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학교와 대신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직책이 종지기였다 소신학교때에는 임종국(내 동기동참으로 은퇴ㆍ생존해 있음)이 콩나물사건으로 하루 아침에 소위 삭탈관직이 되고,강원도 홍천출신 홍도마가 종지기 벼슬에 올랐다.벼슬했다고 으시대느라고 금딱지 시계를 사다가 뻐기었다.올해 1월4일 춘천죽림동에 피정강론을 가서 해후의 기쁨을 나누었지만,그렇게 순진한 홍도마씨는 지금은 고인이 됐다.
대신학교에서는 이 마티아여구(汝求) 부제님이 종지기였는데, 그분이 차부제품을 받아 시간의 여우가 없어졌다.
이 부제님의 시계가 우리 윗반의 임충신(林忠信)선배에게 물려졌고, 임 마티아 학사님이 차부제가 됨에 따라 종지기 벼슬이 내게 떨어졌다.
종지기에게 주어지는 시계란 것이 18세기에 만들었는지 크기는 거짓말 보태서 주먹만 하고 맘이 내키면 가고 실증이 나면 안가는 제멋 대로였다.
짐작으로, 또는 남의 시계를 봐 가며 종을 쳐야 했다. 칸트는 하도 정확해서 시가지를 산책하면 시중 사람들이 그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시계를 맞췄다지만 내 시계는 시계 인데도 보고 시간을 맞추었다간 원망 듣기 안성맞춤이었다.
한번은 진교장 신부님에게 호출을 당했다.
『오요셉! 너 요새 종 잘치지』
이럴 때는 날 잡아 잡수시오. 하고 벙어리 노릇을 해야만 됐다. 1분1초를 벼르시는 분인데 성체강 복종을 15분이나 늦게 쳤던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신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시간이란/기다리는 자에겐 너무 느리고/두려워하는 자에겐 너무 빠르고/걱정하는 자에겐 너무 길고/기뻐하는 자에겐 너무 짧으나/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에겐/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헨리 반 다이크의 시귀이다.
내 주를 사랑하기 위하여 이종을 올릴 제『주님을 사랑할 시간이 됐습니다.』하고 외치듯 종 줄을 당겼다.
『위대한 사람들은 시간이 부족하다고 불평하지 않는다.』는 말씀처럼 모든 사람에게 24시간은 똑같기 때문이다.
귀중한 시간을 1분1초라도 틀릴세라 내 탓으로 야훼님을 섬기는 내 벗ㆍ어르신네들이 늦을세라 노심초사하며 다른 이의 시계를 훔쳐보며 매일 몇 번씩 시계를 맞춰 가며 종을 쳤다. 그러나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나도 별 뾰족한 재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하루는 거의 반시간이나 늦게 종을쳤다. 정확한 시계를 가진 사람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대신학교 2층에서 천둥벼락이 떨어졌다.
『오요셉! 어디 있나! 이리와 얼른!』
교장 선생님의 호령에 벌벌 떨며 2층 사무실로 올라가는데, 교장 신부님이 올라가는 층계에 딱 버티고 서 계신다.
나는 그분의 대노를 막아내는 방법을 미리 생각해 두었지만 막상 교장 신부님 얼굴을 뵈니 겁이 났다.
『지금이 몇 시지? 이렇게 종을 치면 모든 일이 다 틀리는 걸 모르나?』
신부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큰일 났다. 나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내 시계를 내 들이댔다
굵은 돋보기 너머로 내 시계를 들여다보시던 교장 신부님의 얼굴이 대번 변했다.
『네 시계가 잘못 됐구나. 내 시계 봐』하시며 내 시계를 당신 시계로 맞추어 주시면서『시계가 틀리면 물어봐야지』하신다. 그리고는『시계 죄지, 내 죄는 없다. 내려가!』하셨다.
이분에게는 앙탈을 부리거나 마주 성을 내면 그때는 끝장이다. 개나리 봇짐 걸머지고 달랑달랑 용산역으로 가야 하니까.
그 후부터는 시간이 돼도 종이 울리지 않으면『오요셉. 시계가 잘못가지? 지금이 몇시 몇분인데…』부드럽게 일러주시던 음성에 내 심금 울리기 몇 번이었던가.
다시 남의 시계에 맞추어 가며 1931년까지 종지기의 고비를 잘 넘겼다. 종 잘못 쳐 꾸중 듣는 꿈꾸기 몇 번이고 자다 말고 종치려고 벌떡 일어나면 새벽1시,2시인적이 또 몇 번이었는지 헤아리려면 열 손가락으론 모자란다.
1931년 5월 17일 차부제품을 받아 성무일도를 의무적으로 염해야 하므로 종지기 노릇은 끝났다. 교장 신부님은 그동안 수고했다고 상으로 은딱지 시계를 주셨다.
시간이 정확히 맞는 시계, 거기다가 은딱지 시계 줄까지 하사하셨다. 감개가 무량했다. 내윗반 선배와 친구들도 칭찬이 대단했다.
교장 신부님 덕분에 시간관념이 제대로 박혀서 1932년부터 83년까지 51년 동안 미사 시간을 1분1초도 늦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으며, 시간 엄수를 내 생활의 규범으로 지켜 왔다.
『거저 받은 것은 거저 주라』는 성경 말씀대로 교장 신부님이 주신 은시계는 약현(중림동)보좌 시절에 시계가 없어 곤란한 남학생에게 주었다. 내력을 이야기하고 시계를 쥐어 주자 그 학생 손이 벌벌 떨렸다.
시간이 나를 살렸지만 종은 몇 번이나 나 때문에 울었던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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