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안드레아) 신부는 1821년 충청도 내포 솔뫼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증조부인 김진후(삐오)는 충청도 면천 솔뫼에 살던 명문의 자제로서 한때 지방의 관리를 지냈으나 그 후 50세 때에는 교우이던 아들의 권고로 입교하여 벼슬을 내놓고 열심히 신앙생활로 들어갔다.
그는 박해 때 여러 번 잡혀서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하다가 1814년 2월 20일에 해미 옥중에서 선종하였다.
그의 손자이던 김제준(이냐시오)은 내포의 솔뫼로 들어가서 새 살림을 시작하고 아내 고우슬라와의 사이에 김대건을 두었는데 김제준도 1839년 9월 26일에 순교하였다.
이와 같은 순교자의 집안에서 태어난 金大建은 뛰어난 재주와 굳센 기질과 열심한 신덕으로 말미암아 모방 신부에게 알려져 16세 때에 신학생으로 뽑히어 「마카오」로 유학하게 되었다.「마카오」의 수학을 마친 뒤에 김대건은 여러 형태로 귀국을 시도하다가 결국 1차 귀국을 하였고 목선을 타고 다시 상해로 간 후에 1845年 8月 17日 주일에 상해에서 20~30리 떨어진 상해의 교우 부락인 김가함경당에서 백절불굴의 주인공인 김대건은 중국 강남교구 교황대리 주교에게서 사제서품을 받았고 그달 24日 주일에는 그곳 왐남 소신학교에서 첫 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김 신부는 조선교회창설 후 60년 만에 우리 겨레의 첫 사제가 되었다.
그는 같은 해 8月 31日 고 페레올 주교와 안 다뵐리 신부와 더불어 작은 배를 타고 조선을 향하여 바닷길을 떠나게 되었다. 침몰할 번한 위험을 겪으면서 이 작은 배는 9月 28日에 제주도로 표류되어 그 해안에 닿게 되었다. 그들은 여기에서 전라도의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뱃머리를 돌리어 강경리 나바위라는 조그마한 교우촌에 닻을 내리게 되었다.
김대건 신부의 결사적인 모험에 의하여 처음으로 바닷길을 타고 입국하게 된 페레올 고 주교는 서울에서 전교에 힘쓰는 한편 하루 속히 만주에 머물러 있던 매스또로 이 신부와 최양업 부제를 맞아들이고자 꾀하게 되었다. 그런데 의주방면의 국경 감시는 몹시 엄중하여 도저히 그들이 숨어들 수 없게 되어있음을 알게 된 고 주교는 김 신부로 하여금 바닷길을 알아보게 하였다.
이에 김 신부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가지고 연평도 앞바다를 거쳐 동산곶으로 나갔다가 포졸들에게 붙잡혔다.
때는 1846年 6月 5日 밤이었다. 김대건 신부는 옹진군의 옥으로 끌려가 온갖 심문을 받았고 5日 후에는 황해감사 김정집으로 부터 귀찮은 심문을 받게 되니 그는『조선에서 출생하여 중국의「마카오」에서 성장하고 천주교를 펴기 위하여 귀국한 것』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였다.
황해도 감사는 그 취조결과를 6月 13日에 조정에 급히 알리게 되었다. 헌종은 이 사건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 곧 중신회의를 열어 의논한 후 포도청에 명하여 김대건을 서울로 잡아 올려 심문하게 하였다. 서울 포도청 감옥으로 옮겨진 그는 곧 재판장소로 끌려 나가 심문을 받았다.
그 후 어전의 중신회의를 열었으며 여러 대신이 김 신부의 사형을 주장하였고 특히 당시의 영의정은 『법에 쫓아 이 사건을 종결할 것이며, 그 밖에 적당한 해결방법은 없다』라고 말하였다.
김 신부의 처벌에 대하여는 그의 고결한 성격과 정통한 외국어 실력 등으로 한때 다른 의견도 있었으나 영의정 권돈인의 주장에 따라 그날로 나라에 대한 반역과 사교(邪敎)의 괴수라는 죄목으로 군문효수의 선고를 내리게 되었다.
급기야 김대건 신부는 전후 3개월에 걸친 옥중생활을 끝마치고 영광된 순교의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김 신부의 사형은 그해 7월 26일(양력 9月 16日)에 앞서 세 명의 불란서 성직자들이 피를 흘린 새남터에서 집행하게 되었다.
그는 감옥으로부터 끌려나와 두 손을 뒤로 돌려 묶이고 새끼로 만든 가마 위에 올라앉으니 군졸들은 그 가마를 걸머메고 무수한 군중에 둘러싸여 사형장으로 달려가게 되었다.
판관이 일어서서 사형 선고문을 낭독하자 김 신부는 군중을 향하여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힘차게 말하였다.
『나의 마지막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 귀를 기울여 들어주십시오. 내가 외국 사람들과 통한 것은 오직 종교를 위해서 입니다. 또한 天主님을 위해서 입니다. 나는 지금 그 天主님을 위하여 죽어갑니다. 그러나 여기서 바로 나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죽은 후에 행복을 얻고자 생각하시면 천주교 신자가 되십시오. 하느님은 당신을 업신여기는 자에게 끝없는 빛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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