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늦은 가을 진 베드로 교장신부가 79위 우리복자 시복식에 참여하시고 자기 고향에 들러 용산신학교에 돌아오시는 동안 교장서리인 원 아드리아노 라리보 신부가 만1년이 넘도록 교회사를 가르치셨다. 그러나 1926년 성탄 못미쳐 민 대주교님의 보좌주교로 임명돼 명동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원 신부님 재임동안 신학교에는 신식바람이 많이 불어왔다
대신학교 건물 바로 뒷교정에 뚝을 막고 물을 채워 40평가량의 스케이트장을 만들었다.그리고 신학교 학생들에게 발치수대로 모두 스케이트도 사주셨다.교정에는 테니스코트도 번듯하게 만들었으며, 네트도 구입했으며 심판대도 만들었고 테니스용구는 물론 축구공도 갖췄다.
그리고 대신학교교사 지하실을 제외하고는 며칠을 걸려 마루바닥을 물로 닦아냈다.그리고 쓰다남은 밀초부스러기를 끓여 마루를 빈틈없이 칠하고 걸레라는 걸레를 총동원해 닦고 문지르고 법석을 치렀다.
이러한 외적 변화는 물론 불어공부 등 어깨너머로 도둑처럼 몰래 배우던 외국어공부를 허락해주셨다.
1928년까지 구도원 이상(?)으로 엄격한 신학교에는 응접실이 없었다. 부모님들이 어쩌다 찾아오시면 곤욕이었다.
안나오는 얘기지만 이판저판이라 생각하고 입을 뗐다.
『부모님들이 저희들을 찾아오셔도 운동장 한귀퉁이에서 비가오나 눈이오나 몇분동안만 만나는 제도를 좀 바꿀수는 없을까요?신부님 널리 통촉해주십시오』
바로 그 이튿날 목수와 비단장사 왕서방이 몰려와 소신학교 오른편에 쭉나온 방2개를 터서 응접실을 만들었다.
도목수인 왕서방은 하도 우리하고 오래 사귀어서 올려쳐야하는 못은「아센데」쳐, 아래로 박는못은「데센데」쳐하고 명령하며 껄껄웃었다. 「아센데」란「위로」, 데센데는「아래로」란 뜻인데 이 정도까지 안다는 뜻이었다.그리고는 계면쩍은듯 껄껄웄었던 것이다.
긴댕기를 땋아서 뒤로 축 늘어뜨리고 우리말에 라띤어를 짬봉해 쓰던 왕서방 생각만 나면 자다가도 웃음이 나온다.
1928년 겨울방학이 되자 1927년 5월 1일 명동성당에서 보좌주교가 돼서 용산신학교를 떠나신뒤 첫겨울방학이었다.
1월 28일 오후 우리 아랫반 소신학생들이 대열을 지어 대신학교 교정으로 쳐들어왔다. 강 요한 현흥(평양교구신학생ㆍ현재 은퇴중-강 신부님 죄송합니다. 호령 거두소서)이와 성 요한(서울교구 신학생)이 앞장을 선 소신학생대열은 2층정문을 두드렸고, 호랑이 같은 진 신부님 연구실로 우루루 올라갔다.
신학교에서 자기를 거스려 데모가 났다는 사실에 진 신부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했다.
학제를 변경해 당시와 같은 사설학교가 아닌 정규인가 신학교로 만들어달라는 것이 학생들의 요구였다.
요구조건이 나열된 진정서를 학생들로부터 받아든 진 신부님은 학생들에게 소신학교로 다 내려보내시면서『선배들은 그대로 나가서 사목만 잘들 하시는데, 인가난 학교로 만들자니 세속정신이지…』하셨다.
교장선생님은 그길로 진정서를 들고 주교댁으로 들어가 저녁때 원 보좌주교님을 모시고 나오셨다.
데모하던 학생들을 모으신 뒤 원 보좌주교는『너희들이 진정한 것 내가 잘 알아요. 신부가 돼도 정식 졸업장이 있어야지. 너희들 요구대로 정식인가를 받은 신학교로 만들어주마』고 약속하셨다.
진 교장신부님은 설마 그럴줄 몰랐다는듯 입맛만 다셨고, 학생들은 히죽 웃었다.
원 신부님은『내년인 1929년 여름까지는 그냥 여기서 공부하고, 2학기부터는 동성상업학교로 가서 공부하게 될거야』하셨고, 한명도 꾸중을 하거나 퇴학시킨 일도 없었다. 만사는 성공이었다.
1929년 봄부터 혜화동(前 백동)의 베네딕또수도원양 날개를 내어달아 1ㆍ2층에 오른쪽에 성당과 식당, 왼쪽에 교실과 침실을 마련했으며 본수도원 가운데채는 교수신부님들 연구실과 진 베드로 교장신부실이 마렸됐다.
이렇게 하여 동성상업학교는 각 반을 甲ㆍ乙 두조로 나누어 을조에는 신학생들만 공부하도록 했다. 이로써 1878년 봄용산 부흥골에서 시작된 용산신학교는 1928년 만40년만에 학제가 변경됐고, 1929년 9월에는 소신학교가 완전히 혜화동으로 이전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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