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과 마찬가지 현상이었다. 중동으로 떠나기 전에 끊임없이 느끼고 겪음하였던 것들이 다시금 맹렬히 재발하는 것만 같았다.
기섭은 뼈저린 고독감과, 자기는 누구와도 같지 않다는 이질감이며, 자신에 대한 모멸감과 열등감, 그리고 까닭 모를 적막감과 초조함 무료함 따위가 다시금 가슴에 울창하게 생겨나는듯…… 하여튼 괴로운 심정으로 하염없이 공허한 거리를 내다볼 뿐이었다……
이윽고 차는 왕십리의 한 골목, 기섭의 전셋방이 있는 짚 앞에 당도했다. 기섭은 차에서 내려 트렁크를 들고 천천히 대문 앞으로 다가갔다. 문은 닫혀 있었으나 잠겨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기섭은 문 틈으로 집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가을 햇볕이 한 자락 비껴 들어와 있는 마당가 한 곳에 꽃나무들의 그림자가 하릴없이 흔들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왠지 집안은 적막한데, 괴괴한 기운마저 서려있는 듯한 것이었다.
기섭은 아이들을 불러볼까 하다가 그만두고 살며시 문을 밀었다.
문이 삐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기섭은 가만히 집 안으로 들어가서 잠시 그의 전셋방쪽을 바라보았다. 방문 부엌문이 모두 닫혀 있었다. 그리고 마루 앞 댓돌위에 아내와 아이들의 집에서 신는 신발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기섭은 대문을 닫았다. 삐이 컹 하고 문이 소리를 내었다.
그제서야 안방 쪽에서 사람 소리가 났다.
『누가 왔나, 누구요』집주인 할머니였다. 낮잠을 자다가 일어난 모양 목소리에 잠기가 묻어있었다.
『접니다. 할머니 충이 아빠예요』하며 기섭은 안방쪽 대청마루 앞으로 다가갔다.
『누구? 충이 아빠라구?』
『네, 제가 왔습니다』
그제서야 방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아이구 이게 누구냐! 증,증말루 충이 아배로구만!』하며 호들갑스럽게 할머니가 달려나왔다.
『염려해 주신 덕분에 이렇게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기섭은 할머니에게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할머니는 기섭의 손을 덥석 잡고 흔들고 어루만지며,
『아이구, 증말이구나! 이렇게 건강한 몸으로 돌아왔구만! 반갑네! 고마우이!』하더니, 더는 말을 못하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기섭에게는 친어머니 같이 다정스럽고 자상하고 이해심 많은 할머니였다. 기섭 부부의 밤의 혼돈이 밖으로 노출되는 경우에도 다 참고 이해해주는 그런 경지였다.
『방으로 들어가시지요. 큰절 올리겠습니다』
『큰절은…그 보담도, 그런데 왜 혼자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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