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섭은 진실로 기대하고 소망하였다. 아내와 아이들이 돌아와 있는 집으로,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 마당으로 들어가 어서 푹 잠기고 싶다… 참으로 간절한 마음이었다. 그는 자신이 오늘 일에 대해 너무 불길한 쪽으로 경도된 채 민감해져 있음을 의식하고 더불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곧게 하면서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을 향해 천천히 걸음하였다.
그러나 아내와 아이들은 집에 들어와 있지 않았다. 아직 오지 않았다는 할머니의 말은 기섭에게 가히 절망적이었다. 알싸한 실망감과 허탈감으로 그는 온몸의 맥이 풀리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여러 가지 말로 기섭을 위로하였다. 기섭의 아내가 열심히 하느님을 믿고 또 행실하는 착한 사람이니 너무 걱정 말라는 둥, 자꾸 불길한쪽으로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둥, 설령 무슨 일이 있다더라도 하느님께서 돌보아 주실 것이라는 둥, 기섭에게 야릇한 곤혹감을 안겨주는 말들이었다. 그리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할머니 역시 실상은 불안하고 걱정스런 빛을 온전히 감추지 못하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서둘러 저녁 준비를 하였다. 오늘따라 아들과 며느리가 여행을 떠나 집안이 더 텅 빈 것 같다는 말도 하면서 할머니는 저녁상을 차렸다.
곧 기섭은 할머니와 저녁상을 놓고 마주앉았다. 좀 더 기다렸다가, 아니 밤늦게라도 아내와 아이들이 돌아오면 같이 식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역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기섭은 아까 점심을 먹을 때도 자신이 성호만이라도 긋는가 살피는 듯이 할머니의 눈길이 유심했던 것을 상기하면서 다시 정성스럽게 성호를 그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식사 전 기도에 진실한 마음으로 동참하였다. 모든 것이 절로 간절해지는 마음이었다.
할머니는 마음속에 기쁨이 어리는지 다소 밝아지는 안색이었다.
식사 후에 기섭은 한동안 텔레비전을 보며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다가 더욱 커져 오른 불안덩어리를 안고 그의 방으로 건너갔다.
댓돌 위 가지런한 아내와 아이들의 신발 옆에 구두를 벗어놓고 기섭은 마루로 올라서서 방문을 열었다. 방문이 조금도 거부하는 기색 없이 열리며 방 안의 흔쾌한 내음이 그를 정답게 맞는듯하였다. 그는 실로 뼈저린 정다움을 느끼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1년 만에 들어와 보는 방이었다. 중동 그 먼 땅 사우디아라비아의 열사(熱砂) 위에서 밤낮으로 그리워하였던 방이었다. 급기야는 회한의 모진 슬픔으로 해서 더욱 그립던 방… 그는 찬찬히 방안을 둘러보았다. 아내의 세심하고 정갈한 손길이 온 방 안에 가득한 것 같았다. 그리고 구석구석에서 아내의 체취가 풍겨나는 것 같았다. 성당 쪽 방벽의 중앙 상단부에 걸려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고상과 그 좌우에 있는 성모 마리아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상본, 그리고 양옆에 부착되어 있는 가정을 위한 기도문과 평화를 위한 기도문 등에서는 아내의 맑고 강한 신심과 소망과 사랑 등이 강렬하게 풍겨나는 것만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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