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에 들어가서 처음 맞은 1927년 여름방학이 왔다. 쿵덕쿵, 쿵덕쿵 달리는 열차 속에서 나는 어느 점잖은 신사하고 자리를 같이 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가 오가는 가운데 라틴어에 대한 대화가 벌어졌다.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는데 느닷없이 그 신사가 정색을 하더니『여보 학생! 말을 배우려면 높은 말을 배우지 왜 하필 낮은 말을 배우시오?』하고 나를 책망하듯 언성을 높였다. 아마도 라틴말을 낮은말쯤으로 들은 모양이다. 그 신사야 말로 높은 말은 않고 낮은말로 하는지 힐끗 쳐다보니 자못 의기 당당한 태세다.
『높고 낮은 말이라니…무슨 양반ㆍ상놈 말로 아시는 모양인데 그런 게 아닙니다. 말의 이름은「라틴어」입니다.』
이어서 나는 라틴어가 로마 시대 이전부터 나씨움 민족이 사용하던 말로, 로마인들과 그 인근 지역 주민들이 사용하던 말이라는 등 그 기원과 발달사를 설명했다.
에트루칸 족이 이태리를 침략할 당시 바다를 통해서 기원전 8세기에 도입돼 서기 5세 기에는 이태리 전국에서 라틴어를 일상어로 사용하게 됐다. 유럽에서 알프스 산과 아펜니스 산맥을 넘어「로마」로 유입된 것이다.
인도-유럽 시대 것으로 추정 되는 주화가 시칠리 섬에서 발굴됐는데 여기에 라틴어가 새겨져 있어 당시에도 라틴어가 사용됐음을 입증하기도 했다.
이태리와 셀틱해 서북 지방에서 가장 먼저 일상 용어화된 라틴어는 티벳과 깜빠니아 지방 에서 보다 먼저 사용됐다.
이러한 라틴어는 영어ㆍ이태리어ㆍ불어ㆍ스페인어 등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현재의 「로마」(Roma) 혹은「롬」(Rome) 이란 말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로마네스 족ㆍ띠띠 에스 족ㆍ루체레스 족의 세 민족이 합쳐져 로만 (Roman) 민족을 이룬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게 긴 설명을 들은 그 신사는『그러면 그게 낮은 말이 아니고 높은 말이 구먼요.』 하였다.
『예! 높은 말이라기보다는 토착화한 말로「양반 말」이지요』
내 대답에 언성을 높였던 신사는 콧대가 납작, 형편없이 되고 말았다.
애꿎은 담배만 뻑뻑 빨며 차창 밖으로 연기만 내어 뿜었다.
그 신사에게 말할 때는 의기양양 했지만 실상 1920년부터 26년 봄까지 이 라틴어와 안간힘을 써 가며 씨름을 해야 했다.
1926년9월 철학과에 입학했을 때 입학 동기생 38명중 31명은 도중에서 다 탈락하고 7명만이 철학과에 등록했다.
그런데 철학과에서는 온통 라틴어만을 써야 했으므로 꼭 라틴 공화국 국민이 된 성 싶었다. 라틴어로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며 쓰지도 못한 채 강의 시간ㆍ독서 시간ㆍ대화 시간ㆍ필기 모든 것이 답답하기만 했다. 하도 답답해서 가끔씩 동정을 달아 주기도 했던 박희봉 신부의 당숙 박요한 신학반 학사님께 상의했다.
『요셉아. 그렇게 실망하지 마. 누구나 다 그런 거야. 그때 나도 윗반 부제님 도움으로 이겨낸 거야. 6개월만 견뎌 봐요.』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고 보니 정말 신기하게도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며 입이 열렸다.
라틴어 얘기가 났으니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모든 성사가 라틴어로 집행되니 라틴어가 형편없으면 다른 학과가 아무리 뛰어나도 탈락시키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라틴어 공부를 잘하라고 교수 신부님의 들려주시는 얘기가 재미있었다.
한번은 라틴어가 서투른 사제가 악마 들린 사람을 고치려 할 때 악마에게『어서 이 사람에게서 나가거라!』하니 악마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라틴어도 잘못하는 신부야! 네가 라틴어 문법을 틀리게 말하니 난 이 사람에게서 못 나가겠다.』하고 버티더란다.
사실 그때 나는「사목 생활을 하면서 라틴어를 잘못해서 마귀가 나가지 않으면 어쩌나」하고 마음을 졸였다.
라틴어 못하는 신부님 일화에 이런 것도 있다.
서양의 어느 신부가 라틴어 실력이 하도 형편없어 주교님은 그가 성사 집행을 제대로 하는지 의심이 들어 성무 집행 중지 통지를 보냈다.
그 통지서의 내용은「이 편지를 받는 대로 그 당나귀를 성소에 매달아라.」하는 것이었다.
얼마후성무집행중지처분을제대로실행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주교님은 조사관을 그 신부 에게 보냈다.
조사관이 그 신부의 본당에 가보니 라틴어 못하는 신부는 여전히 성직을 봉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조사관은 신부에게 주교의 명령서를 받았느냐고 물었다.
『받았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신부는 주교의 명령서를 내놓았다.
그대로 실행했느냐고 조사관이 물으니『예! 즉시 실천에 옮겼습니다.』하고 조사관을 성당 제의실로 안내했다.
아뿔싸! 제의실 대들보에 당나귀 한 마리를 매달아 놓았던 것이다.
기가 막힌 조사관이 다시 물었다.
『신부님! 이게 주교님 명령에 따른 거요?』
신부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편지를 받자마자 저렇게 달아 놓은 걸요.』
조사관의 배꼽이 빠질 노릇이었다.
당나귀처럼 미련하고 바보 같은 신부가 당나귀를 매달듯 성소를 중지시키라는 주교님 의 본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얘기들은 그만큼 라틴어가 우리 성직 수행에 불가결한 조건임을 말해 주는 것들이다.
1962년 제2차「바티깐」공의회까지 이러한 일화는 꽃처럼 만발했다. 그래도 한국 신부들의 라틴어 실력은 지난 호에서 말했듯 정기간행물을 낼만큼 뛰어난 것이었음을 덧붙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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