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귀국이었다. 비행기 트랩을 내릴 때부터 기섭(房起變)은 알지 못할 허전함과 두려움、곤혹스러움 등을 느끼며 있었는데、이제 그것들은 여뭇 결정적이었다.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간단히 입국수속을 마친 3백여 명의 중동근로자들이 제각기 가족들과 상봉하느라 북새통을 이루는 속에서、그는 다만 혼자였다.
사람들은 여뭇 시골 대목장날처럼 붐볐다. 한결같이 제법 옷들을 갖춰 입었지만、대개는 얼굴 빛깔이나 태거지들이 아무래도 가난해보이고 촌스러운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하여튼 1년 만에 귀국한 중동근로자들은 저마다 정다운 부모형제며 일가친척들이 있고、또 많은 수가 처자들이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혼연스럽게 얼싸안고 악수하고 절하고 웃고 얘기하고 그런 숱한 모습들은 가히 장관이었다. 밝은 웃음이 흐드러진 표정들에서 새로운 삶의 의지며 희망 등이 흐벅지게 넘쳐나는 것도 같았다.
기섭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부터 같이 날아온 동료근로자들이 제각기 농밀하게 만들어 가지는 그런 풍경들을 한동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맥없이 얼굴을 떨구었다. 온몸에서 절로 맥이 풀리는 것 같았다. 뜻밖인 것도 같고 짐짓 예상했던 일 같기도 한 채로、그렇게 아리송하고 허망한 채로、그는 다만 하염없는 심정이었다.
이미 구석구석 곳곳을 다 자세자세 찾아보았지만 끝내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무 데도 없는 것이었다. 그녀와 아이들이 마중 나오지 않은 것이 분명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처지만이…
기섭은 갑자기 주위가 황량해지는 것 같았다. 삭막해진 가슴 속에선 무엇인가 바지직바지직 타며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기섭은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이 사람 저 사람의 힘찬 어깨에 부딪치는 것도 기분이 나빴다. 그는 트렁크를 들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많은 사람이 다만 혼자인 자신을 이상히 보는 것 같아 그는 등어리가 따갑고 매캐한 서글픔이 목구멍을 비집고 나오려고 해서 걸음을 빨리 하였다.
대기하고 있는 택시에 몸을 싣고、택시가 가뿐하게 미끄러지듯 공항을 빠져나갔을 때 기섭은 후 한숨을 내쉬었다.
운전사가 백미러 속으로 눈을 흘끔거리며 기묘히 웃음을 담은 얼굴로 말을 걸었다.
『중동에서 오신 분 같은데 마중 나온 가족이 없으신가 보죠?』
기섭은 대답대신 씁쓸함을 훔치며 빙긋이 웃었다.
『가족이 없으신가요?…그렇진 않겠죠?』
운전사는 아무래도 궁금증이 지핀 모양이었다.
『있소. 아내와 두 아들이…』
그리고 기섭은 눈을 감았다.
『아、네…. 그런데…』
그러다가 운전기사는 입을 다물었다.
기섭은 길게 눈을 뜨지 않았다. 보름여 전에 아내로부터 받은 마지막 편지의 끝 부분이 그녀의 음성으로 화하여 다시 들려오는 것을 그는 지긋이 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당신이 돌아오실 날이 가까와지니 제 마음은 설레이면서도 두려워지는군요. 당신이 무사히 돌아오시는 것은 정말 한없이 기쁘지만 그러나 전 두려워요. 정말 겁이나요. 당신과 만나는 그 반가움 속에서도 여전히 그런… 1년 전의 당신을 생각한다는 것은…아니아니、여전히 그런 당신을 보고、그런 당신과 다시 함께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괴로운 일이예요. 물론 저는 지금 희망을 가지고 있지만、이 기대 때문에 더욱 두렵습니다. 때때로 숨이 막힐 것만 같아요. 여보、이런 말을 하는 저를 용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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