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천주신데 각기 다른 3위라는 교리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준 신부님 덕분에 아가씨는 비로소 세상에 태어난 기쁨을 깨달았다.
아가씨는 고백소 앞에 나와서 신부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 아무리 기다려도 신부님이 고백소에서 나오시지를 않는다.
제의 방지기는 아가씨가 성사를 본 줄 모르고 다음날 다시 오라고 했다.
『전 벌써 고백성사를 다 봤어요. 신부님께 감사 인사드리려고 기다리고 있는 걸요.』
아가씨의 말에 제의 방지기는 펄쩍 뛰었다.
『이거 봐요, 아가씨. 저 고백소 안에서는 아무도 없어요. 난 벌써 모든 고백소를 돌아봤어요. 혹시나 어느 신부님이 계신가 하고 자, 와 봐요. 아무도 없어요.』
제의 방지기가 그 고백소의 문을 열었지만 그의 말대로 아무도 없었다.
아가씨는 이 알 수 없는 일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이 일이 있은 후 꼭1년 후인 1923년 여름 방학 때 아가씨는 어머니ㆍ이모와 함께 산지오반니 수도원을 방문했다.
수도원 긴복자에서 사방에서 운집한 군례자들에 둘러 쌍인 삐오 신부님을 만난 아가씨는 신부님이 자기를 알고 있음에 깜짝 놀랐다.
『난 아가씨를 벌써 알고 있지. 아가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바로 그날 낳았지?』하고 오상받은 손등에 친구케했다.
그 이튿날 일행 세사람이 고백성사를 받게 됐는데 성사를 보려고 무릎을 꿇은 아가씨에게 삐오 신부님은『아가씨가 고백성사 보러 오기를 벌써부터 기다렸어요.』하고 말했다.
아가씨는『전 신부님을 처음 뵙는데요. 이곳에도 처음 왔고요. 혹시 다른 사람하고 혼돈하시는 게 아니세요?』어리벙벙해진 아가씨의 대답에 신부님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니야. 일 년전에 성베드로 대성전 고백소에서 날 만났는데… 그때 아가씨는 고백 신부가 없어서 발을 동동 굴렀었지? 그때 느닷없이 어느 젊은 프란치스꼬회 신부가 고백을 들어줬지 않아』아가씨는 비로소 그 사실이 떠올랐다.
이것은 同時兩處기적(Biblocation Miracle) 즉 그때 그 시간에 삐오 신부님은 산지오반니 수도원에 계셨지만, 성모님의 주선으로 그와 꼭 같은 시간에「로마」의 베드로 대성전에서 아가씨의 고백성사를 보게 된 것이다.
아가씨는 성보님의 알성에 눈물로써 감사했다.
『그런데, 아가씨. 난 아가씨 아버님이 임종에 가까이 왔을 때 종부성사를 보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것과 어머니가 아가씨를 낳으려고 고생하는 것을 성모님께서 내게 보여주셨지. 그래서 아가씨 아버지께 종부성사를 하고 아가씨에게 세례를 주었지.
성모님은 곧낳을 아기가 성모님께 아름다운 진주와 같은 아기라고 말씀하셨고, 넌 이 진주를 앞으로 갈고 닦고 빛내도록 하라고 분부하셨어요. 이렇게 성모님이 자세히 일러주셔서 난 아가씨를 늘 기억하고 지금도 제일로 기구하고 있어요.』
아가씨는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두 눈 속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껴 울었다.
『신부님, 그럼 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수녀원에 들어갈까요?』
신부님은 아가씨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대는 자주 이 산지오반니를 찾아오면 돼. 그때마다 그대의 영혼을 지도해 천주님의 뜻을 알도록 하겠어요.』
긴 고백성사가 끝나고 아가씨가 눈이 퉁퉁 부어 가지고 고백소를 나오자 가족들은 궁금해서 꼬치꼬치 캐물어도 아가씨는 입술을 꼭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부님은 이틀 만에 아가씨에게 프란치스꼬 제3회에「라꼬빠」란 본명으로 입회하라고 말했다. 아가씨는 성프란치스꼬의 딸이었던「끌라라」로 본명을 삼고 싶다고 말하자, 삐오 신부님은 프란치스꼬 성인이「프란치스꼬회의 어머니」라고 부른 라꼬빠로 본명을 삼도록 했다.
라꼬빠 부인은 로마 귀족으로 프란치스꼬 성인의 임종을 도운 사람의 하나인데, 삐오 신부님은 아가씨에게 자신의 임종을 돕도록 허락한 것이었다.
아가씨는 3회에「라꼬빠」를 수도명으로 입회해 급속도로 완덕에 가까워졌으며 결혼을 통해 거룩한 가정ㆍ평화롭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으며 삐오 신부님을 만나기 위해 산지오반니를 자주 찾았다.
1968년 9월 20일 삐오 신부님이 오상받으신 50주년 금경축을 지낼 때 라고 빠회원은『나는 곧 이 세상을 떠나요』하는 신부님의 목소리를 기도 중에 들었다. 산지오반니로 달려간 아가씨는 신부님 임종 나흘 전에 마지막 고백성사를 보는 영광을 얻었다.
많은 순례자를 맞아 주시고 그들의 질문에 응답하며 미사성제를 임종 하루 전까지 드리신 삐오 신부님은 82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나셨다. 1968년 9월 23일의 일이였다.
삐오 신부님은 미사 때마다 성체 안에서 예수님을 친히 보는 특은을 가지셨고, 라고빠는 신부님 뜻대로 그분의 임종을 도왔다.
GㆍR부인은 삐오 신부님이 자기 고해신부님에게 쓴, 자기 얘기가 들어 있는 편지를 삐오 신부의 고해신부인 수도원장 아우구스띠노에게서 받아 잘 보관했다.
또 이 편지의 사본을 만들어 수도원에 보낸 GㆍR부인은 그 편지의 진가를 알아보고 삐오 신부의 시복 수속을 위해 편지를 복사했던 것으로, 만프레도니아 주교관 참사 회의에서는 이 편지가 진실한 것임을 증언하기도 했다.
삐오 신부님의 이야기는 신학교 기간 동안 내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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