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종 (아우구스띠노) 은 조선시대 후기의 대표적 학자의 한 사람으로 兄정약전ㆍ동생 정약용과 더불어 훌륭한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1760년 경기도 광주 마재에서 출생한 그는 과거에 응시하여 관으로 진출하는 대신 뛰어난 통찰력과 꾸준한 탐구심으로 주자학과 도가를 연구했다. 그러나 곧 이들이 공리공론에 치우치거나 허무맹랑함을 깨닫고 19세에 이르러 두 형제들과 함께「강학회」에 참여했다. 이곳에서 교리 연구와 함께 권철신 선생이 정한 규칙적 기도와 묵상의 받아들일 준비를 한 1786년에서야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신해 박해 당시 문중, 특히 아버지의 반대에도 어버이에 대한 공경심을 끝까지 지키며 천주교 신자로서의 본분을 지키기에 충실했다.
신자는 물론 비신자에게 교리를 설명하는 것을 즐겨한 정약종은 두 권으로 된「주교 요지」를 저술, 한국인이 처음으로 쓴 기초 신학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미완성인 채 남겨진「성교 전서」를 썼다.
1800년 박해를 피해 한양(現서울)으로 이사한 그는 1795년 한국에 온 중국인 선교사 주문모 신부와 긴밀한 접촉ㅇ을 가지면서 교리에 대해 묻곤 했다. 주 신부는 정약종의 교육열에 탄복하여 교리 강습회인「명도회」를 창설, 정역종을 초대 회당에 임명했다ㅏ. 1801년, 고향으로 가던 중 주 신부의 서한을 감췄던 죄로 체포 됐으니 정약종은 자신의 신앙을 떳떳이 밝히고 천주교 교리를 설명하면서 정부의 모반죄를 선고받은 정 선생은 음력 2월26일 참수형을 받았다.
정약종의 유해는 마재에 안치돼 있다가 82년 11월 1일 그가 처음 교리를 연구하던 천진암 자리로 이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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