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의로운 고백자」이자「진실한 증인」이시듯이 성인(聖人)들은 충만한 신적능력과 완전히 증거한 승리자이다. 성덕을 지닌 분 중에는 순교자와 증거자가 있다.
2~3C부터 순교자 공경
주님의 사랑을 완전하게 증거한 최상의 형태는 그리스도께서 당신 생명을 바쳐 진리를 증거한 것처럼, 자신도 복음의 진리를 목숨을 바쳐서 증거하는 피의 증거이다.
성인공경에 관한 첫 번째 자료는「스미르나」의 주교 성 뽈리까르뽀가 쓴 순교록이다.
2세기 중엽부터「증거」란 말은 피의 증거에만 사용됐다.
성인공경의 역사는 순교자 공경에서 비롯됐다. 존경은 바로 순교 안에 있다.
성인은 단순한 의인이 아니라 교회가 공적으로 완덕에 도달한 분으로 인정을 하는「의화된 크리스찬」이다.
서방교회는 2세기 이래 동방교회는 3세기 이래 순교자의 무덤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특히 순교한 날을 택하여 하느님의 은총의 승리를 기념했다. 그들은 이른바 완전한 그리스도인이었다. 이날은 애도의 날이 아니라 승리의 날이었다.
구약의 순교자들 역시 공경을 받았다. 이사야 마카베오 형제 세례자 요한이 바로 그 예이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기도할 때에 순교자들의 이름을 불렀다. (호칭기도) 또한 순교자들의 유체(遺體)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유물을 소중히 간직했다. 그러나 순교자 공경에 있어서는「오인」이나 「미신적 요소」가 있기도 했으며 떼르뚤리아노는 이러한 남용을 막으려고 애쓰기도 했다.
「순교의 관」없이도 공경 받는 성인들
313년 콘스탄틴대제의 종교자유 칙령으로 로마의 박해가 종식되었고 대제의 뒤를 이은 임금들도 박해를 하지 않았다. 태평성세가 온 것이다. 이를 계기로 신자들은 방심과 유혹 간계에 사로잡혔다. 이 때 성 바실리오 성 요한 크리소스또모 같은 스승들이 일어나『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는 사랑의 정신』을 외치며 따라서『크리스찬 생활은 순교와 같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4세기말에 이르러서는 사람들이 순교자에게 부여하였던 존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광야에 나아가 수덕하는 이들이 생겼고 자신을 이기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크리스찬 생활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덕행의 길을 택한 남녀동정자 과부 등이 속출했다. 순교의 관을 받지 않고도 성인들로 공경 받는 이들을 증거라 한다. 순교자가 죽음으로써 그리스도를 증거했듯이 그들은 일생을 통해 항구히 신앙을 고백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본받은 사람이었다. 순교자들에게 호칭기도를 바치고 존경과 영예를 돌리던 것과 마찬가지로 증거자들에게도 존경과 영예를 드리게 되었다. 이리하여 교회는 초세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를 본받아 온전히 신앙을 고백한 위대한 성인들을 공경하고 있다.
성덕에 이르는 새로운 길
세상은 그러나 은둔하여 수덕의 길을 걷는 행위를 개인주의적인 것이라고도 보게 된다. 그것만이 근본적이고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막에서 은둔하여 덕을 닦은 성 안또니오처럼 모두가 생활해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은둔자의 생활이 바로 극복하면서 목적에로 향하는 것이라고 보면서도 주교나 나라의 임금 공동체의 장상 등이 그 회원들을 잘 돌보는 일 역시 세상과 격리될 수 없을 뿐더러 격리되어서도 안 된다고 알게 되었다.
순교자들은 자신의 고통과 싸우며, 불의와 싸우는 용맹을 떨쳤다. 그들은 비단 자신 홀로 생명을 봉헌하였지만 모든 이가 함께 소유하는 의(義)의 당위성과 영구불멸의 진리야말로 모든 이의 생명의 원리가 되어야한다는 공동체적 이념을 갖고 있었다.
성인들의「부류」
5세기 이후부터 성인과 복자에 대해 전문적인 말로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성인들의 긴장상태-세상과의 싸움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잘 대변해준다. 따라서 그들이 처한 당시의 사회와 직무 안에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느냐에 따라「부류」를 나눌 수 있다. 미사경본에도 순교자 증거자 학자 주교사제 수도원장 사목자 동정녀 등으로 나누고 있다. 이것은 바로 진리를 증거하는 형태이며, 그 형태를 여기에서는「부류」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이다. 칼라너는 따라서 성인들을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형태의 창조자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서 생활하였고 화신(化身)하셨다는 것을 통해 우리는 우리를 당신께로 흡수시키고 변화시키는 하느님의 구원의 힘을 발견하게 된다. 성인들은 역사가 흐름에 따라서 그 역사와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바르게 볼 수 있는 선구자적인 눈이 있었다.
이른바 성인들은 시대의 변천 안에서도 하느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신앙을 떠날 수 없었고 떠나지도 아니했고 또한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의 나타나는 사랑을 가를 수 없었다.
성인들은 언제든지 세상의 요구에 응답하는 새로운 방법을 지적해주었고 교회 안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주었다. 특히 수도회의 창시자들은 창의적인 새로운 언어, 다시 말해서 시대의 요청에 부응키 위한 개척과 노력을 아끼지 않은 선구자들이었다. 성 베네딕또 성 도미니꼬 십자가의 성 요한「시에나」의 성녀 까타리나 예수영애 성녀 데레사 등… 이 위대한 성인들은 바로 강생의 현의를 생활로 입증, 바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창조적인 역사의 문을 열어놓았다.
우리의 시대에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어떻게 요구하고 계신가에 응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나를「위대한 성인들의 부류」에 속할 수 있게 한다.
성인공경에 대한 고전적 이미지
세상으로부터 떠나(은둔)고 세상에 변모를 가져와야한다고 생각한 두 가지 지주는 성인에 대한 가장 정상적인 형태로 표명됐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남에 따라서 세상은 첫째로 요청되는 조력자들로 성인을 수호자로 모시게 되었다. 이러한 모든 형태들은 세상에 대한 동일한 가치를 표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모델과 변화」라는 가치를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세상으로부터 떠나」세상에 변모를 가져와야한다고 생각하는 고전적 이미지는 그대로 한 곳에 정박시켜둘 수 없었고 돛을 달아 새로운 항구로 배를 저어 가야했다.」
한편 교회가 성인공경에 대해 시성절차를 두어 제도화하게 된 것은 분명히 성인공경에 있어 남용과 오용이 있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초대교회가 순교자들의 무덤을 주교에 유보시켜 두었던 것처럼 성인공경에 대한 남용과 오용이「제도」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성인들이 성덕에 도달하기위해 하느님의 은총을 승리로 이끈 것은 결코 현세 구복적 이거나 외적인 자랑에 있음이 아니고 종말론적인 성덕의 완성에 있으며 항구한 노력으로만 얻을 수 있는 은총의 승리를 말해주고 있다.
성덕에 대한 현대적 이미지
종교개혁자들의 성인공경거부는 사회 안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것은 성인공경에 대한 들뜨고 흔들리기 쉬운 형태가 현대사회에 어떻게 바르게 받아들여질 것인 가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신자생활이나 수도생활에 있어서 외견상으로 드러나는 형태가, 사회를 그리 이롭게 하지 못했다는 역사적 반성을 현대는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현대는 외적인 것을 도외시하려하고 내적인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자한다. 매일매일 작게 드러나는 영웅적인 헌신의 형태를 보고자하고 있음을 우리는 역사의 교훈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한 가장 명확한 예는 작은 꽃 성녀 데레사를 말할 수 있다.
성인들의 생애를 기술함에 있어서도 과거처럼 기적적인 요소가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 이름 없는 수많은 꽃들을 성덕의 이미지로 현대는 보고 있다.
두메산골의 이름 모를 꽃이지만 홀로 동산에서 세상구원을 위해 애타하시던 그 모습을 정신과 마음의 풍요로 변화시킨 성인에 대한 이미지는 보다 현대를 종말론적인 성덕으로 옮길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
작은 꽃 데레사는 바로 현대적 이미지를 이 시대 안에 낳아주었다.
성인들의 행적을 담은 전기가 나온 것은 4세기부터이다.
보다 체계적이고 학문적 형태는 16세기에 나타난 성인전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전기적 정확성보다는 모든 신화적인 내용을 추방하고 신학적이고 심리학적인 면으로 기술하고자 하고 있다. 인격성에 대한 축소는 이른바 현대적 성덕에 대한 현대적 이미지로 부각되고 있다. 증명된 빛으로 사라진 증거가 신비스럽게도 더욱 강해지고 성장하고 있다. 열심한 죽음과 소멸은 현대적 순교형태로써 더욱 강하게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세계도처 어느 곳에서도 드러나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세상의 제도 안에서 연령과 성별 신분과 제도 청년 장년 노년 성직 수도자 평신자의 구별 없이「인격성의축소」에서 더욱 강하게 드러나며 그 축소는 바로「세상에 죽고 그리스도께 사는」순교의 형태에서 찾을 수 있는 성덕이다. 이는 새로운 발견이고 이 세상에 진정한 가치를 인식시키는 통로이다. 이러한 것은 분명히 희생과 열심한 예배, 그리고 하느님과 자신과 이웃을 알려고 하는 깊은 묵상에서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덧붙여 현대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랑에로 자신을 옮겨놓는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성인을 존경하기위해서는 온갖 어려움과 위험에서는 성인들의 생애에 참여하고, 그 사랑을 닮아 나누어주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을 포함시켜야한다.
하느님은 인간적 연약함 속에 모든 성덕의 능력을 불어 넣으시고 이 능력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안에서 우리를 통해 구원과 은총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은총은 바로 세상을 이기는 힘이고, 그 힘은 그리스도로부터 오고 있다.
<계속>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