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의 가을로 접어들면서 1천8백여 년 전 유데아의 갈바리아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헌의 핏방울로 시냇물을 이루신 그 보혈의 아지랑이가 이 강상에서도 점점 진하게 아롱져 가고 있었어요. 어떤 이의 꿈에는 이 나라의 모든 시냇물이 진달래 꽃 빛깔로 변한 것이 보였으니까 말이지요.
아니, 어둠이 빛을 박해하는 역사가 본격적으로 그 막바지를 향하여 치달리고 있었어요.
남촌동의 역관 선비 아우구스띠노스 유진길은 그 장면을 다음처럼 생각하고 있었어요.
(저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정원에 꺾꽂이가 되어 가는 아픔이구나. 이 세상이란 풍토에 그 생명이 떨어져 씨앗을 받지 않고 막 바로 그 삶이 하늘나라의 정원으로 옮겨가는 아픔이며 고통이겠지. 하느님께서는 나도, 내 아들 베드로도 거기에 초대하시려고 하시는데 그 얼마나 가슴 두근거리는 일인가?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게 용기를 주소서. 떳떳하고 의젓한 모습으로 당신께로 나아가 게 하소서. 제 아내와 딸, 그리고 친척들의 억울한 희생을 생각하시어 그들에게 푸짐한 갚음을 주소서. 그들의 앞날을 사랑이시며 자비이신 아버지의 손에 맡기나이다. 그리고 같은 길을 가게 될 제 어린 아들 베드로의 슬기와 용기, 그리고 믿음 위에, 주여 특별히 당신의 밝으신 모습 드러내 주소서) 그러면서 담장 밑에 늘어서 있는 해바라기 꽃들을 바라보았을 때 다음 노래가 떠오르고 있었어요. 따라서 그는 그 노래를 조국을 위에 바치고 있었어요. 빛의 땅 동방의 첫 지점 해돋이 녘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도 진리의 복음을, 문명과 문화의 꽃을 느지막하게 꽃피우는 조국의 운명을 안타까워하면서, 따라서 거기에 대한 예언자적 자세로서 말이지요.
온 누리의 많고 많은 꽂송이들아
어서 와서 나를, 나를 축하해 다오.
황금빛 햇님 사랑 담뿍 받으며
이렇게나 찬란하게 꽃피운 나를
모두 와서 말해 다오 축하한다고.
한창 봄날 모두들 꽃을 피울 때
우두커니 있는 나를 비웃으면서
민들레도 말하였지, 너는 바보다
냉이 꽃도 말하였지, 너는 바보다
제비꽃도 말하였지, 너는 바도다.
봄날 가고 여름이 다가 왔을때
땅꼬마 채송화가 꽃을 피우며
해바라기 오라버님 웬 일이세요?
두 눈을 감으면서 대답했지요.
묻지마라. 나의 때는 아직 아니니.
여름 가고 가을이 다가 왔을 때
하느님은 나를 보고 손짓하셨네.
해바라기 꽃이 되라. 어서 되거라.
온갖 슬픔 꿋꿋이 참아 견뎌 온
찬란한 그 보람을 듬뿍 즐겨라.
따라서 그는 그날을 바라보며 느끼고 있었어요. 그날로부터 두 구비의 세기가 회전되는 어느 훗날, 그리스도의 지방 대리자이신 교황 성하께서 이 나라를 방문하시고 순교 복자 103위의 시성 선포가 온 세계를 향하여 바로 이 나라 이 땅에서 이룩되리라는 것을……따라서 천사가 부르는 다음 노래 소리를 그도 들었을까요.
일어나 비추어라. 찬란한 너의 빛
야훼의 영광이 너를 비춘다.
민족들이 그 빛따라 모여 들며
제왕들이 솟아 오르는 너의 광채에
이끌려 오는구나.
너의 아들들이 먼 데서 오고
너의 딸들이 품에 안겨 온다.
이것을 보는 네 얼굴에
웃음의 꽃이 피리라.
너의 가슴 벅차 부풀리라.
(이사야 60장에서)
이윽고 그날을 위한 제물로서 하늘 밭에 옮겨질 꺾꽂이 나무가 되기 위한 하늘나라의 초청장이 날아오고 있었어요. 그 어느 날 포악하디 포악한 포졸들의 손길이 이 댁의 대문을 두들겨 대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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