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목자 옥현진, 양떼를 돌보다
▲ 초등학교 입학 전 옥현진 주교 모습. 옥 주교는 초등학교 시절 복사를 서게 되면서부터 사제의 꿈을 갖게 됐다.
일곱 살 때 찍은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는 어린 시절 이미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만큼 의젓하고 속이 꽉 차 있다는 표징이다. 옥 주교는 중재자 역할도 곧잘 했다. 그는 다툼이 있는 곳에서 언제나 해결사 역할을 했다. 말과 행동이 신중해 실수가 없었던 옥 주교는 2남4녀 중 막내였음에도 불구하고 형제들 사이에서 리더 역할을 했다고 한다.
■ 외유내강, 절제의 미덕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주님의 일꾼
조용하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지만 공부나 일을 할 때 그는 또 다른 면모를 보인다. 근성과 열정, 판단력과 추진력이 대단한 인물이다. 따뜻하고 온화하면서도 매사에 흔들림 없는 한결같은 성품의 소유자지만, 해야 할 일을 찾아나서는 자신감과 적극성도 겸비했다. 로마에서 9년간 교회역사학을 공부한 그는 2년간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에 두각을 드러냈다. 교회사연구소장으로 재직 중 원로사목자들을 일일이 인터뷰하며 교구 교회사 발간의 기초를 닦았고, 교구 내 숨겨진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추진하기도 하는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맡은 바 임무를 수행했다. 옥 주교와 함께 일했던 교회사연구소 김수진(안나) 대리는 “옥 주교는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면서 “합리적이고 열린 사고방식을 갖고 계셨고, 정확한 판단력과 카리스마 있는 추진력을 갖추고 계셨기 때문에 한 인간으로서도 누구든 신뢰하고 존경할 수 있는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 사제 성소를 품었던 초등학교 시절 당시 신동본당 주임이었던 박영웅 신부(원로사목자)와 함께.
▲ 제2영성관 5학년 신학생들과 담양 소풍에서.
■ 준비된 주교, 하느님 나라를 향한 항해를 떠나다
2006년부터 광주가톨릭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신학생들과 동고동락해온 옥 주교는 신학생들 사이에서도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광주가톨릭대 이창훈 부제는 “영성이 흐려진다며 술도 잘 마시지 않으실 정도로 자기 절제가 강하고, 사제로서 너무 완벽해 보여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실제로 다가가보면 언제나 열려있는 분이셨다”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보이지 않게 도와주실 정도로 학생 한 명 한 명을 진심으로 사랑한 진정한 스승”이라고 고백했다. 총무과장 김용재(리카르도)씨도 “외출을 하고 돌아올 땐 꼭 빵이나 만두 등 간식을 사다주셨다”면서 “직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챙기는 자상한 분”이라고 귀띔한다. 총장 노성기 신부 또한 “단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한 분”이라면서 “강함과 온유함을 겸비하고, 말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모범을 보이시는 분”이라고 전했다.
최연소 주교 임명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옥현진 주교의 임명을 두고, 교구와 신학교 내에서는 예상했던 일이라는 담담한 반응도 나온다. 냉철한 현실 인식 능력과 판단력, 합리적 사고와 강단 있는 추진력, 타고난 온화한 성품으로 미루어 볼 때 옥 주교는 교구를 위해 주님께서 마련하신 ‘준비된 주교’란 것이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와 함께 하느님 나라를 향한 항해를 떠나는 옥현진 광주대교구 신임 보좌주교, 선택받은 그의 발걸음이 힘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