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변화」의 계절이다. 시내에서까지 단풍을 보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높푸른 하늘과, 길가에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노랗게 또는 빨갛게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과일들을 보면 가을인 것이 분명하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무더위와, 그토록 많은 피해를 주었던 태풍과 그 후의 어두운 날들도 어느덧 지나갔다. 이렇게 계절만이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 역시, 전세계적인 경제적 불안 속에서 큰 변화를 겪으며 몸살을 앓고 있다. 그 가운데 많은 인간관계까 큰 아픔을 주며 깨어져 가고 있다. 경제문제가 그 주요인이라고 하지만, 더 큰 원인은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사람들이 「굳어진 마음」에 있는 것 같다.
오늘 주일의 복음말씀에도 「인간관계」의 「깨어짐」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특히 한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맺게되는 인간관계들 중에서 가장 긴밀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부의 관계」의 「깨어짐」, 곧 「이혼」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 몇몇이 예수님께 와서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질문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된다』라고 분명한 답을 주시지만, 그 답을 주시기 전에 먼저 질문자들에게 반문을 하심으로써 그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먼저 말하도록 유도하신다.
그들에 의하면 모세는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은 허락했다』(참조: 신명 24ㅡ1-4)고 본다. 그런데 신명기에 나오는 『이혼장을 써주라』는 조건은 본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었다. 이혼증서는 그 이혼증서를 갖고 있는 여성이 전남편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으며 이제 다른 사람과 결혼해도 된다는 것을 전남편이 선언하는 내용이었다.
즉 위의 신명기의 말씀은 이혼증서도 없이 쓰던 물건을 버리듯이 자의적으로 아내를 버리지 못하도록 한 조항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기서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창세기 1장 27절과 2장 24절을 연결시키시면서 하느님의 본해의 뜻에 따르려면 이혼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시며, 모세가 『이혼장을 써주고 아내를 내보낼 수 있다』는 율법을 준 것은 『굳을 대로 굳어진 마음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그 당시 아내마저도 소유물처럼 생각하여, 이혼장을 써주기만 하면 『아내를 버려도 되는 듯이』쉽게 생각하던 율법 해석의 잘못을 지적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께서 율법해석과 관련하여 「굳어진 마음」(참조: 시편 95,8 에제 36,26 히브 3,7-11 마르 3,5)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이렇게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 있으면」아무리 훌륭한 법과 제도라 하더라도, 그것들을 통해서 본디 주어진 한느님의 뜻이 제 효력을 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이 「이혼」의 전거로 삼는 모세의 율법 그 자체가 잘못 되었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그 율법을 「자신들의 이기심」을 위하여 악용하는 사람들의 「굳어진 마음」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심으로써 「모세의 율법」을 어긴다고 예수님을 공박하려던 반대자들의 주장을 피해가신다.
이번 주일의 복음 말씀은 우리가 혼인미사 때 가장 자주 듣는 복음이다. 교우 부부들에게 오늘 복음 말씀은 그들의 일생에서 가장 엄숙한 자리에서 부모친지들 앞에서 하느님께 다음과 같이 서약했던 것을 회상시킬 것이다.: 『나는 당신을 아내로 또는 남편으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일생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기로 약속합니다』그런데 이 서약은 결코 조건부 서약이 아니었다.
즉 상대방이 건강할 때에만, 또는 상대가 경제적으로 안정적일 때에만, 또는 사회적으로 성공할 때에만, 또는 상대가 아름다울 때에만 유효한 조건부 서약이 아니었다. 혼인미사 때에 신랑과 신부는 각각 자신의 약점은 물론, 상대의 약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스스로의 미래는 물론 상대의 미래에 대해서도 확실히 모르면서 『일평생을 서로 사랑하고 신의를 지키겠다』고 서약하였다. 그러기에 이 서약은 참으로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 사랑 없이는 이룩할 수 없는 것이다. 서약의 내용인 「참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도 부부는 하느님께 함게 기도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들을 부부로 짝지어 주신 하느님께서 또한 당신 성령을 통해 그 「사랑」을 지켜 나갈 힘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오늘 제1독서인 창세기 2장이 깊은 차원에서 말해 주듯이, 인간은 변화무쌍한 이 세상에서 참다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가정 안에서 볼 수 있는「부부」의 관계와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처럼 이해관계를 떠나 조건없이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지속적 인간관계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가정에서마저 그런 지속적 인간관계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 많은 가정이 위기 속에 있다. 본디 가정은 인간이 인생의 첫 단계인 어린시절부터 사랑, 신뢰, 충실성 등과 같은 기본적 덕을 배우는 학교이며,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믿고,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학교의 역할을 해야 하는 곳인데, 오히려 정반대로 미움과 불신 그리고 경쟁을 먼저 배우고, 심지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관계에 있어야 할 부모의 관계가 비극적으로 깨어지는 것을 체험하는 곳이 되기도 한다.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형제자매들이 모인 교회 공동체는 이렇게 위기에 처한 가정드의 안신처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참 가정」을 잃었더나, 잃을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진정으로 「따뜻한 가정적 사랑」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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