찬의 삶의 본질이 있습니다.
이 사랑 속에 우리는 진정 새 인간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새 인간으로. 그리하여 우리는 드디어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 되고, 오늘의 세상을 구원해 가는『메시아적 백성』(교회 헌장9항)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1983년 부활 대축일에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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