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용산 학교 철학과와 신학과의 제복은 각각 달랐다. 물론 소신학교에서도 성당에서나 모든 외출 예식 때에는 반드시 제복을 갖춰야 했다. 소신학교와 철학과는 검점 두루마기에 하얀 동정을 달아 입었고 신학과에서는 내 바로 윗반인 노 대주교님 반부터 삭발례 받는 날부터 수단을 입었다. 그전에는 부제 될 때만 수단을 입을 수 있었다.
삭발례(똔수라)란 일품을 받기 전에 받는 성직 준비 예식으로, 이것을 받아야 성직 반열에 들게 된다.
주교님이 삭발례 받는 이의 머리칼을 동서남북과 가운데를 조금씩 자음으로써 세속의 모든 영화와 체면 영광을 초개시하겠다는 맹세를 하는 것인데, 독자의 이해를 위해 예를 들어보자.
성 프란치스꼬의 상본이나 동상을 보면 머리를 뺑 둘러 화환처럼 남겨 놓고 아래 위를 싹 백호를 치는 것이다.
모름지기 모든 성직자나 남자 수도자는 다 그렇게 머리를 깎아야만 했는데, 세월 따라 풍속 따라 점점 약식으로 전후좌우 중앙 이렇게 십자가 모양대로만 깎게 됐다.
더욱이 그렇게 깎으면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겠기에 약식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제2차「바티깐」공의회 후부터는 삭발례는 고사하고 삭발례 예식조차 폐지하였다.
말하자면 여러 가지 거추장스런 예식도 삭발해 버린 셈이 되었다.
주교님이 머리를 싹둑싹둑 자를 때 삭발례 받는 사람은「주님은 나의 기업 내 잔의 몫이오니 내제비(유산)는 오로지 당신께 있나이다.」하는 기구를 드리며 생각과 말과 행동을 총정리 했다.
이 예식을 받는 날부터는 항상 수단을 입게 되니 제복에는 별문제가 아니 됐다.
그러나 소신 학생이나 철학과 학생들은 바로 하얀 동정 때문에 문제였다. 예절이나 외출 때 외에는 프랑스 해병복 같은 것을 상하로 입고 가운데 허리띠를 둘렸다.
부활ㆍ성신강림대축일이나 신품 받을 때, 주교성성식 등 특별한 경우에 전차를 두세대씩 대절해서 종현 대성당(현 명동성당)에 갔다. 그전 날 저녁이면 소대 신학교가 벌컥 난리가 났다. 대신학교 철학과 학생들도 꾀죄죄한 동정을 희게 빨아 다려서는 제 손으로 꿰매야 했으니 말이다.
몇 번씩 달았다 뜯었다 하면서 동정은 더욱 꾀죄죄해졌고, 동정은 이가 꼭 들어맞아야 했는데 남자들이라 쉽지가 않았다.
나는 동정을 빨아서 풀은 못하고 손바닥에 놓고 토닥토닥 두드려 다리미질을 대신 하느라 퍽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순간마다 나를 여자로 만들지 않으신 성모님께 무수한 감사를 드렸다.
거울도 없으니 유리창에 비춰 보면 동정을 단 모양이 빼뚤빼뚤. 정말 가관이 이다.
어떤 때는 철학과 학생인 박 요한(박회봉 신부 삼촌)선배가 얌전하게 달아 주기도 했지만, 대축일 때마다 바느질하기가 큰 욕을 치르는 것이어서 제복 생각을 하면 지금도 우습기만 하다.
삭발례 얘기가 났으니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노 대주교님 윗반 학생의 일이었다. 삭발례 받는 날에는 검정 모본단 두루마기에 기또 구두를 신고 머리에는 베레모를 비껴써서 당시의 일류 멋쟁이들이 됐다. 시골 고향에라도 다니러 가면 어른 아이 없이 줄줄 따라다니며 부러운 군침을 흘렸다.
그런데 삭발례를 받은 이튿날 신학교 2학년생 하나가 교장 선생님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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