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몸짓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눠 볼까요. ‘표현불신론자’ 즉, 지고지순한 사랑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고이 간직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속마음무용론자’, 말하자면 ‘속마음에 있는 것이 무슨 소용 있어’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이렇게 외적 형식에 대한 태도를 두고 표현불신론자, 속마음무용론자로 나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형식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속마음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오래 전 ‘하느님을 만나는데 절차가 왜 필요한가’하고 따지는 일이 있었지요. 미사가 필요 없고 기도하며 하느님만 만나면 된다는 생각이 15세기 유럽에서 생겨나면서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리는 교파들이 출현했답니다. 하느님과 인간이 직접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별도의 중개자는 필요 없다고 말했으며, 성찬예식 또한 그저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행사 정도로 간주합니다.
사상은 언어로 기록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몸짓은 재현하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몸짓의 문화는 가변적이며 유일회적입니다. 이렇게 몸짓은 재현하기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대대손손 보존할 수 있는 경전과 사상 등이 종교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사상, 가르침, 관념만으로 종교가 유지되지는 않습니다. 신념을 내 것으로 만들어서 체득하게 해주는 행위가 뒤따릅니다. 즉 경배의 몸짓과 종교적 수행이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신앙을 자기 것으로 체화하는 몸짓이 수반돼야 하는 것입니다.
평생의례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동이 성인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주체의식을 지닌 자아를 찾아갈 때, 이 시점을 문화권마다 성인식이라는 특별한 의례를 치렀습니다. 성인식 등을 통해 과거와 다른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과거와 단절시키는 현상이 가장 강하게 두드러지는 것은 장례식입니다. 공동체로부터 죽은 자를 격리시켜 빼내는 것입니다.
‘축제’라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보면, 전라도지역의 장례식 풍습이 나옵니다. 관을 모시고 빈소를 차렸다가 상여에 싣고 장지로 떠날 때 관을 방 밖으로 꺼내며 문턱에 바가지를 얹어놓고 깨트리고 나갑니다. 이전으로부터 분리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의례들은 죽은 자를 산자의 영역으로 분리하기 위한 ‘몸짓’이지요. 인생의 고비마다 의례를 치러 매듭을 짓는 것입니다. 이렇듯 전 세계 어디에서나 몸짓의 문화는 구성됩니다.
몸짓의 문화는 다양한 방법으로 자기를 드러나게 하고, 단결시키고, 인생의 고비를 넘어가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규범을 ‘정보’라는 형태로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이처럼 종교를 비롯해 문화 전반을 ‘몸짓’이라는 홈통을 통해서 들여다보면, 지금까지 생각 없이 지나쳤던 것들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거룩한 동작을 통해서 신과의 합일을 꿈꾸기도 하고, 신에 대한 경배 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또한 거룩한 몸짓을 함께함으로써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몸짓의 논리 속에서 종교와 문화를 관통하는 속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생은 한바탕 연극’이라고 생각한다면 마음이 편합니다. 그때 그때 나에게 주어진 배역만 충실히 해내자, 나머지야 하느님에게 다 맡겨버리자, 이렇게 생각하자고요. 기필코 달성해야 하는 인생의 목표에 목을 매고 산다면 너무 불행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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