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문화와 종교 등을 이해하기 위해 열린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낯설게 보기’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낯설게 보기’는 범주의 해체로서, 이전에 우리가 흔히 묶었던 범주를 한 번 바꿔보자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작업을 할까요? 우리는 흔히 종교라는 현상을 문화와 전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종교를 이해한다면, 종교에 대한 이해가 소위 편협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한 번 흔들어보자는 것입니다.
새로운 범주로는 첫째는 언어로 된 문화, 둘째는 동작으로 이뤄지는 문화, 셋째는 눈으로 보는 문화, 바로 이미지의 문화로 묶어볼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언어로 된 문화의 범주’에는 무엇이 포함될까요. 문학은 물론 종교에서는 교리와 교의 등이 포함될 수 있겠지요. 모두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에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말’도 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예전부터 이름을 함부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왕의 이름을 함부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보일 시(示)’자 두 개를 붙여 쓰면 ‘셀 산(祘)’자가 됩니다. 이산, 정조의 이름입니다. 백성들이 쓰지 못하도록 거의 쓰지 않는 단어를 가지고 왕의 이름을 짓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 ‘야훼’라는 이름이 모두 ‘주님’으로 바뀌었지요. 유다인들은 그들이 믿던 유일신의 이름을 거론해서는 안 될 만큼 거룩한 분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YHWH’라고 네 글자로만 표기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이 네 글자는 모두 ‘자음’입니다. 모음을 넣어 ‘야훼’로 읽기도 하고, ‘여호와’로 읽기도 했지만 어느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각 나라의 말로 ‘나의 주님’이라는 의미의 단어로 하느님을 지칭하게 된 것입니다.
매일미사 복음의 첫 구절은 대부분 ‘그때’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그때’라는 이 말을 통해 신자들은 아득한 과거로 돌아가 현재에 존재하는 동시에 예수님이 계셨던, 구약의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는 순간까지 갑니다. 일상의 시공간마저 이동시키는 대단한 힘을 지닌 말입니다. 성경의 백인대장은 어떻습니까. 예수님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하고 말합니다. 강력한 말에 대한 믿음과 함께 그리스도교 안에서의 말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신화’를 떠올려봅시다. 신화라는 이 말은 다양하게 쓰입니다. 단군신화, 월드컵신화 등 여러 의미를 내포합니다. 신화, 이러한 이야기의 문화는 사람들을 응집시켜주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공휴일 가운데 개천절은 단군신화가 바탕이 돼 생겨난 날입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날을 기억하며,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유해야 하는 민족적 정체성을 담은 이야기를 함께 기억합니다.
현대에도 여전히 이야기문화는 작동합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다른 배경 속에서 계속해서 만들어집니다. 이처럼 종교와 문화를 이야기의 문화로 살펴본다면 참 재미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즐기는 감수성은 종교와 문화를 잇는 다리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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