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청년 공작대와 천주교 피난민 조사서는 6ㆍ25동란과 관련된 자료이다.
「공존할 수 없는 빙탄불용(氷炭不容)의 공산주의는 6ㆍ25사변으로 철저히 체험하였으며 우리 민족 전체의 일대 시련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이번 오랑캐 침범에 대한 일대 결심과 단호한 격멸을 가져오게 되었다. 공산주의는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악독한 사상이니 만큼 오직 홀로 이를 격파할 수 있는 가톨리시즘의 유일한 무기를 교회와 진리 수호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며 행동적으로 국가 존망의 위기 구출에 겸용하여야 할 것이다.」
가톨릭 청년 공작 대장 李振聲씨는 1951년 2월6일자로 가톨릭 청년 공작대 각 지구 책임자 앞으로 보낸 가톨릭 청년 공작대 설립 취지서에서 설립 취지를 이같이 설명하고 있다.
또한 李씨는 이 취지서에서「신앙 중심으로 조직적이며 체계적인 유기적 활동만이 신자로서, 국민으로서의 가치 있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용약, 이에 참사하여 힘을 뭉치기로 하자! 공산주의를 타도하기 전에는 조국도 교회도 그리고 우리의 가정도 없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멸공 전선에 나서라. 이제 대한 천주교 총력 연맹 총세 노 주교 각하의 신임 하에 조직된 본대의 취지를 찬동하며 멸공은 물론이오. 정의의 조국을, 좀먹는 적구(赤狗)이상의 공산 분자의 소탕에 총궐기하라.」고 밝히고 있다.
이 설립 취지서에 의하면 가톨릭 청년 공작대의 구성은 1951년2월이며 대한 천주교 총력 연맹 산하단체이고 교회의 인준을 득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국 가톨릭이 6ㆍ25동란 이후 보여준 대공 정신이 얼마나 철저하였는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이다.
가톨릭 청년 공작대는 대 장면의 외 설립 취지서와 함께 대원 심사 규정(전문 7조)내무규정(전문13조) 규약(전문8조) 징계 규정(전문 10조) 대원 명보와 대원 후보자 명부(1951년3월10일 현재) 공작 활동도(1951년3월15일 현재)등 많은 자료들을 남겨 좋았다.
이들 자료를 분석하면 가톨릭 청년 공작대는 대원20명과 대원 후보자 19명 등 39명이 서울 수원 인천 등 서울 경기 지역과 충남의 천안 은양 조치원 등지에서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군당구과 유기적인 연락을 갖고 정훈(政訓)공작과 정부 수집을 주 임무로 삼았다.
이들의 활동 내용은 총재인 노 주교에게 일부 보고된 것이 있으나 구체적인 일부 보고된 것이 있으나 구체적인 활동 업적과 언제까지 지속되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뚜렷한 자료가 없는 것이 흠이다.
그러나 당시 공작 대장으로 활약한 李씨가 당시 37세로 현재 69세이며 대부분의 대원이 현재50~60대 연령이므로 이들의 증언을 청취하면 더욱 확실하고 자세한 자료를 남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 청년 공작대는「대원은 가톨릭 신자를 원칙으로 하나 예비신자도 심사에 의해 가입할 수 있다. (심사 규정 제4조)」고 명시, 예비신자 대원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데 대원 명부에는 정대원 중에는 예비자가 한명도 없고 대원 후보자 19명중 8명이 예비자로 나타나 있다.
또한 가톨릭 청년 공작대의 수호자는「예수성심」이며 총재는 대한 천주교 총력 연맹 총재 주교, 각 교구 주교는 고문, 지도신부는 각 교구 주교의 지시에 의해 각각 추대키로 규정돼 있다.
이들 자료에서「가톨릭」과「천주교」, 「단기력」과「서기력」이 혼용되고 있으며 신자 단체에 예비신자가 참여했다는 점, 당시에도 총재 주교ㆍ지도 신부 등이 있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한편 천주교 피난민 조사서는 6ㆍ25 동란 중 부산 및 제주도에 집단 수용된 신부 신학생 수녀 신자들에 대한 도별ㆍ성별ㆍ신분별 통계와 명단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1951년 4월20일 현재 통계상 나타난 제주읍 천주교회에 수용된 천주교 피난민은 신부5명 신학생75명 신자4백42명 등 5백57명이며 기타 제주도 내 읍내에 산재 수용된 피난민 신자는 2백59명으로 총 8백16명에 달한다.
그리고 부산에 수용된 천주교 피난민은 천주교 제1수용소에 신부 수녀 38명, 제2수용소에 신학생ㆍ수녀 1백7명, 제3ㆍ제4수용소에는 신문사 직원과 가족들이 수용돼 있었다. 여기서 신문사는 경향 신문사인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 청년 공작대와 천주교 피난민 조사서는 동시대의 자료로서 제주도와 부산에 신자들이 피난해 있는 동안 가톨릭 청년 공작 대원들은 서울과 경기ㆍ충남 지역에서 멸공 활동을 전개했다는 점은 크게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톨릭 청년 공작 대원과 대원 후보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1951년 3월10일 현재)
■대원(20명)
▲대장=이진성 ▲부대장=박횽원 ▲총무 부장=김덕거 ▲공작 부장=김창환 ▲문화 부장=최명식 ▲후생 부장=황중상 ▲사제 부장=방한경 ▲지부장=오영창 ▲대원=안상운ㆍ김종광ㆍ이생윤ㆍ조후동ㆍ김진옥ㆍ김성희 이영회ㆍ유생선ㆍ노기현ㆍ김봉ㆍ장이환
■대원 후보자(19명)
▲류상천ㆍ성병철ㆍ이재흉ㆍ이영우 이풍우ㆍ최병준ㆍ류황ㆍ김명환ㆍ이도아ㆍ김한중ㆍ최영진ㆍ임해창ㆍ남태희 구자운ㆍ박병욱ㆍ김학영ㆍ이재영ㆍ김판거ㆍ신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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