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7월 5일 로마「바티깐」대성전에서는 한국 교회의 순교자들 중에서 1839년(己亥年)과 1846년(丙午年)에 순교한 79위 한국순교자들을 선정해서 복자위에 올렸다. 그 후 또다시 1968년 10월 5일에는 1866년(丙寅年)에 순교한 수많은 순교자들 중에서 24위를 선정하여 복자위에 올려 전 세계 천주교회사 안에 한국순교자들의 그 순교적 증거와 영광을 세계에 선포하였다. 이 이후로 부터 우리 교우들 간에는「福者」라는 용어가 순교자라는 말과 함께 동의어로 사용되어왔고 매년 9월마다「복자성월」이라 하여 특별히 여러 가지「순교자 현양행사」를 해왔던 것이 한국 교회의 전통이 되었다.
그런데 금년에 한국 천주교 2백주년을 맞아 로마교황청은 다시 우리 한국 순교 복자 1백3位의 시성을 위한 기적심사 관면청원을 받아 들여서 한국교회사상 2백여 년 만에 최초로 한민족(韓民族)의 성인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소식은 교회 내에서도 최대의 영광이며 기쁜 일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한국 전 겨레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금년의 복자성월 9월은 자연의 싱그러운 영글음과 함께 우리 후손들은 순교자들의 열매와 그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을 각종 행사를 열고 있으며 전세계교회가 기리게 될 한국 순교자의 달 9月을 맞아 모든 교우들의 마음이 부풀고 있다.
마치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힘들여 가꾼 곡식의 풍성한 결실을 만끽하는 농부들처럼 우리 후손들은 우리 순교자들의 열성과 고뇌가 낳은 신앙의 풍요를 누리면서 우리 순교선조들이 마냥 자랑스럽게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 이와 같은 한국교회의 현재의 영광과 기쁨의 근원이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인지 우리는 그 연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즉 한국 천주교회의 2백년사는 선혈로 점철되어 있는 박해의 역사이다. 1784년 이승훈의 영세입교로부터 시작해서 1886년 한ㆍ불 조약의 체결로 선교활동의 자유가 보장되기까지 백여 년간의 수난시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후 오늘날에 까지도 알게 모르게 한국민족과 함께 고난의 역사를 거듭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박해사는 절대로 우리 겨레의 신앙심이나 한국 천주교회의 발전을 저해시킨 요인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분명히 그 역사과정에서 보아온 것이다.
즉 그 수난의 역사는 오히려 우리 민족에게 하나의 정신적인 활력소가 되어 신자들의 신앙심을 함양시키고 바로 우리 겨레가 스스로 하느님을 찾는 종교적 민족임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결과를 낳았다. 즉 한 세기 반에 걸친 교회에 대한 박해는 오히려 그 선교 지역을 확대시켰던 것으로、수난의 폭풍이 신앙의 씨앗을 사방에다 날려서 박해가 거듭할수록 기적처럼 신자의 수가 많아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에서 읽을 수가 있다.
또한 방방곡곡 산간벽지까지 전파되어 박해시대의 신자들은「교우촌」을 형성하여 살면서 그들의 신앙을 불씨처럼 보존해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풀처럼 다시 살아나서 비록 성직자가 부재했던 기나긴 박해시기에도 평신도들 스스로 조선교회 재건운동과 성직자 영입운동을 일으켜 드디어 교우들의 힘으로 박해를 극복하면서 끊임없이 한국교회를 발전시켜왔던 것이다.
한편 한국순교자들의 개개인의 생활에 있어서도 그들은 평생을 날마다 순교하는 것처럼 항상 그들의 마음속에 순교정신을 성숙시키면서 아무리 혹심한 박해 속에서라도「서로 사랑하는 교우애」를 실천하는 덕행을 쌓아갔던 것이다.
또한 순교자들은 바로 그들의 고문대 위에서、형틀 아래서 교리를 설명하셨고 기회만 있으면 포교했기 때문에 옥 안이나 형틀 아래가 바로 그들의 포교지(布敎地)가 되었고 그들의 교리해설을 들었던 박해자들은 풀같은 이 서민들의 해박한 교리지식에 놀라와하기만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한국 순교자들의 폭력에 대한 무저항의 피의 혈제(血祭)로 인하여 오늘날 우리 후손들은 그들의 정신적인 유산을 우리 역사 안에서 물려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편 이와 같은 순교자들의 역사적 삶에 비례하여 현재 우리들은 사실적으로 그들의 신앙과 그 정신적 유산을 올바로 계승하고 있는지 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1983년 9월 복자축일과 그 성월을 맞으면서 1백3위 복자들의 성인품을 앞두고 두어 가지 근원적인 문제를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들이 있다.
첫째는 내년에 1백3位 한국순교복자께서 성인품에 오르고 난 뒤 계속해서 한국의 수많은 유명(有名) 무명(無名)의 순교자들이 다시 복자품에 오르지 못한다면 우리는 한참동안 아니면 우리세대에서 영구히 다시는 우리가 그처럼 친숙하게 불렀던「복자」라는 말은 쓸 수 없을지도 모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금년의 복자성월이나「복자축일」은 한 층 더 의미가 깊다고 하겠다.
이제 내년부터는 103位복자는 성인으로 한 분 한 분 그 명칭을 부르게 되고 또 9월은 아마도 한국 성인들의 달로 불리어지게 된다는 생각에 가슴마저 흐뭇해지는 기쁨을 가눌 수가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쁨과 동시에 우리는 1백3位 복자품에 오르지 못하였고 그 명단에서 제외되었던 그러나 성인의 삶을 살았고 마쳤으면서도 성인이라는 칭호를 듣지 못하고 있는 1백3位 이외의 엄청나게 많은 유명무명의 순교자들에 대해서 앞으로 어떻게 현양해야 되겠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1백3위 순교복자들은 우리가 다 주지 하다시피 기해년(1839)과 병오년(1846)、병인년(1866)의 순교자들 중에서 선택하여 복자품에 올려진 순교자들이며 또한 복자위에 올리는 과정에서도 주로 빠리외방전교회의 사가신부(史家神父)들의 많은 노력으로 올렸지 우리 민족 주체적인 노력으로 현양되어 복자위에 올려진 것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상의 3대 박해 때 순교한 순교자 이외에 한국교회사상에 엄청난 숫자의 순교자들을 가졌다.
즉 예를 들면 1791年 신해박해、1801년 신유대박해、1815년 을해박해、1819년 정해박해、1868년 무진박해 등 굵직 굵직한 박해 때 장렬하게 순교한 저 엄청난 숫자의 유명무명의 순교자들은 어느 기회에 현양되어 복자위에 오르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계속해서 이 땅에 복자가 끊임없이 탄생되어야 하겠고 따라서 성인들도 계속해서 나야 하겠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한국 천주교 2백주년에 우리들이 꼭 성취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즉 역사적인 의미에서 무엇이 우리의 필수불가결한 과제인가 하는 문제이다. 즉 한국민족이나 시회에 어떻게 비춰지고 있으며 부각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직선적으로 말해서 우리 한국천주교는 한국 일반사회 안에서、즉 민족사 안에서 아직도 문화적인 측면에서「생소」하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우리의 순교복자나 순교 성인성녀들은 복음을 위해 자신들의 피로 물들여졌던 사회가 아직도 그들의 순교의 의미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며 교회 안에서만 거론 현양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교회 내에서 조차도 그들이 순교한 참뜻을 표피적으로 거론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분들이 우리 한민족의 성인이기에、교회사 안에서 뿐만 아니라、바로 한국 전체의 역사 안에서 거론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초기의 교회 창립자들이나 한국 순교자들의 업적은 종교적인 입장이 아니라도 그들은 결코 한국사 안에서 과소평가할 수가 없으며 이들은 참다운 의미에서 근대 한국문화의 선각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한국사 안에서 한국의 순교자들이나 선각자들에 대한 우리의 심층 의식에는 아직도 사학도(邪學徒)나 서구의 이단적인 사상을 전한 자로 간주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本偉人으로 기록하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 교회 측에서도 이들 순교자들의 삶의 의미나 그 역사적인 위치에 대하여 다부진 이론적 조명이나 학문적 사적연구에 있어서 노력이 결여되었던 때문에 그저 신비한 종교적 위인으로 넘겨버린다는 결함을 가진 사실을 우리는 자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의 순교자 현양은 방법적으로 너무도 표피적인 겉치레적이고 허례적이 되어있지 않은지? 우리의 2백주년의 각종행사와 노력은 역사적 의미에서 구심점을 찾아 그 핵심을 겨냥할 줄 아는 슬기를 지니고 있는지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1983년 9월 복자성월에는 하나하나 우리 순교자들의 삶과 그 정신의 의미를 한국사 안에 부각시킴으로써 전 민족이 기리는 현양을 해야겠고 또 다른 새로운 복자들을 우리의 힘으로 계속 찾아내어 그 복자품에 올려 현양해야 할 것이 바로 우리의 큰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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