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달베르또는 보헤미아성의 한 귀족 집안에서 출생했으며 영세때는 보이데이라고 이름 지어 졌다.
그는 성 아달베르또의 마그데브르그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보이덱이 성인의 이름을 따서 아달베르또로 개명하게 된 것은 거기에 재학 중 견진을 받았을 때의 일이다.
이후 아달베르또는 981년 성 아달베르또가 승천하자 보헤미아로 돌아왔으며 그 이듬해「프라하」의 주교로 임명 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27세였다.
그러나 겸손한 그는 주교가 되어서도 결코 전과 다른 점이 없었다. 이러한 아달베으또의 열심한 선도와 교훈에도 불구하고 당시의「프라하」시민의 풍기는 무척 문란하였다. 그래서 이를 염려한 아달베르또는 교황의 승인을 얻어 주교좌를 물러나「로마」의 베네딕또 수도원에 들어가서 수도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도「프라하」시민의 풍기 문란은 계속되어 아달베르또는 다시「프라하」로 돌아와 풍기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다시「로마」로 들어갔다.
그 후 헝가리를 순례하며 전교 활동을 한 아달베르또는 또다시「프라하」시에 귀환토록 명령을 받고 출발했으나 도중에서「프라하」에서 그의 친척 살해 소식을 듣고 발길을 돌려 폴란드로 들어가 친구인 플란드왕 보레슬라오의 힘을 빌어 프러시아 방면에 전교를 시작해 많은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997년 4월 23일 전교 중 이교인에게 체포되어 고문에 못이긴 결과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축일은 4월 2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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