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용산신학교에 입학한 것은 1920년 9월 13일의 일이다. 그 이듬해인 1921년 8월 15일 성모 승천대축일을 내 옛본당 미리내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그 본당에는 내 옛본당 신부 강 마르꼬 도영 신부님이 계셨다. 나폴레옹처럼 작은 키에 얼굴은 가무잡잡하고 들처럼 강인한 인상을 주는 외모를 지니신 강 신부님은 베로니까 성녀의 수건에 박아주신 예수님 얼굴처럼 굳건한 기상도 지니셨다.
까만 수염은 적당히 드리우셨고 한마디 한마디 말씀은 쇳소리였다.
그 해 여름방학 미리내성당에는 부제 김 베드로 영근(永根)과 김 야고보 인상(金寅相)、박 마르꼬 동헌 보좌신부님이 계셨다. 오 마티아 연희 동창생도 있어서 해성학교(성당학교) 교실에서 밤새도록 모깃불을 피워놓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성모승천 대축일을 기다리는 전야제를 보냈다.
한숨도 못자고 꼬박 밤을 지새운 뒤 아침 10시 대미사가 봉헌됐다.
강 신부가 집전하고 두 부제가 복사를 했으며 그레고리안 성가로 대미사를 드려 성가대를 박 신부가 맡아 이끌었다. 오래 연습하기는 했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치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어 박 신부님은 땀 깨나 흘리셨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병영에서 기상나팔 불듯이 삑삑 소리가 안나나、킥킥대는 소리가 안나나… 성가대원들도 아무렇게나 삑 소리를 질러놓고 보니 창피하다는 표정이었고 그 소리가 우스워 웃는 통에 성가는 농촌성가식이 되었다.
교우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하얗고 깨끗한 의복을 단정히 입고 성모님 대전에 국궁배례 상경지례로 임하고 있다.
그런데 남교우쪽과 여교우쪽사이에는 광목 휘장이 드리워져있다. 그것은 남녀 7세 부동석의 원칙 아래 유교사상을 이어받은 그 때의 풍습이다.
남자교우들이 앉은 좌석 한가운데에 백두산처럼 한 사람이 우뚝 솟아있다.
그분을 발견한 나는 미사가 끝나면 그분을 만나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긴 강론 그리고 그레고리안 성가로 이어지는 대미사는 성당에 가득한 모든 교우들의 영성체로 이어졌고 영성체 후송까지 마치니 10시에 시작한 미사가 정오가 돼서 겨우 끝났다.
나는 성당에서 얼른 달음박질해 나와 성당마당 한복판에 버티고 섰다. 겨우 열네 살 먹은 놈이 모시두루마기에 학생모자를 정수박이에 얹어놓고서.
하도 키가 커서 우뚝 솟은 것처럼 보인 할아버지가 누구신가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얼마쯤 서있으려니까 그 할아버지가 지팡이도 아니 짚고 성큼성큼 나오신다.
그러나 조그만 녀석이 당돌하게「뉘신지 인사 좀 드리겠습니다」할 수도 없어 살펴보니 누구를 기다리시는지 두리번거리셨다. 맨 나중에 나오시는 두 분 부제님을 찾으시는 가 보았다.
수원 갓등이 출신으로 대신학생 시절부터 나를 특별히 이해해주시고 모든 것을 자세히 가르쳐 주신 분이시다.
박 신부님 곁으로 다가간 나는『백두산 같은 할아버지가 누구시지요? 하도 키가 커서 저는 오늘 그 양반첨례만 한 것 같아요』하고 여쭈어보았다.
백두산은 못돼도 한라산만큼 큰 박 신부님은 그 할아버지를 가리키며 물으셨다.
『저기 저 할아버지 말이냐?』
하얀 모시두루마기차림의 그 할아버지는 하얀 머리、하얀 수염도 인상적이었다.
『너 아직 그 이야기 못 들었니?』
박 신부님은 그분이 우리 한국천주교 역사에 영원히 빛나실 분이라며 이 빈첸시오 민식(敏植) 할아버지라고 가르쳐 주셨다.
역사에 빛날 분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 나는 자세한 이야기를 여쭈어 보았다.
『저분이 우리 김 안드레아 신부님이 새남터에서 순교하시자 그 시신을 이곳으로 운반하셨단다. 그러니 우리 교회가 한국 땅에 계속 존재하는 한 저 할아버지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으시고、또 잊혀져서도 안 될 분이시지』
박 신부님의 설명에 따르면 1846년 9월 16일 김대건 신부님이 순교하신 뒤에도 경계가 심해서 다가가지도 못했다고 한다.
이 빈첸시오 할아버지가 40일 동안을 숨어서 지켜보다가 10월 26일 밤에서야 도둑질하듯 몰래 둘러업고 그 시신을 미리내로 모셔왔다. 머리는 가슴에 안고 시신은 등에 업고서 말이다.
박 신부님은『저분이 아니었으면 우리 김 신부님은 여기 못 오셨을 거다、영영…』하시면서 이야기를 마치시고는 나를 빈첸시오 할아버지께 안내해주셨다.
나는 그 할아버지께 꾸벅 절을 했다.
할아버지는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셨다.
『넌 누구냐?』
『예. 저는 오 요셉이라고 합니다. 이 담에 신부가 되려고 하는 신학교 1학년짜리예요』
나의 대답에 할아버지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옳지. 그래야지. 우리복자 김 신부님의 대를 이어야지. 그래 옳은 신부가 되어야 한다』
이 빈첸시오 민식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김대건 신부님의 시신을 미리내까지 모셔왔던 이민식 할아버지는 손자 같은 내 손을 잡으셨다.
『오 마티아하고 같이 신부가 된다며? 고맙다. 내가 이제 보람을 느낀다. 오냐. 꼭 둘이 다 성인신부가 되거라』
이 빈첸시오 할아버지의 당부가 귀에 쟁쟁하다.
당시 92세의 노인이 허리 하나 굽지 않으셨고 꼬장꼬장하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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