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찾아 헤매기 몇 십 년이던가? 지은 죄 너무나 많았기에 여기 와 있는가? 서울치고 그윽한 산골짜기 여기 있나니』
1백3년간 휘몰아치던 저 지긋지긋한 피비린내 나는 박해 속에 네 안에서 부르짖고 애태우고 뼈가 부러지고 살이 으스러지고 목이 졸리우고 곤장에 골육이 스러지기 몇 천 몇 만 번이었던가.
1801년 신유박해때 주옥 같은 실학파 신자학자들 3백여 명이 주문모 신부와 함께 사랑과 믿음으로 만 가지 형벌을 이를 악물고 견디어낸 것도 네 품속이었지? 왜 말이 없느냐? 우포도청아!
1839년 기해년에 범 주교ㆍ나 신부ㆍ정 신부, 그리고 33년 동안 고독한 이 땅에 천주교를 재건하려고, 또한 독립된 교구로 조선 교구를 창설하기 위해 일천생명을 내걸고 북경을 오가기 20번이나 한 주동인물 정하상(바오로)ㆍ유진길(아우구스띠노)ㆍ조신철(까룰로)ㆍ김방지거 네 기둥이 버티어주었던 이 외롭던 교회를 이끌어온 덕으로 네 품안에서 갖은 형벌을 이겨내기에 숨 가빴었다.
1839년 9월 21일 세 성직자가 신자들 2백여 명과 함께 순교한 이래 또 6년의 공백 기간이 생겼을 적에 너는 허전하였으리라. 곤장ㆍ치도곤을 맞는 신자들이 뜸하였기에…
1845년 8월 17일 이 땅에 한 송이 무궁화로 피어난 첫 사제 김대건(안드레아) 신부가 6년 전 허물어진 조선교회를 다시 이룩해보려던 꿈도 깨지고 서품 1년 29일 만에 한 떨기 해당화로 숨져가면서 남긴 말씀도『예수 마리아』였으리라.
1866년 음력 정월부터 대원군이 뽑아든 칼에 12만 명(박은식의「한국통사」황현의「매천야록」(일본인 사가들의 통계)을 모조리 죽여 이 땅에 천주학쟁이의 씨를 말리려던 박해가 일어났다. 산천초목이 사시나무 떨듯하던 그 10년 권좌동안 앉을 곳도 설 곳도, 누울 곳도 없어 콩나물시루처럼 세워놓고 오만가지 형벌에 쓰러지고 썩어가는 상체에 더욱 모진 형벌이 가해지던 곳, 기아와 병고 속에 마음이 약해지려는 신자들의 신앙을 무언 속에 손짓 발짓으로 북돋와주던 주교ㆍ신부들이 고난을 겪었던 곳도 바로 네가 있는 곳이니…
1877년 9월 20일 대구교회 창립자인 로베르또 김 신부와 중림동교회 창립자인 까밀로 두세 신부를 대동하고 재입국했다가 1878년 1월 28일 다시 체포되어 네 품에서 갖은 형벌로 고통을 겪은 일, 고통을 못 이겨 신자들이 배교한 일, 우포도청 네 안팎에서 일어난 가슴 아픈 일들을 어찌 다 말하랴.
이 펠릭스 리필(이복명) 주교의 옥중수기는 오늘도 애를 끓는 아픔을 안겨준다.
그는 우포도청, 네 안에서 일어나는 사정을 낱낱이 경험하고 1888년 6월 11일 북경으로 추방됐다. 가마를 타고 눈물 속에 작별할 제 무악재(現 홍재동고개)를 넘으며『잘 있거라, 내 한양아! 갔다 오마, 포도청아! 내게 많은 공로 세워준 포도청아! 고맙구나. 천주에 못 잊으리, 네 맵시를! 먹지 말라 세수비누! 그걸 먹여 자식 병낸 포졸들아! 잘 있거라 기치창검으로 나를 위협하던 포졸들아…』라고 이 주교는 노래했다. 그는 고혈압으로 고향에서 선종, 영원히 이 땅에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다.
이후 1866년 주교 2명 신부 7명이 고통 중에 노래하고 굶주림 속에 신자들과 기도드리던 그 품속이 그립다. 영원한 월계관의 요람이여! 본래 우포도청은 지금의 동아일보사 옆 광화문 우체국 자리에 있었다.
1백3년간 박해 속에 무수한 신자들이 매를 맞고 고통을 당했으며 생사가 판가름 난 이곳에서 1866년 병인년 박해 때에는 11명의 복자ㆍ복녀들이 목 졸림을 당해 천국으로 떠났다.
이 포도청은 갑오경장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다. 1894년 고종 31년 개화당이 집권한 후 재래의 문물제도를 진보적인 서양식으로 고쳤다.
일명 갑오개혁이라고도 한다. 이 개혁에 따라 우포도청도 철폐됐다.
포도청은 일명 포청이라고도 하는데 조선조에 도둑ㆍ강도ㆍ파렴치범들을 잡아 가두고 죄를 따지는 옥이자 관아였다. 갑오경장때 좌우포도청이 없어지고는 경무청(警務廳)을 새로 설치했다.
순교 복자들이 순교의 월계관을 받으신, 말하자면 월계관의 요람지를 찾기 위해 필자는 오랫동안 애써왔다. 옛 관아는 다 없어지고 포도청만 남았다는 이야기에 접하고 79년부터 수소문해 80년 6월 5일 서울 성북구 삼선동「삼선공원」깊숙이 옛 모습 그대로 서있는 것을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구 포도청. 지방 유형문화재 제37호」안내판에 기록된 것을 계속 인용해보자.
「조선 중엽에 좌포도청은 서울 중부貞善防에 두었고 우포도청은 중부 瑞麟坊에 두었다가 갑오경장 이후 폐지되었는데 좌포도청은 영화관 단성사, 우포도청은 광화문 우체국 자리가 되었다. 이 건물은 우포도청 청사를 일제 때 현 위치로 이전한 것으로, 정면 7간 측면 4간의 이고주(二高柱)칠량합각지붕 집이다. 조선시대 관아 건물로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는데 보존된 것이 다행이다」
우포도청을 마주 대하자 모진 박해 속에 순교한 복자들의 영광의 요람을 앞에 둔 만감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안에서 숨져간 모든 순교자들의 영원한 명복을 빌며 옷깃을 여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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