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여름방학을 지내고 신학교로 돌아온 나는 등교할 때「佛語初步」라는 일본책을 사 가지고 갔다.
그 당시에는 라틴어만 배웠으나 40~50년 사목 생활을 해 나가다 보면 라틴어만으로는 부족할 것으로 여겨졌다.
강론ㆍ신학ㆍ영성ㆍ사목을 도울 책들이 라틴어로 씌어진 신간은 자꾸 줄어들리란 것도 그 이유의 하나였다. 그런데 비해 불어책은 손쉽게 입수될 것 같았다.
그런데 불어책을 신학교에 내어놓았다가는 당장에 보따리를 싸야 했다.
그래서 밤마다 몰래 이불속에서 밤이 이슥하도록 불어를 자습했다. 컴컴한 이불속에서 몇 년을 도둑공부(?) 하다 보니 눈을 상하고 말았다.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무리해서 보려니….
윤을수 신부는 1920년 9월 13일 신학교 입학 날부터 1932년 12월 17일 신부가 될 때까지 소ㆍ대신학교에서 늘 한 책상에 앉아 공부했다.
내가 불어를 자습한다니까 그도 같이 불어 도둑공부를 시작했다. 1924년까지 그래도 잘 숨겨 가며 어깨너머로 더듬더듬 배워 오다가 1924년 봄에는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구수회의를 소근 소근 벌이기도 했다.
불어를 몰래 배우다가 들키면 신학교에서 쫓겨나갈까해서 둘 다 걱정이 된 것이다.
둘이서 걱정걱정하다가 드디어 묘한 수를 생각해 냈다. 우리 고해신부님으로 영신 지도신부님이신 차 신부(R.E.CHABOT)님께 솔직하게 다 털어놓기로 했다.
이판사판이었다. 다 털어놓으면 첫째 우리 양심이 편해질 것이고, 설령 몰래 도둑 불어공부를 하다가 떨려 나더라도 차 신부님의 도움을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윤을수의 표현대로「양성화」시키기로 했다.
하기야 양심의 가책 때문에 바짝바짝 말랐으니 더는 견딜 재간도 없었다.
며칠뒤 주일미사에 둘이서 불어책과 불어사전(佛和ㆍ화불-당시는 일어로 된 사전밖에 없었다)을 다 싸가지고 차 신부님 연구실을 찾아갔다.
그동안 둘이서 몰래 불어 배운 일을 털어놓자 차 신부님은『그게 죄 될 것까지는 없다. 신학교에서 불어 못 배우게 하는 게 고약망칙스럽지』하신다.
「인젠 살았구나」하고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차 신부님은 더 반가운 말씀을 해주셨다.
『내가 불어를 가르쳐줄까? 너희들 둘이서 주일날 불어책을 가지고 몰래 내게로 와! 내가 가르쳐주면 진 교장 신부님에게 혼나도 내가 혼나지, 너희들이 혼나겠니? 불어 공부나 열심히 하렴』
일단락은 지어진 셈이었다.
그런데 1925년 7월 15일「로마」에서 열린 기해박해(1839년)와 병오박해(1846년) 때 순교한 79위 우리 복자 시복식에 진 교장신부님이 참석하셔서 아드리아노 라리보 원 신부님이 교장 서리로 오셨다. 원 신부님은 1914년부터 서울교구 경리부장으로 계셨는데, 호랑이 없는 곳에서는 토끼가 왕이라고 원 신부님이 오시자마자 불어를 왜 못 배우게 하느냐고 의견이 들끓었다.
진 신부님과는 달리 신식 바람을 쐬신 원 신부님은 학교규칙을 풀어놓아 1926년부터는 불어를 배울 수 있게 됐다.
그해 가을 본국을 둘러「로마」에서 돌아오신 진 교장신부님은 깜짝 놀라셨다. 당신이 그렇게 극력 금하셨던 불어를 배우지 않나, 영어를 배워도 가만두지를 않나…
메리놀회 방 빠뜨리치오 신부님이 평양교구장으로 임명받으신 즈음이어서 평양교구 소속 양기섭, 강영걸, 우리반 반장 홍용호는 영어를 열심히 배웠고 나하고 윤을수는 불어를 배웠으며 오연희도 영어를, 그리고 지금 단 하나 남은 나의 동창 임종국은 일본말에 열중했다.
말하자면 용산신학교 내에 잠깐동안 바벨탑이 세워진 꼴이었다.
나는 도둑질해 배운 불어로 1941년 12월 25일 오후3시 일본 동경 교황청 대사관에서 마렐라 대주교를 만나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 시달리는 우리나라 상황을 설명하면서 한국인 주교를 내라고 역설할 때 유용하게 썼다. 그리고 지난 72년 11월 15일「바티깐」에서 교황 바오로 6세를 단독 알현할때도 써먹으니 가슴이 후련했다. 정말「아는 것이 힘」이었다.
당시 신학교에서 그토록 엄격하게 금했지만 등 너머로 어깨 너머로 가슴 조이며 배운 불어가 중요한 때에 쓰여 졌으니 어찌 대견하지 않으랴.
개성 출신의 윤을수도 함께 가슴을 조렸지만, 그 역시 불어를 이모저모 잘 써먹었으니 후회는 하지 않았으리라 지금 지하에서라도 대견해 하겠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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