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가 1963년 10월 서울교구로부터 분리돼 독립된 교구로 창설됐으니 1998년 기준으로 35주년이 됐다. 최덕기 바오로 주교님이 나면서 주교가 삼대째로 이어졌는데, 주교좌성당도 그때마다 하나씩 새로 지었다.
윤공희 대주교님은 고등동성당을, 나는 조원동성당을, 최덕기 주교님이 오시면서 새 주교좌성당이 생기니까 세 번째 주교로서 세 번째 주교좌성당을 만든 셈이다. 그 사실로써도 수원교구가 갑자기 얼마나 발전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고등동성당은 조원동이 주교좌성당이 될 적에 준 주교좌성당으로 했는데, 지금은 헐고 새로 지었다. 성당이 헐리면 이전 자격이 상실되니까 자동적으로 조원동성당이 준 주교좌성당이 됐다. 교구에서 중심이 되는 본당을 주교좌성당으로 사용하는 것이 유럽 내 교회의 전통적 방법인데, 우리는 전교지역이라 수용능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주교 서품식 때 묵상거리였던 ‘주교좌성당 신축’을 하려고 생각하는데, 마침 북수동성당의 차 수산나 할머니가 조원동의 터를 기증해주셨다. 그 터가 한 2500평쯤 돼 아주 큰 성당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만 그 터를 가로질러 십자형 길이 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900평 남짓 되는 제일 큰 터에 조원동성당을 지었는데, 그래도 그때는 수원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짓는데 1년 좀 넘게 걸렸다.
최덕기 주교님을 모시면서 교구청 건물은 신축했지만 교구 주교좌성당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조원동 양병묵 신부님이 성당 신축 계획 중이셨는데, 교구청이 조원동 코앞으로 이전해오자 그 옆에 주교좌성당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시고 성당을 아주 크게 설계해 건축에 들어갔다.
일단 큰 성당이 하나 생기니까 주교좌성당으로 만들기로 하고 축복 전에 로마에 신청했는데, 축복 다음날 로마에서 인준한 공문이 우리 손에 들어왔다. 그래서 정자동성당이 주교좌성당으로 됐다.
그리고 양 신부님한테 무척 고맙게 생각하는데, 처음 조원동에 주교좌성당을 지을 때는 유럽에서 구걸을 해왔는데 새 주교좌성당은 조원동성당에서 비용을 다 부담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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