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7월 5일 오후 6시에 거행된 성체 강복식은 교황 성하께서 친어(親御)하시기 때문에 오전 10시부터 더 많은 군중이 운집했다. 성하의 존안을 배알하고 교황 강복을 받는다는 희망과 기쁨으로 이미 30분전에 벌써 정문은 굳게 닫혔다.
한국 대표 5인은 이번에도 위병의 안내를 받으며 옆문을 거쳐 친족 귀빈석에 안내됐다. 그 건너편에는 이태리 귀족들과 외교관들이 대례복을 갖추고 번쩍이는 금은훈장을 달고 점잖게 앉아 있었다. 그 오른편에는 형형색색의 수도복으로 정장한 수많은 수도자들이 좌열 했다. 투구와 퇴모(褪矛)와 오색금의로 차려입은 근위병들은 정문에서부터 대제대 앞까지 좌우 두 줄로 정렬하여 교황 성하의 임어를 기다리고 있다.
여섯시 정각이 되자 저기 행렬의 선두가 보였다. 번쩍거리는 근위병의 헬멧이 전등불에 휘황찬하다. 죽은 듯이 장내는 침묵 속에 빠져들고, 숨결은 잔잔한 물결처럼 흘렀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마침내 정문에서 낭랑한 은나팔 소리가 대성전을 울리며 교황 성하의 임어를 알렸다. 주교단ㆍ대 주교단ㆍ추기경단이 주홍색 망토를 두르고 따랐으며, 그 뒤에 16명의 스위스 출신 근위병이 어깨에 맨 연(輦) 위에 좌정하신 삐오 11세 교황 성하의 존안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비바 일 빠빠! 비바 일 빠빠 삐오!」교황님을 부르는 소리가 천둥 소리 인양 대성전을 올렸다.
교황 성하는 사람들의 환호에 인자하신 얼굴로 일일이 강복을 주셨다. 행렬이 대제대 앞까지 오는데 약 20분이 걸렸다.
연이 제대 앞에 이르자 교황 성하는 제대 앞에 마련된 장궤들에 겸손되이 무릎을 끓으신다. 지상의 그리스도 대리자가 86년과 79년 전에 세상이 용납치 못할 극악 죄인으로 몰리고 몹쓸「천주학쟁이」들로 박해받던 때를 기억하시고 그들에게 명복을 비시는 것이었다.
당시 일제 탄압 아래 깔린 이민족에게는 더도 없는 영광이고 자랑이었다. 백여 년 전의저 죄인들이 오늘 저 그리스도의 대리자 교황성하의 제 단위에 추앙되는 우리 복자들이여. 그 영광 그 기쁨 영원하리!
이 복자들의 성해를 선물로 받으시고 공손히 그 성해를 친구하실 제 조선인 5인만이 이 광경을 보는 것이 너무도 아쉬웠다.
이어서 시작된 성체강복은 민주교가 집전했고 한 신부와 다른 신부가 차ㆍ정부제를 했다. 성체강복은 원래 교황께서 친히 집전하시는 법인데 이날만은 교황님이 특별히 배려해 주셨던 것이다.
먼저 교황 성하께서 우리 복자들 성해에 두번 분향을 하셨고 성가대에서는「오살루따리스 호소따아(오 지극히 오묘한 성사여)」가 파이프오르간에 맟추어 온 성전에 울려 퍼졌다.
시복자 축도문이 참하여지고 장내 모든 신자 2만 명이「복자라 우렌시오와 안드레아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하고 제각기 자기 민족과 교회와 개인을 위해기도 했다.
성체강복이 끝나자「빠리」외방 전교회 총장 광주교가 시복식 기념으로 큰 꽃다발을 성하게 드렸고 우리 세 복자들 전기 일부와 화려한 금제 성해대 일좌를 예물로 드리자 교황 성하는 무릎을 꿇고 이 복자 성해대를 공손히 받아 모시면서 성체강복은 끝났다.
교황 성하는 다시 연을 타시고 서서히 되장하셨고 박수갈채와 교황 만세를 외치는 소리가 다시 성전을 울렸다.
사람들의 환호에 답하기기 위해 행렬이 정문에 다다랐을 때 교황 성하께서는 연을 잠시 멈추시고 연위에서 기립하신 뒤 비둘기같이 햐얀 정복에 번쩍이는 금십자가 고상을 왼손으로 가볍게 잡으시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교황 강복을 주셨다.
「잘가시오.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 각자 그대들의 교회를 발전시키시오」하고 속으로 간곡히 이르셨겠지.
시복자들을 우리 성교회에 주신 대은에 감사드리는 3일간의 경축 대회가 열렸다.
1925년 7월 7ㆍ8ㆍ9일 3일간 매일 오전 10시부터 예수 성당에서 주교 대례미사가 열렸다. 시복자들 마사경과 축도문이 행해졌다.
저녁7시에는 묵주의 기도ㆍ강론ㆍ성체강복이 진행됐는데 7일에는 민 주교가 집전하고 진신부ㆍ하 신부가 차ㆍ정부제로, 빠리 외방 전교회 본부 신부님들이 복사하는 가운데 진행됐고, 8일에는 대구 교구장 안 주교가 집전했으며 9일에는 전교성성장관 반 로슘 추기경이 집전하셨고, 저녁 성체강복은 7일에는 본사로 추기경이 8일에는 엘 올로 추기경이, 9일에는 예부성성 장관 빅고 추기경이 진행했다.
강론으로는 7일에는 예수회 신부가 이태리어로 1시간5분이나 정열을 다했고 8일에는 안 교구장이 불어로 30분 동안, 9일에는 다시 예수회 신부가 이태리 말로 1시간반 동안 우리 복자들을 현양하는 강론을 펼치셨다.
「무궁 무진 세세 천주께 영광이요 주의 용사들이 승전하여 계시니 실로 오늘날이 기쁜 날이로다. 참으로 치명의 오묘한 효험이요 치명의 그날은 영원한 탄일이요 성인의 탄일이로다. 복자시여 용맹한 복자시여 우리에게 용덕을 주소서 찬류 세상 영이별한 후에는 영복 소에 만나게 하소서 영복소에 만나게 하소서」
이 성가는 구노 작곡에 달레(DALLET) 신부가 작사했다. 외방순교자들을 위하여 미리 작곡ㆍ작사해 두었던 곡인데 한국에서는 당시 평양에 계시던 르멜(Lemere) 신부가 한글 작사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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