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7월 5일 79위 우리 순교 가경자들은 복자품에 오르고 예수 성당에서 3일 경축대회가 열리자 서울에서도 경축대회가 열렸다.
그때 본교구장 민 주교님이 시복식 참례자「로마」에 가 계셨으므로 부주교 유 에밀리오 신부께서 3일 경축 대회를 9월 19ㆍ20ㆍ21일 동안 서울 종현(현 명동)대성상에서 갖기로 8월 20일 반포하셨다.
이번호에서는 시복식을 경축하고 천주님께 감사드리고자 열린 경축대회 광경을 그려본다.
종현대성당은 벽과 각 홍예 밀에 백포에 금종이와 형형색색 주단으로 꾸민 포장이 드리워졌고 대제대 천장에서부터 여섯 줄로 길낭을 늘어 뜨려 마치 천국에서 새 복자들의 공로로 천주님의 은총이 내려지는 듯하였다. 교회 깃발(홍백색)과 성모님 깃발(윽ㆍ 백색)교황 깃발(백ㆍ황색)이 정중하게 늘어져 있고 대제대 앞 네 기둥을 향해 백표로 만든 범 주교ㆍ나 신부ㆍ정 신부ㆍ김 안드레아 신부님 초상화가 드리워졌고, 그 앞 두 기둥에 소년 복자 유 베드로, 좌편 기둥에 복녀 김 꼴룸바의 순교 장면 성화가 드리워졌다.
대제대 앞 공중에는 범주교ㆍ나 신부ㆍ정 신부가 중앙에 서 있고 김대건 신부가 그 오른쪽에 무릎을 꿇고 천국을 바라보며 우리 79위 순교복자가 서 있는 그림이 걸렸다.
이 그림은 지난 19회에서 한번 실었다.
3일 경축 대회는 매일 오전 10시에 대례주교 미사, 오후 3시에는 새 복자 유해 친구(親口), 오후 6시반부터 특별 강론, 오후 7시에 성체 강복 순으로 진행됐다. 또한 10시 미사 전에도 두 대의 미사가 있었다. 첫날인 9월 19일에는 유 에밀리오 부주교님이, 둘째 날인 20일에는 베네딕또회 대원장인 신 보니파시오 주교님이, 셋째 날인 21일에는 봉천에서 경축 대회에 오신 위(衛) 주교님이 대례미사를 각각 집전했다.
21일 복자 유해 친구는 베네딕또회 로베르또 총장이 시켜 주셨다.
19일 강론은「信德」을 연제로 평양본당 주임 이 루도비꼬(李類斯) 신부님이 유창한 우리말로 강론하셔서 군중을 매료시켰고, 20일에는 「望德」을 연제로 경 신부(R.kre mff)가 우리나라 사람뺨치게 문자를 섞어 가며 훌륭한 강론을 해주셨다. 21일에는 김 요셉 윤근(金允根) 신부가「愛德」에 대해 뼈저린 열변을 토하여 많은 군중의 눈물을 자아냈다.
김윤근 신부님은 복녀 김 꼴룸바와 아네스의 친조카여서 강론이 더욱 힘있었던 것이다. 이분이 나중에 나의 첫 본당 신부님이 되실 줄은 당시 중학교 5년생이었던 나로서는 짐작도 못했다.
이 경축 대회에 용산 대ㆍ소신 학생들이 매일같이 참석했다. 종일토록 명동성당 느티나무 그늘에서 오래간만에 시골에서 올라오신 부모 형제ㆍ친척들을 만나 회포를 풀었으니 김에 제사드린 셈이 되었다. 나도 아버님 어머님 뵙는 기쁨에 복자나 된 듯 싶었다.
명동성당 일대는 경축 대회 기간 동안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성안의 명동과 성 밖의 교우들을 비롯, 많은 노자를 들여가며 시골에서 상경하여 모든 예절에 참석하므로 3일간 경축 대회를 기념했다. 성당은 언제나 초만원을 이루어 말 그대로 입추의 여기가 없었다.
새 복자 유해 친구를 하는데 여러 곳에서 친구를 시켜 줬어도 물경 그 예절만 꼭 30분 이상이 걸렸으니 신자들이 얼마나 운집했는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주일에는 꼭40분 이상이 걸리기도 했다. 유해 친구를 하는 동안『무궁 무진세에 천주께 영광이여…』하는 복자 성가를 대신 학생들이 합창하고 신자 전체가『목자시여…』을 제창할 제 지상인지 천국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일제 압정 하에 백의민족이 만민 앞에 복자로 추앙받는 것을 목격한 신자들이『결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외롭지 않다.』고 느끼면서 하루바삐 그 굴레를 벗어나게 해 달라고 제각기 마음속으로 빌던 그 감격은 눈물로 쏟아졌다.
대신 학생들도 그랬지만 꼬마들인 소신 학생들도 너무 기뻐 울지 않은 신학생이 한명도 없었다. 곧 치명이라도 하고 싶은 그 감격!.
그때부터 전국적으로 방방곡곡에 복자 공경이 그득그득 차 넘쳤다. 매년 9월 26일이면 대첨례 못지않게 성대하게 지낸 것이 6ㆍ25까지 계속되더니 9ㆍ28수복 이후부터 그 열성이 사그러 들고 말았다.
복자 성가에 대해 잠깐 설명해 보자.「빠리」외방전교회가 1663년에 외국 극동방에 전교 신부를 양성하여 파견하는 대신학교를「빠리」뤼뒤박128번지에 설립하였다. 그때부터 우리 복자 시복식까지 3천2백21명을 파견했다. 외방에 나가 전교하다가 순교하여 복자품에 오른이가 1925년 현재로 16명인데 그중에 우리나라에 3위, 월남에 10위, 중국에 3위였다.
우리나라는 1866년 병인박해로 주교 2위 신부 7명이 1968년 10월 6일 바오로 6세에 의하여 복자가된 분들이 그 숫자에 들어가야 한다.
이들까지 넣으면 우리나라에서 주교 3위 신부 9위 도합 12명의 복자가 배출된 셈이다.
이「빠리」외방전교회 대신학교 성당에서 파이프오르간 연주하는 것을 천직으로 알고 영광으로 삼았던 음악가 구노는 학교 출신의 전교사들 중 치명을 하고 복자나 성인이 배출될 것을 예상하고 이 복자 성가를 작곡했던 것이다.
작사는 달레씨가 맡았는데 , 그 당시 우리말에 능란해 한글로 시까지 지어 읊으셨던 프랑스인 이 루도비꼬 신부가 우리말로 작사를 하셨다.
이후 피정ㆍ성체강복 특히 복자 첨례 때 그 노련한 신부님이 하늘이 무너져라 하고 부르시던 이 복자 성가의 여음이 오늘도 명동성당 기둥마다 주렁주렁 매달렸고 구석구석마다 꽉꽉 들어 찬듯한 느낌이 오늘도 내 마음속에서 우러난다.
지금도 명동성당에 들어서면 그때 그 3일간의 경축 대회 분위기와 감격과 흥분이 가실 줄을 모른다.
그때가 지나간 지 어언간 58년, 반백년이 훨씬 넘었어도 가실 줄을 모르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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