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10월 9일 프랑스인 형제신부가 서울에 들어섰다. 그 한 분이 프랑스산 포도를 한국에 시집오도록 하는데 산파역을 하였다.
형님은 안톤 곰벨 공안국 신부이고 동생은 율리오 곰벨 공안세 신부로, 1896년 4월 26일 강 마르꼬 도영 신부가 첫 주임으로 간 미리내에 가서 우리말을 배웠다.
그리고 1901년 현재의 안성읍 천주교회 주임으로 부임했다.
안성에 부임한 공안국 신부는 부임하자마자 어떻게 하면 조선농촌을 개발해주나 주야로 연구하였다. 공소를 가봐도 농촌교우들 생활이 춘궁이면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것이 너무 가여웠던 것이다.
그들을 도우면서 한편 농촌을 진흥시켜 보려는 결심을 한 공 신부는 프랑스 본국을 오가며 50년 동안 32차례나 프랑스에 유명한 포도재배지에 가서 항기롭고 맛좋은 블랙함부르크 종자와 마스카트같은 프랑스 포도를 친히 갖다가 시험재배를 했다.
이 두 가지가 우리나라 토질과 기후에 적합한 것을 발견하자 공 신부는 계속 이 두 종자를 들여다가 성당 뒷산을 개발하고 포도원을 개간했다. 안성하면 프랑스의 마스카트 포도, 한국의 프랑스 포도하면 안성을 생각하게 만든 이가 바로 이 공 신부님이시다.
우리는 늘 형님을『큰 공 신부님』그 계씨를『작은 공 신부님』이라고 불러왔다.
이 안성포도가 별 이상 없이 매년 8월 입추 때가 되면 색이 들기 시작해 입추가 지나 29일경이 되면 첫 선을 보였다. 첫 결실은 명동 민 주교님과 동료신부들에게 보내졌는데, 낯설고 물설고 인심설고 말까지 설은 이국땅에서 사목하는 신부ㆍ주교님에게 고국의 포도맛을 선사한다는 것은 정말 엑조틱하였으리라. 고국 땅에서 맛보던 것과 똑같은 맛과 풍미를 맛보는 동료들의 마음은 우리가 이국땅에서 이슬 젖은 무궁화를 보는 느낌과 같았을 것이다.
공 신부는 안성에 안법학교를 창설, 인재를 육성했고 포도를 가꾸어 농촌진흥에 이바지한 안성의, 아니 한국의 숨은 공로자셨다. 강산이 세 번 반 변하고 정국이 소란하던 파란의 세월동안 32년을 끄떡 않고 기둥처럼 버티고 서서 인재를 키우셨던 것이다.
공 신부는 32년 동안 매년 한 번씩 고국을 방문하고 그때마다 한 품종씩 포도종자를 들여와 농촌에 퍼뜨렸다. 그것으로 포도주를 담는 양조법까지 가르쳐 프랑스포도 원산지를 안성으로 그대로 옮겨놓은듯 했다.
6ㆍ25때까지 5~6종류의 프랑스산 포도가 아직 안성에 남아있었고 지금도 안성포도하면 공 신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에서 가져온 32종의 종자는 노지재배에서 실패하거나 멸종됐던 것이다.
공 신부는 32년 서울대신학교 교수로 부임돼 안성을 떠났고, 39년에는 가르멜수녀원 지도신부로 부임돼 포도재배에 전력을 기울일 수 없던 탓이기도 했다.
안성 포도밭은 77년 8월 23일 당시 황소향 여사가 운영, 관리해나가고 있었는데 가장 맛좋고 향기로운 마스카트와 블랙 함부르크재배에 주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6ㆍ25 전에 포도원 관리를 맡았던 박 회장(동란때 납북됨)이「삼덕포도원」으로 발족한 것이 황 여사의 노력으로 「코레아농장」「안성포도원」「동양농장」「故이교선씨 농장」등 2백여 개의 농장으로 불어났고 지금은 46만 그루를 재배하고 있으며 칼벨 등 신품종도 재배해 年25만 톤을 수확하고 있다.
안성포도원의 터줏대감인 공안국 신부는 6ㆍ25때 서울 가르멜수녀원에서 꼬요스 고인덕 신부님과 납북됐다. 50년 11월 10일 중강진 하창리에서 별세했다. 공 신부의 임종을 돕고 이북 땅에 동지를 묻어준 고 신부는 현재 서울 복자수녀원 지도신부로 계시며「작은 공 신부」공안세 신부는 형님이 별세한 다음날인 11월 11일 같은 곳에서 선종했다 고한다.
프랑스산 포도가 한국으로 시집와서 본격적으로 재배되기까지 전심전력을 기울였던 공안국 신부님은 포도철만 되면 기억하게 된다.
맛과 풍미가 뛰어난 프랑스산의 마스카트는 지금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이것을 들여온 것이 한 신부의 숨은 노력임을 아는 이들은 드물다.
내가 대전에 있을 때 고아들의 장래를 위해 안성의 마스카트를 수천주 재배했으나 심는 이 따로 가꾸는 이 따로 따먹는 이가 따로여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이제 곧 포도가 제철을 이룰 때다. 32년간 포도재배 한 길에 정성을 바쳐온 공 신부님을 다시 생각하는 절기가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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