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79위 순교자들의 시복식의 영광을 보고 또 서울에서 3일 경축 대회를 본 이들이 거의 옛사람이 되고 성직자 가운데에서도 구천의 요셉 신부ㆍ노기남 대주교ㆍ신인균(요셉) 신부ㆍ임충신(마타아) 신부ㆍ임종국(바오로) 신부와 나 이렇게 여섯 사람만이 생존해 있을 뿐이다.
세월은 흘러 58년이 지나는 동안 서울대교구 내의 그 많은 성직자들이 저승으로 갔으니 나마저 저승길로 들어서기 전에 그때 그 광경ㆍ그 기쁨ㆍ그 영광을 남겨 보련다.
1925년 7월 5일「로마」베드로 대성전에서는 김 안드레아 신부와 78위 순교자 가경자들(1857년 9월 23일 가경자들 이틈)이 교황 삐오 11세로부터 천추에 빛나는 순교복자로 추앙을 받았다.
이 시복식에는 민 아우구스띠노 서울교구장과 우리 용산 신학교 장진 베드로 신부님, 그리고 경향잡지 주필 한기근(바오르) 신부, 미국에서 공부하던 장면(요한)씨와 그 계씨 장발(루드비꼬) 다섯 사람이 새로 복자품에 오를 분들의 친척으로 특별 대우 입장권을 받아 베드로대성전 특별 친족석에 자리했다.
이날 우리 79위 새복자들의 전기가 프랑스어ㆍ이태리어로 인쇄돼 그들의 성화와 같이 배포됐다. 또한 이때는 성년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었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시복식에는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인파가 밀려들어 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대성전 밖 로비(강복대)와 정문 위에는 79위 새 복자들이 범 주교를 중앙에 모시고 늘어선 대형 성화가 다른 한 폭의 성화와 같이 걸려 있어 만인의 눈길을 끌었다.
대성전 내부에 들어서면 교황 대제대 좌우 기둥에는 금줄을 두른 주홍색 비단에 성화가 제대 뒤「글로리아」(영광)창에도 걸려 있었다. 중앙 대제대 좌우별에는 김 골룸바의 참수 현장 성화와 13세 유대철(베드로) 소년의 순교장면 성화가 드리워서 보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대제대 바로 뒷면 베르니니 영광대(글로리아)에는 범 라우렌시오 주교와 세분의 신부와 75위 순교자가 천국 영광을 누리시는 초대형 성화가 녹색 커어튼에 가리 워져 정식으로 복자로 선언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 10시가 되자 멀리 정문에서부터 선홍색 정장을 갖춘, 추기경 6위가 중세기풍의 퇴모를 머리에 쓰고 시종들을 앞세우고 엄숙 장중한 행렬을 시작했다.
장내는 죽은 듯 정숙한 분위기에 싸여 있었다. 추기경의 뒤로는 대주교ㆍ주교의 고위 성직자들과 이날 대미사를 집전할 주교와 정ㆍ차 부제가 순서대로 입장해 각기 자기 자리에 착석했다.
고위 성직자 중 한분이 대제대 좌편에 설치된 강론대에 올라 교황 성하의「79위 조선 순교자들의 시복 칙서」를 낭독해서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인 교황께서 우리 순교자 79위를 온천한 만민들에게 복자로 선포했다.
이 칙서 낭독은 순교자들이 복자로 선언되는 이유를 참석한 신자들에게 정식으로 공포하여 복자로 추앙하고 정식 공경을 드리도록 하는 것이다.
시복 칙서의 남독에 이어 커어튼으로 가리 웠던 글로리아 현양대의 성화에서 커어튼이 열리면서 수십만 촉의 전등 빛이 성화에 두루 비춰졌다.
바야흐로 우리 백의민족이 조선의 얼을 안은 채 천국 영광을 누리는 장면이 전개되자 조선 교회 대표 5인은 눈물 닦기에 여념이 없었다.
만난을 극복하고 저 영광 중에 나타난 우리 김 안드레아 신부님, 유 베드로 소년, 16세 동정녀 김 골룸바,. 김 아네스 등 누구 하나 감격 아니 주는 이가 없었다. 지겨운 겨울이 가고 만화 화창한 봄날이 천국에 찾아온 것이다.
성화 현양에 이어 파이프 올갠소리가 우뢰와 같이 퍼져 나오면 천주님께 이 막중한 은혜를 감사하는데「떼ㆍ데움」(사운 찬미가)이 울려 퍼졌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와 문화ㆍ풍속ㆍ의상이 다른 만민이 한마음 한 신앙에 집중된 그 순간은 바로 천국의 한 영광스러운 장면이 아니고 무엇이랴.
사은 찬미가가 끝나자 새 79위 복자들에게 복을 비는「복자 라우렌시오와 안드레아와 모든 치명들이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의 삼창이 뒤를 이었다.
86년 전인 1839년과 79년 전인 1846년 백사장에 무군무부 대역 죄인으로 목 잘려 죽은 그들이 오늘 이렇게 천국에서 영원한 영광을 누리시는 그 장면은 격세의 감격을 안겨 주었다.
장내에는 5만 신자와 2백여 명의 위병이 질서정연하고 엄숙하게 한 신앙 안에 뭉쳐져 있었다. 과연「하나인 교회를 믿나이다.」하는 말이 현실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시복식에 이어서는 즉시 새 복자 대례 미사가 거행되었다.
이 감격의 순간을 되새기면서 우리 복자들이 성인품에 오를 장엄한 광경을 생전에 보고픈 것이 나의 꿈이라고 생각해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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