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년의 칠흑 같은 어둠에 묻혔던 자연의 신비가 작년에야 모습을 드러낸 곳이다.
82년1월19일 오소리 사냥을 나섰던 조영만(33)씨 등 3명은 경북 안동군 북후면 석탑리 산17 속칭 미림골 뒷산에서 이굴을 발견, 군청에 신고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총연장 2백50여m의 협소한 6개의 광장으로 이뤄진 작은 동굴이지만 형형색색의 종유석 석순 특히 새 하얀 석화들이 이리저리 어우러지며 조화를 이룬 신비스런 모습이 자연이 빚은 예술의 극지를 보여주고 있다.
안동군 북후면에서 포장 안 된 산 비탈길로 63km, 네 개의 고개를 굽이굽이 넘어 털털거리며 1시간쯤 달리면 영주와의 경계에 놓인 맨끝 마을 산속에 파묻힌 채 옹기종기 모여 있는 13가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굴은 이 미림골 부락 바로 뒷산, 동북쪽으로 1백여m쯤 거슬러 올라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입구는 직경 67cm쯤이며, 수직으로 7∼8m 내려간다. 몸을 비집고 다리부터 들어간 뒤 로우프를 타고 간신히 바닥에 닿으면 10평 정도의 제1광장에 이른다.
주위는 보통 암석이고 바닥은 습기 찬 진흙으로 미끄럽다. 한쪽 구석 벽에 붉은색의 종유석이 드리워져 있다. 다시 수직으로 5m쯤 내려가면 3평 남짓한 제2광장에 이르지만 형태는 제1광장과 비슷해 별다른 형성물을 발견할 수 없으나 제2광으로 빠지는 수직 통로 역시 한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정도로 비좁아 온몸이 진흙으로 범벅이 된다.
제2광장에서 수평으로 꼬불꼬불한 통로를 더듬어 20여m쯤 전진하면 6m쯤의 절벽이 나타나고 10평 정도의 이굴에선 넓은 제3 광장에 이른다.
제3광장부터가 그야말로 돌꽃 밭. 천장 가득 길이 1m안팎의 돌고드름이 삐죽삐죽 수없이 달려 있고 한쪽 벽면엔 고래 등 지느러미 같은 베이컨 종유석이 마치 커튼을 친 듯 붙어 있다. 바닥 곳곳에 솟은 석순과 석주도 일품이다
제4광장에 이르는 길이 10m쯤의 좁은 통로는 사방이 종유석으로 뒤덮여 마치 종유 복도를 기어가는 느낌이다
5광장은 3개 부분으로 나뉜다. 폭포수가 얼어붙은 듯 한 종유 폭포가 한쪽 구석에 3m크기로 발달돼 있고 아래쪽엔 사방이 모두 종유석과 석화로 둘러싸인 안방만 한 종유 석방이 놓여 있다. 종유 석방은 바닥에서부터 천정까지 수 만개의 붉은 구슬을 붙여 놓은 듯 석화가 만발, 가히 장관을 이룬다.
그동안 수없이 동굴 조사를 다녀 봤지만 이 굴에서처럼 깨끗하고 정교한 석화를 일찍이 본 일이 없어 나와 함께 기초 조사를 한 동굴 생물학자 남궁준씨와 나는 흥분을 감출 길이 없었다.
제5광장에서 제6광장 까지는 나처럼 몸집이 가는 사람만이 겨우 빠져 나갈 수 있는 비좁은 수평 통로로 20m쯤 연결된다.30평 정도의 광장이 나오고 한쪽 구석에 붉은 석순과 나무뿌리가 몇 가닥 드리워져 있고 지표와 가까워졌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한 가지 짚고 넘어 가야 할 사실은 이 동굴이 발견되어 두세 차례의 탐사와 취재만이 있었을 뿐인데도 이 동굴의 내부엔 많은 변화가 왔다는 사실이다. 여기 저기 석순이 부러지고 아름다운 종유 벽과 바닥은 온통 진흙 밭에 의하여 더럽혀졌다. 나와 함께 동행한 군청 직원은 이 동굴 안에서 사람들이 버린 한주먹 가량의 담배꽁초를 주워 들고 나왔을 정도이다.
이 동굴이 발견되자 경상북도 당국은 지방 문화재로 지정하고 동굴 입구를 봉쇄, 경고문을 설치했으며 마을 주민들은 자체적인 경비까지 나섰다는 뒷소식이나 안타깝게도 이굴은 발견되기가 무섭게 훼손되고 짓밟힌 대표적인 경우에다가 최근엔 여러 사람들로부터 무리한 관광 개발이 추진되는 모양이니「동굴아 꼭꼭 숨어라 그래야산다.」고 또 한 번 헛소리처럼 되뇌어 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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