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파이프 오르간. 한국 천주교회의 본산이며 그 뿌리를 이루었던 곳이 명동 대성당 이라면 명동성당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품은 파이프 오르간을 꼽을 수 있다. 195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명동 대성당의 파이프오르간은 장안에서 그리 흔치않은 귀한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페달을 밟고 바람을 넣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 건반이 대부분이 며 연주한 날보다 쉬고 있었던 날이 더 많았다 하더라도 당시 명동 대성당의 파이프 오르간은 명실상부한 명동의 대표적인 얼굴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하고(?)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현재 백동 서울 대신학교 창고에서 20년 이상 잠을 자고 있는 파이프오르간을 쉽게 기억해 내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난 유물-그것은 그렇게 잊혀져 가게 마련인 엄연한 사실을 명동 파이프 오르간은 깊고 크게 느끼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정동교회(개신교) 이후 한국에서는 두 번째로 설치돼 장안의 화제를 불러 모았던 명동 대성당의 파이프 오르간은 오르간의 설치가 구상된 1916년부터 정식으로 프랑스에 주문한 1918년, 그리고 설치가 완료된 1924년으로 이어지는 6년 동안 너무나도 많은 애환을 가슴에 안고 있다.
세월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는 사람의 기억과는 달리 누렇게 퇴색했으나 대부분 원본 그대로 보존돼 있는 명동 파이프오르간 관련 자료 그것은 최근 밝혀진 노기남 대주교의 소장 자료 가운데 상당 부분을 차지,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하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모두 한 묶음 정도의 이 자료들은 처음 제작을 맡았던「빠리」의 트롱쉐(Tronchet) 신부 로 부터온 7회의 서찰을 비롯, 제작 지연으로 인한 환불 소동과 재 주문에 따른 주문서, 견적서 2통, 0.05비율로 축소한 청사진, 조립 약술서 관세 면제 요청서 등 파이프 오르간 구입과 관련된 내용으로 구성돼 있어 명동 대성당의 파이프 오르간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 설치됐는가를 명백히 밝혀 주고 있는 것이다.
부분적인 자료만 가지고 비록 완벽한 배경은 알 수 없다 하더라도 명동의 파이프 오르 간은 1918년 첫 주문을 시작한 이래 1924년에야 제작이 완료돼 이 땅을 밟게 되는 등 무려 6년이란 오랜 세월이 걸렸음을 볼 수 있다.
이 가운데서도 특별히 눈길을 끄는 자료는 첫 번째로 주문을 받았던 트롱쉐 신부의 편지. 1920년부터 21년 사이에 서울의 뽀아넬 신부(Poisnelㆍ 당시 파이프 오르간 구입 한국 책임자)에게 전해진 7통의 편지에서 트롱쉐이 신부는 전후(세계 제 1차 대전)나날이 폭등하는 물가 인건비로 주문 당시의 금액 1만5천 프랑으로는 서울 명동성당에 설치 할 파이프오르간을 만들 수 없다는 자신의 입장을 강하게 밝히고 있다.
몇 년 전에 주문한바 있는 오르간을 독촉하는 뽀아넬 신부에게 회답으로 보낸 편지들을 총합해 보면 트롱쉐이 신부는 전후의 불안한 경제 상황 속에서 정상적인 작업을 할 수 없는 사정을 내세워 오르간 제작이 늦어지는 이유를 번번이 변명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편지에 따르면 오르간 구입의 실제 교섭을 당당했던 보댕 신부(Joseph Bodin)는 1918 년 오르간을 신청하면서 트롱쉐 신부에게 1만5천불의 금액을 선불, 20년 7월에 인도받기로 약정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트롱쉐이 신부의 세 번째 편지(1921년 1월 6일字)는 오르간 계약을 취소하고 선불 받은 1만5천 프랑을 되돌려 주겠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어 오르간 구입이 한때 위기에 처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역경 속에서도 다시 이어진 계약도 1921년 12월 30일字의 편지는 완전히 결렬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트롱쉐이 신부는 이 편지에서 계약이 취소됨에 따라 선불된 대금은 되돌려 주겠으나 그동안의 경비 등의 이유로 3년 동안 늘어난 이자 1천5백 프랑은 자신이 갖겠다고 통보, 실리적으로 이기적인 서구 사회의 의식구조를 그대로 표출해 보이고 있다.
어쨌든 파이프 오르간의 1차 주문은 1922년 1월 24일 빠리외방전교회의 제라르 신부(Gerard)가 트롱쉐이 신부를 직접 만나 마지막 결말을 지은 후 1만5천 프랑을 환불받음으로써 끝을 맺고 만다. 오르간을 주문한 지 4년여 만에 아무런 소득 없이 깨어진 첫번째 계약이었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자료는 제라르 신부가 뽀아넬 신부에게 보낸 보고 형식의 편지로 이 편지에서 제라노 신부는 트롱쉐이 신부를 계속 믿고 있다가는 명동 대성당 은 아예 파이프 오르간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그의 게으름을 강조하면서 1천5백프랑의 이자를 임의로 가진 트롱쉐 신부의 행동을「비열한 것」으로 주장, 눈길을 끌고 있다.
이 같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제라르 신부는 뽀아넬 신부의 허락을 얻어 빠리「까바이 에ㆍ꼴」상점에 다시 오르간 제작을 의뢰, 2차 주문을 하게 된다. 교회 및 살롱오르간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까바이에ㆍ꼴」상점은 주문을 받는 즉시 오르간의 설계도와 견적서를 만들어 서울로 보냄으로써 신용 있는 오르간 제작소임을 입증해 주기도 했다.
이때 견적은 모두 3만5천여 프랑. 청사진은 1m당 0.05m로 축소한 파이프와 오르간 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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