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학교의 학제는 본시 스콜라철학만 2년을 공부하고 철학과를 졸업하고서만 교리신학을 공부하는 신학과에 입학할 수 있게 되어있다.
신학을 1년 공부하면 삭발례를 받도록 되어 있는데 나는 1927년 대신학교에 입학, 2년 동안 철학을 공부하고 1929년 5월 25일 삭발례를 받았다.
삭발례를 받기 직전 내 마음은 이개의 시조가 잘 말해주었다. 「방안에 켰는(켜논) 촛불 눌과(누구하고) 이별하였관대/ 겉으로 눈물지고 속타는 줄 모르는고/ 저 촛불 날(나)과 같아 속타는 줄 모르도다」
1920년 9월 13일에 같이 입학한 38명 중에서 아홉 해만인 29년 삭발례를 받은 것은 겨우 7명이었다. 귀한 집 자제, 돈 많고 흥청대던 집 아들, 얼굴변변한자, 뭘 좀 안다고 기고만장하던 젊은이, 바이올린 켜며 세상을 노래하던 총각, 웃어른들에게 바짝바짝 덤벼들던 사람, 콤플렉스에 신음하던 가련한 학생…다 도태되고 오로지 7명만이 삭발례를 받다니.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의 가시였고, 그 찔린 상처에서 피눈물이 났다. 웬일인지 학창시절에 눈물이 많았던 나는 내 동무ㆍ내 친구를 생각하면서 이불 속에서 애태워 울었다.
삭발례란 필자가「제복과 삭발례」(본 연재물 제17회)에서도 말했듯이 주교님이 가위를 들고 삭발례 받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앞뒤 좌우 그리고 머리의 정수리에서 인정사정없이 잘라버리는 예식이다.
주의 사랑을 위해서 사치의 징표인 머리카락을 잘라버림으로써 주의 사랑에 반대되는 내 마음도 잘라버리고 주의 뜻에 어긋나는 생각과 말과 행동과 몸짓까지도 싹 잘라버리라는 뜻이다.
이 거룩한 예식을 앞두고 1주일동안 피정을 갖는데, 내 일생을 새롭게 해준 일주일이 되었다.
드디어 삭발례를 받게 되었다. 어찌 그날을 잊을 수 있으랴. 이윽고 성직반열에 들게 되니 말이다.
시편 15장의 말씀에 따라 야훼의 장막에서 살고 야훼의 거룩한 산에 머무르며 남을 해하지 않으며 영원히 흔들리지 않으리라 다짐을 되새기면서 29년 5월 25일 명동대성당으로 갔다.
교구장 민 대주교님은 자기의 권한을 보좌주교 원 아드리아노 주교에게 대리시킨다는 뜻으로 예식 현장에 나오시지는 않고 숨다시피 무릎을 꿇고 삭발례를 지켜보셨다.
삭발례가 시작되고 삭발례 받을 사람의 이름이 불려졌다. 내 이름이 불려질 때 내 마음은 떨렸다. 나 같은 자가 감히 주의 성전에, 성직반열에 들 자격이 있나 해서였다.
7명은 주교님 앞으로 가 삭발례를 받고 수단을 입은 위에 하얀 중백의를 입었다. 이제부터 성직자가 되려는 순간이다. 이때 우리들은 주교님의 손을 잡고『주님은 나의 기업이시고 나의 잔에 몫이시네. 내 제비(영원한 천국유산의 한몫)는 오로지 주님께 있나이다』라고 하였다.
그때 내 마음은 기쁨과 평화를 담뿍 담은 행복감에 뛰놀았다.
준주성범에「수도복이 수도자를 만들지 않고 수도자가 그 수도복을 거룩하게 한다」하지 않았던가. 나는 이제 주님이 내리신 예복을 입고 이승에서 저승 천국문간까지 들어갈 자격을 얻은 것이 아니겠는가.
이때부터 나는 성모마리아가 내 영원한 어머님이 되어주시고 성녀 소화 데레사가 내 모든 날에 사목생활의 대수호자가 되어줍시사 하고 몇백번 외치고 허원했다. 지금도 명동대성당 제대 앞에 서면 삭발례를 받으며 나는 모든 것을 성모님의 손을 통해 성녀 소화데레사의 인도로 영원한 내 사랑의 임금 주 예수께 봉헌하던 시각을 생각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한다.
삭발례를 받고 용산 대신학교로 돌아와서 예수성심동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 더러운 세상에서 우리를 끝까지 보살피소서. 주위에는 악인들이 우글거립니다. 더러운 자들이 판을 칩니다』(시편 12ㆍ8)하고 엎드려 얼마를 울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시편 27장의 말씀 한 귀절 한 귀절을 가슴에 새기며 내가 성직반열에 들던 날로부터「내 영혼의 애가」로 51년 동안 주님의 성전을 들고날 적에 울음 섞인 내 마음의 제사로 바쳐왔다.
그날을 생각하면 다윗성상이 읊었던 시편을 읊으며 춤추는 기분이기도 했음을 기억한다.
삭발은 이전에도 설명했듯이 성프란치스꼬등의 상본을 보면 머리를 뺑돌려 백호를 치고 머리중 허리를 돌아가며 머리카락을 남겨두는 것이다. 제2차「바티칸」공의회 이후 자취를 감췄지만 지금도 유럽의 수도자들 중에 삭발례를 고수한 사람들이 더러 있고 어느 주교님도 머리 정수리에 동그랗게 백호를 치시고 빨간 모자를 쓰고 계시기도 한다.
다윗의 시편 중 하루하루 그날의 또 다른 내 영혼의 애가로 바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하략) 시편 23장 1~4절의 말씀이다. 『나 비록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없어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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