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의식적으로 사도단을 조직하셨음을 이미 보았거니와, 열두 사도들은 완전히 평등한 위치를 가진 것이 아니고, 그들 중에서 베드로 사도는 특별한 위치와 권한을 가지고 있음이 성서의 증언으로 확실히 드러난다.
공관복음서와 사도행전에 소개된 열두 사도들의 명단에는 언제나 베드로가 첫 자리에 놓여 있으며(마태 10ㆍ1~4 마르 3ㆍ13~19 루까 6ㆍ12~18 사도 1ㆍ13) 그는 여러 번 사도단을 대변하고 있다.
그는 주님의 비유의 뜻을 풀이해주시라고 청하였고 (마태15ㆍ15) 예수를 그리스도이시라고 고백하였고 (마태16ㆍ16, 마르 8ㆍ29, 루까 9ㆍ20), 주님의 수난을 말리다가 꾸중을 들었고(마태26ㆍ33~35, 마르14ㆍ29~31, 루까22ㆍ33)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으니 무슨 상을 주시겠느냐고 대표질문을 하였다. (마태19ㆍ27 마르10ㆍ28 루까18ㆍ28).
그리고 생명의 빵에 관한 설교 끝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하고 물으실 때에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따라 가겠습니까』하고 대표답변을 하였다(요한 6ㆍ37~39).
베드로는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주님의 거룩한 변모와(마태17ㆍ1~4) 게세마니의 기도에서 가장 측근에 있었고(마태 26ㆍ37) 주님을 자기의 배와 집에 모셨고(루까 4ㆍ38, 5ㆍ3) 주님과 자기의 세금을 내기위하여 주님의 명령으로 물고기를 잡았고(마태 17ㆍ27) 주님을 방어하려고 용감히(?) 칼을 뽑았고 (요한 18ㆍ10~11) 주께서 부활하신 후에 사도들 중에서 제일 먼저 주님을 만났다. (루까 24ㆍ34, 마르16ㆍ7, I꼬린 15ㆍ5) 4복음서가 유독 베드로의 언행을 자세하게 전하고 있는 것은 베드로의 비중이 다른 사도들보다 컸다는 것을 잘 암시해 준다.
주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이렇게 언명하셨다. 『시몬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마태16ㆍ18)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베드로가 반석으로 선정된 동기이다. 반석은 구약에서 흔들리지 않는 기초로 인정되고 있으니(이사 28ㆍ14~18) 베드로를 기초로 삼아 당신의 새로운 백성(Qahall)을 세우시기로 약속하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마태 16ㆍ19) 열쇠를 주는 것은 그 집의 관리권을 주는 것이고 맺고 푸는 권한을 헤브레아 말투로서 전권(全權)을 의미한다. 따라서 주님의 이 말씀은 교회 전체에 대한 권한을 주시겠다는 뜻이다.
『시몬아, 시몬아 들어라, 사탄이 어제는 키로 밀을 까부르듯이 너희들 제멋대로 다투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네가 믿음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나에게 다시 돌아오거든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다오』(루까 22ㆍ31~33) 여기서 주님은 당신의 수난에 즈음하여 제자들이 당할 시련과 특히 베드로의 배반과 참회를 암시하고 계신다. 베드로는 참회하여 정상으로 돌아오면 다른 사도들에게 대해서도 지주(支柱) 노릇을 해야 할 것임을 예고하셨고, 베드로가 사도단의 중심인물임을 분명히 하셨다.
요한 21ㆍ15~17에서 주님은 세 번이나 베드로의 사랑의 고백을 요구하시고『내 어린 양을 돌보라』『내 양을 돌보라』고 하셨다. 여기서 베드로의 직책은 그리스도의 양들과 어린 양들을 다 합해서 돌보는 일이요, 따라서 교회 전체를 통괄하는 사목직이 베드로에게 위임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상의 성서말씀들은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개인적인 특별 대리인이며 사도단의 으뜸이요 교회전체의 최고 목자임을 말해준다.
성령강림에서부터 베드로는 뚜렷이 사도단의 대표요 으뜸으로 행동하고 있으며 다른 사도들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 베드로는 최초의 공식 설교를 하였고(사도2ㆍ14~36), 유대인 법정에서 사도들을 대변하고 있으며(사도 4ㆍ5~22, 5ㆍ27~42) 이방인들을 교회에 맞아들이기로 결정을 내렸고 (사도 10ㆍ44~48, 11ㆍ1~18)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신임신자들에게 구약의 율법을 부과하지 않아야 된다는 결론을 내렸고 모두가 그 결정을 승인하였다.(사도15ㆍ7~12)
어떤 사람들은 바울로가 베드로에게 면박을 준 안티오키아 사건을 예로 들면서(갈라 2ㆍ11~14) 베드로의 권위를 바울로가 인정하지 않은 것처럼 주장하였지만 바울로의 면박사실은 오히려 베드로의 위치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의 실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임을 반증한다. 한편 바울로는 베드로의 특별한 위치를 인정하여(I꼬린 15ㆍ5) 그를 만나러 예루살렘에 올라갔으며(갈라 1ㆍ18),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에게 자기의 사명을 인정받았다.(갈라 2ㆍ7~9)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원로로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며 장차 나타날 영광을 함께 누릴 사람으로서 다른 원로들에게 참된 목자의 길을 가르치고 있다.(I 베드 5ㆍ1~4)
에우세비오의 교회사에 의하면, 헤로데가 요한의 형 야고보 사도를 죽인 후에(사도 12ㆍ1~2) 베드로도 체포당했으나 기적적으로 감옥을 빠져나와서 다른 곳으로 떠나갔는데 (사도12ㆍ4~17) 끌라우디오 황제통치 초기에(AD44) 로마에 갔다.
43년에서 49년까지의 베드로의 행적은 알려진 것이 없으나 로마에 그리스도교회가 설립된 것은 이 시기에 베드로에 의한 것으로 추측된다. 구에또니오의 기록에 의하면 49년에 끌라우디오가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한 이유가 그리스도 문제를 가지고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기 때문이라 한다.
아무튼 베드로는 49년에 예루살렘회의를 주도하였고(사도 15ㆍ6~11) 안티오키아에 가서 바울로의 면박을 당했다. (갈라 2ㆍ11~14). 한편 바울로는 로마에서 추방당한 신자들을 51년에 꼬린토에서 만났고, 57년에는 로마 교회에 편지를 보냈다.
베드로가 로마에 돌아간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네로 황제가 로마에 불을 지르고 그리스도교인들(유태인출신)에게 그 책임을 덮어씌워서 대박해를 자행할 때에 64년에(다른 설에 의하면 67년) 순교하였다.
로마교회가 설립된 연도를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고대의 문헌들과 근래의 고고학적 연구가 로마교회는 베드로에 의해 건설되고 사목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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