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거의 울먹이는 음성으로 다시금 말하며 그리고 여뭇 애절한 모습으로 기섭의 망막에 비치는 것이었다.
두려움、그 두려움 때문일까?…
아내는 줄곧 그 두려움을 가져왔고、그 두려움의 심한 표발로 하여 마치 시위하듯 마중을 나오지 않은 것일까?
기섭은 아내가 어떤 간절한 바램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아니면 에멜무지로 한 번 해본 것인지 분명히 알 수는 없으되 그 말이 그녀의 절실한 마음무늬인 것만은 의심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녀의 오늘같은 행위도 따지고 보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기섭은 줄곧 그렇게 마음을 다스렸다. 다만 쓸쓸함과 서글픔을 키울 뿐 어떤 분노 따위는 갖지않았다. 갖지않으려고 노력하였다. 진정 분노할 수 없다고 그는 내처 마음을 먹었다.
차츰 기섭의 가슴에 아내가 가엾게 느껴져왔다. 그 가엾음으로 해서 아내가 좀 더 절실히 그리워지는 것도 같았다.
기섭은 잠시 눈을 떴다가 다시 감고、암울한 평정의 시공(時空)을 가로질러、1년 전 어느날 밤의 아내의 모습과、그녀 앞에 있었던 자신의 모습도 떠올려 보았다.
기섭이 중동으로 떠나기 전날 밤、아내는 경련이 무놀지던 몸을 바로 하고 아픈 숨소리도 진정하고 있었다.
그 대신 아내는 넋이 나가버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말의 표정도 없는 얼굴、흐릿한 눈망울로 허공 한 구석을 말갛게 바라보고 있었다. 온몸을 꼼짝않고、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마치 조각품 같은 모습이었다.
기섭은 아내가 또 다시 실성했다고 생각하였다. 아내의 그런 모습을 이미 여러번 보아왔기 때문에 더럭 겁이난다거나 하진 않았다. 정말 아내의 그런 모습은 종종 있어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내를 볼적마다 기섭은 으레 생각나는게 있곤 하였었다.
아내와 처음 만나던 날의 기억이었다. D시의 한 여관、인생행로의 기묘한 복선이 엇갈려 놓인 그 방이 아슴히 떠오르고、그날 방문을 열었을 때 그녀가 하고 있던 모습과 만나는 것이었다.…
기섭이 또 한차례 아내와 인연을 이룩하던 날의 기억에 잠시 빠졌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아내의 흐릿한 눈망울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하고 있었다. 곧 함빡 고인 눈물은 주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려 방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조각품 갈던 얼굴에는 서서히 슬픈 표정이 젖어들었다. 그러나 아내는 여전히 아무런 미동도 없이 눈물만 흘렸다.
기섭은 그런 아내의 눈물을 보자 문득 그녀가 가엾어져 가슴이 아팠다. 어떻게 좀 달래고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입을 열 수도、몸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 일어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엎드린 채 팔을 뻗어 방바닥에 떨어진 아내의 눈물을 손가락에 묻혀 혀 끝으로 맛을 볼 뿐이었다. 그러며 그는 아내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그래도 여전히 강렬하고 진실하다는 황당한 생각을 하였다.
이윽고 아내는 흑흑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자꾸만 고조되려는 울음소리를 애를 써 작게 죽이려는 의지 때문에 그녀의 울음은 더욱 절절하게 흐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녀는 가끔 어깨를 들먹거리며、그리고 미미할 만큼씩 상체를 비틀기도 하며 비통한 소리로 길게 흐느끼는데、그 나직하고 절절한 흐느낌은 가눌길 없는 갈증과 오뇌와 회한 등이 한데 꼬아져 나오는 신비스럽기도한 음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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