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기섭은 일순 이상한 두려움을 삼켰다.
가슴이 냉각되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처자는 어데다 두고 혼자만 왔는가?』
할머니가 재차 물어서야 기섭은 꾸물꾸물 대답했다.
『제 아내와 아이들이 공항엘 나오지 않았더군요.』
『아니, 그게 정말인가?』
할머니는 눈을 크게 떴다.
『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아니, 그럴 리가…』
『제 집사람이 공항에 간다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습니까?』
『그렇다네, 그것도 어제야. 어제 옷을 잘 차려입고 아이들을 단장시켜서 몰고 나갔다네』
『어제라구요? 아니 제가 오늘 도착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텐데요…』
『그랬지. 충이 아빠가 오늘 온다고 전에부터 말하더구만. 한데 친구 집에 가서 하루 놀다가 자구서 친구와 함께 공항에 가겠다구 하면서 어제 나갔어』
『네에… . 어디에 사는 어떤 친구에게 간다는 말은 안 하던가요?』
『그런 말은 안 하더구만. 나도 묻지 않았고…』
『네에…』
기섭은 절로 더욱 긴장이 되었다. 조름 같은 이상야릇한 의혹이며 불안감이 점점 부풀어 올라서 호흡마저 불편해 지는 것 같았다. 그는 마른 침을 삼켰다.
할머니가 다시 말했다.
『그 사람, 한 달 전부터 마음이 들떠서 지냈다네. 좀체로 안절부절 못하는 눈치였어. 조금 있으면 충이 아빠가 돌아온다고 싱글벙글 좋아하다가도 무슨 고민이 있는 사람처럼 상심스런 얼굴을 하고, 왠지 초조해하는 것도 같고… 그랬지!』
『……』
『난 행동이 방정하고 조신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사람이 왜 그러나 했네. 남편이 사우디에서 보내오는 돈을 한 푼도 낭비하는 일 없이 꼬박꼬박 저축을 하고, 일요일에 성당에 가는 것 외에는 밖에 나가 한 시간 이상 있은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 혹 무슨 말 못할 비밀이 있어 그러는가 했지. 설마 그럴려구 싶었지만서도 말야. 하여간에 그 사람, 자네가 곧 온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이불을 뜯어 빤다, 대청소를 한다, 아이들 목욕을 시키고 화장을 한다, 그리고 매일같이 꽃밭을 가꾼다, 아주 정신이 없었다네』
『네에… . 그러면서도 무슨 말 못할 고민이 있는 것처럼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듯 했다는 말씀이지요?』
하더니, 할머니는 얼른 얼굴 가득 웃음을 담았다.
『뭐 그렇다고 이상히 생각하거나 심란해 할 것 없네. 만리타국에 갔던 남편이 돌아온다는데 젊은 각시가 그렇기 마련 아닌가』 하고 할머니는 말을 돌려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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