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에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내린 오늘, 10년 전 월남으로부터 배를 타고 부산항으로 돌아오던 날의 기억을 떠올린다는 것은 일맥상통하는 듯도 싶고 엉뚱한 것도 같고…하여간에 아리송한 일이었다.
기섭은 그러나 그 10년 전의 기억을 꺼버리고 싶지 않았다. 월남에서 돌아오던 날의 부산항 3부두… 알싸하면서도 야릇한 그리움이었다.
귀국 장병들을 실은 배가 부산항에 도착하였을 때 3부두에는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장병가족들이 마중 나와서 와글와글 들끓고 있었다. 「귀국 축」이라고도 쓰고 「축 개선」이라고도 쓰고 혹은「환영」이라고도 쓴 커다란 글자 밑에 무슨 부대 몇 연대 몇 중대 아무개라고 표기한 팻말을 저마다 높이 쳐들고 그들은 배의 갑판을 향하여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기섭은 그의 귀국일자를 알려주는 편지를 받은 그녀가 곧 답장을 띄워 부산항 3부두로 마중을 나가겠노라고 했던 약속을 상기하며 장병가족들 속을 열심히 살폈다. 과연 그녀도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서 그의 이름을 자랑스럽다는 듯 커다랗고 멋들어지게 쓴 팻말을 높이 추켜들고 소리를 질러 올리고 있었다. 그의 이름자 위에 「개선환영」이라는 빨간 글자가 씌어져 있는 것이 그의 눈에 퍽도 인상적으로 보였다. 그는 후닥닥 감격하여 그녀가 좀 더 빨리 자기를 알아볼 수 있도록 온갖 몸짓을 다 쓰면서 안타깝게 그녀를 불렀다. 다행히도 그녀는 곧 그를 발견하였는지 기쁜 몸짓을 지어내며 손을 흔들었다. 참으로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그와 그녀는 서로를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며 소리를 지르고 온갖 몸짓을 다 지어내면서 무진 기뻐하고 반가와하였다. 그는 자기를 쉽게 알아본 그녀가 참으로 고맙고, 그래서 더더욱 감격스러웠다…
기섭은 10년 전 그날의 그 푸짐하였던 감격을 다시 느껴보듯 기억해 본 끝에 가만히 몸을 떨었다. 갑자기 냉한 허전함이 엄습하여 그는 몸을 움츠렸다. 처음과는 달리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운전사의 뒷모습을 보며 홀로 침묵으로 가고 있는 자신이 한결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기섭은 다시 차창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도열병들처럼 질서정연하게 늘어서서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건물들, 그리하여 삼엄한 거리를 그는 두려움 어린 눈으로 내다보았다. 역시 반가움이나 정다움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떤 호기심이나 기대 따위를 가질만한 정다운 모습이 아닌 것이었다. 그리고 거리엔 여전히 아무 것도 없을 성 싶었다. 있는 것은 살벌과 황량함뿐일 것 같았다.
바쁘게 달리며 무수히 오가는 자동차들, 산란기를 맞아 지랄하며 이동하는 고기떼와 같은 무수한 사람들을 보며 기섭은 갑자기 뼈저린 고독감과 열패감을 맛보았다.
하늘을 치받듯 까마득히 솟아있는 고층 건물들은 차갑고 도도하고 뻔뻔스러운 그리고 배부른 괴물의 형상으로 업신여기고 조롱하는 낯빛으로 기섭을 낮게 깔아보는 것만 같았다. 그는 점점 위축감이 심하여져서 더욱 어깨가 오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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